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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그리스도인의 자유
본문: 갈5:1,13
설교자: 김치현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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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5. 그리스도인의 자유
(갈5:1,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5:13).
인간에게는 자유가 있는 것 같지만 자유가 없다. 어차피 무엇을 받아 표현하는 존재라면 그 받아들인 것을 위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역설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위한 자유가 있을 뿐이다.
복음 안에서의 자유
복음은 일차적으로 ‘죄에서 해방’이며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본성의 죄와 행위로 말미암아 지은 죄들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였다. 율법을 지킬 수 없어서 늘 정죄 받던 인간에게 은혜를 주어 아들을 믿게 함으로써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것이다.
율법 때문에 죄를 아는 것이 쉬워졌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볼 수 있게 되었다. 법이 없으면 범함도 없는 것인데 법이 생겨서 죄도 생겼다고 바울은 말한다. 율법은 옳지만 그것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은 죄인이 된 것이다.
복음의 자유 속에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방이 있다. 정죄의 율법에서 해방하고 법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원죄의 본성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다.
사명 안에서의 자유
그러나 정죄가 없어졌다고 인간의 가치가 회복된 것은 아니다. 가치가 회복되자면 사명이 회복되어야 한다. 참 자유는 사명 안에서 가지는 자유이다.
인간의 사명은 하나님 생명을 받아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내게 허락된 모든 환경과 문제가 인격으로 통제되고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목숨보다 사명이 더 소중할 때 목숨에 매여 일생 종노릇 하는 데서 해방되고 목숨에 관계된 모든 것을 극히 작은 문제로 여기게 된다.
자기를 위하는 자는 참된 자유가 없지만, 사명을 위해 살 때 참된 자유가 있다. 궁핍과 곤경 속에서도 자유하다. 십자가에 달렸어도 자유하고 쇠사슬에 묶였어도 자유하고 무덤에 가더라도 자유한 사람이다.
제한 안에서의 자유
자유를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은 끝없는 욕망으로 자유를 원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자유라 하지 않고 방종이라고 한다.
제한 없는 자유는 없다. 세상에서 자유는 책임과 함께 주어지듯이 참된 자유는 제한 속에서 주어진다. 복음 안에 있는 자유는 섬기기 위한 자유이지 육체의 기회를 삼기 위함이 아니다(갈5:13).
극도의 제한을 받으신 메시아
예수의 십자가는 극도의 제한이다. 한 발짝도 스스로 내려올 수 없는 완전한 제한이다. 그 어찌할 수 없는 자리가 우리의 구속이 되었다. 극도의 제한이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가져왔다.
이사야 53장은 끌려가는 메시아를 묘사한 말씀이다. 그에게서 사람의 소원을 전혀 찾을 수 없었고 흠모할 것이 없어서 모두가 싫어 버렸던 사람이다. 만약 그가 하나님 같으며 돌로 떡을 만들고 십자가에 못 박혀도 내려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은 결코 그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는 광야의 놋뱀을 자신과 동일시했다. 독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놋뱀은 누구도 물 수 없다. 독이 없다는 것은 공격할 어떤 힘도 없는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뱀인 것이다.
놋뱀을 쳐다보면 산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를 보면 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를 보면 산다는 것이다. 아무 힘이 없는 자의 힘(powerless power)이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의 자유(freedomless freedom)이다. 이것은 위대한 역설이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메시아
하나님처럼 된 자, 돌로 떡을 만들 자, 십자가에서 내려 올 수 있는 자, 사람들은 이렇게 할 수 있는 메시아를 기다렸다. 마음대로 살 수 있는 메시아를 기다렸다. 예수가 이런 사람이었다면 결코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매달린 놋뱀보다 맘대로 돌아다니는 불뱀을 바라보고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황제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헷갈리고 시원치가 않은 것이다.
관계 속에 사는 제한
사람이 받아야 할 제한이 무엇인가? 그것은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직접 붙여준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사람이다. 이 관계를 떠나면 이름을 잃고, 사명을 잃고, 모든 것을 다스리는 자의 자유를 잃는다.
사람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않으면 안 되고 생명 공급을 받지 않으면 안 될 사람으로 지어졌다.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과 사람이 동거하는 동산을 맡겼다. 너무나 영광스럽고 귀중한 자리를 맡겼다. 생명의 공급을 받지 않으면 죽는 그런 인간에게 맡긴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제한 속에서 나타난다. 아브라함의 가능성이 끝났을 때 하나님 아들의 형상인 이삭을 얻었고, 야곱의 욕망이 끝났을 때 세상을 통치하는 영광이 나타났다. 이 모든 것이 죽고 다시 난 새 생명의 원리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하신 말씀처럼 이 사람을 알 때 자유하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면 자유하게 된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도 자유해지고 내가 나를 생각해도 자유하고 어디에도 매일 것이 없는 사람이 된다. 이것이 진짜 평화이고 평안이다.
참된 자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죽고 다시 산 그 속에만 참된 자유가 있다. 그에게 동일시 되면 저것이 나구나 알게 되면 자유가 생긴다. 십자가에서 죽은 하나님 아들을 보고 그것이 인간의 운명인 줄 알면 자유가 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