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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한 자
본문:계1:9~11
설교자: 김치현 목사 -
성경 본문
(요한계시록1장9~11절)
9.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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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3.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한 자
밧모 섬에서(9절)
1세기는 사도들의 고난의 시기였다. 스데반과 야고보가 돌 맞아 죽었고, 베드로와 바울이 사형을 당했다. 요한이 머물렀던 에베소에 도미시안 황제의 신전이 건립되었고, 요한은 정치범 유배지 밧모섬에 18개월 유배되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으므로 말미암아”(9절) 라고 말한 것이 유배의 이유였다. 거기서 성령에 감동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통치의 이상을 본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자유로운 영혼에게 열리는 것이 아니라 갇힌 자에게 열어 보여 졌다. 밧모 섬에 유배된 요한,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바울, 또한 구약에서 시위대 뜰에 갇힌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열렸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렙33:1,2)라고 하였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되고, 나로서는 아무 할 말이 없을 때 하나님을 말씀이 들리게 된다.
예수의 환난에 동참
요한계시록은 다니엘서와 많은 관련이 있다. 다니엘서는 주전 160년 경 안티오쿠스 4세의 성전모독 사건에서 발단 된 마카비 혁명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 때의 환난 기간이 3년 반이었는데, 계시록에 도미시안 황제의 박해가 잠시라는 것을 다니엘서의 마카비 혁명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환난은 잠시(3년반), 예수의 나라는 영원(천년)하다는 것이다.
예수의 환난은 무엇인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가 자기들의 기득권을 침해해서 버렸고, 정치가는 이용할 가치가 없어서 버렸으며, 군중들은 자기들의 소원을 이루어줄 사람이 아니어서 버렸다. 고운 모양도 풍채도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어서 멸시를 받아 버린바 되신 분이다. 이것은 근원적으로 아담이 자신의 벗었음을 부끄러워 한 것과 같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아 한 그 사람을 아담은 부끄러워 가린 것이다. 예수의 환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예수를 죽인 그것을 몸에 짊어지고 사는 것”이고(고후4:10),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히13:13).
예수의 나라에 동참
당시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거대한 로마 제국이었다. 그리고 그 배후는 사탄이다. 거대한 제국을 무슨 수로 이기겠는가? 그런데 요한은 일곱 금촛대를 보았다. 교회를 본 것이다. 제국을 이기는 것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교회, 즉 하나님 나라로서 이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라 하신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천국(the kingdom of heaven)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와 같은 말로써 하나님 통치가 임하는 것을 말한다. 계시록의 큰 주제는 “우주의 통치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이다. 신적 권위를 가진 황제 앞에 예수는 거대한 짐승 앞에 갓 죽임당한 어린양에 불과했다. 그런데 영적 눈으로 보니 죽임당한 어린 양이 보좌에 앉은 것이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5:12)
예수의 인내에 동참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14:22) 하였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자면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아브라함을 기다리게 하셨고, 요셉과 다윗을 기다리게 하셨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성품은 기다림이다.
진리는 누구를 대항해 싸우는 것도 아니고 이기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진리는 그대로 있는 것이다.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고후13:8)라고 하였다. 예수님에 대해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마12:19) 하였다. 예수는 자기를 핍박하는 사울에게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행26:14) 하셨다. 핍박받는 예수가 고생이 아니라 핍박하는 사울이 고생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가장 존귀한 축복이다. 주께서 맛보신 모든 일을 함께 맛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의 형상이 나타나게 되는 길이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주의 식탁에 앉아 주가 맛보신 것을 함께 먹고 마시는 축복을 누리는가?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