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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교회(몸)로 사는 생활
본문:(엡1:17-19,23)
설교자: 정한성형제 -
성경 본문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1:17-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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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4. 교회(몸)로 사는 생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은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산 혼이 되게 하시고 그 사람을 동산 안에 두셔서 생명나무를 먹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사람이 한 실체가 되어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거짓말에 속아 선악을 아는 지식을 먹고 사탄의 종이 되었고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가 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신 것은 이 옛 사람을 끝내고 당신의 생명을 분배하여 새 사람으로 영원한 유업을 잇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유업은 새 사람으로 건축된 교회이다. 교회는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산 한 운명, 한 생명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몸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이루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의 옛 생명을 처리하신다. 부르심의 역사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브라함 99세 때 하나님께서 “생명의 때를 따라 분명히 너에게 돌아오겠고 그때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하셨다. 아브라함의 때가 끝나고 하나님의 때, 생명의 때가 시작 되었다.
제자들은 각자 소망을 가지고 예수를 따랐다. 그들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을 듣고 해석하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까지도 12명의 생각은 모두 달랐다. 그러나 베드로부터 가롯 유다까지 모양은 달랐지만 자기중심적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일하다.
나는 교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건들을 거쳤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조용한 편에 속한 사람처럼 보였으나 항상 그 사건의 중심에서 나를 발견하였다. 나보다 더 적극적인 형제들이 나를 대신하여 문제를 일으켰고 매 맞았고 징계 받았다. 처음에는 ‘나는 너희들과 달라.’ 라고 생각했으나 나는 숨어 있고 그들은 노출되어 있을 뿐 다 한 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뿌리가 뽑히지 않으면 표면적인 것으로는 만날 자리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교회는 우리의 포장을 벗기시는 분으로 인해서 포장 밑에 잠자고 있던 것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다. 무엇이 드러났는가? 아담이 먹었던 그 선악과가 무성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오랜 시간 서로 찌르고 상처 주는 생활을 했다. 물리적이지는 않았지만 처절한 전쟁 속에 살았다. 결국 한 사람도 나와 하나 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오히려 교회에 와서 세상에서 경험하지 않았던 절망을 경험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이상이 모두 가짜라는 것이 드러났을 때 허망했고 나의 좋은 생각이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는 것에 절망했다.
대명동 살 때, 목사님께서 앞산 밑에 교회를 지을 수 있은 좋은 땅이 나왔다고 하셨다. 그래서 몇몇 형제들이 모여서 그 땅을 꼭 구입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그런데 목사님은 결정을 못하셨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흐지부지 되었고 우리의 마음도 식어 버렸다.
대 집회 후면 뜨거워진 마음으로 마치 천정을 뚫을 것 같은 충만한 간증들을 쏟아 내었다. 그런데 목사님은 달구어진 쇠에 찬 물을 붓듯 우리의 충만을 식혀 버리셨다. 이런 일들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우리의 자랑이고 우리를 지탱해 주던 것들, 충만도 충성도 열심도 점점 사그라졌다. 만약 그때의 그 충성과 열심과 헌신이 바탕이 되어 교회가 되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우리의 40년은 아담의 씨가 발아하고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우리 자신으로 증명해 낸 실험의 시간이었다. 선악과는 동산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때를 살았고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하였다. 아담에게는 자기의 때밖에는 없다.
아브라함은 13년간의 과정을 통해 그가 지은 집이 총체적으로 무너져 버렸다. 모든 소망이 허물어졌고 자기로부터 시작한 것의 결과 속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가신 것이다. 실상 하나님은 늘 오셨지만 자기 집을 짓고 있는 아브라함 속에는 하나님이 머무실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그가 허물어졌을 때 그는 찾아오신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내 인생이 허물어진 날이 생생하다. 나는 깊은 어둠 속에 있었다. 오랫동안 말씀을 들었고 함께 살았으며 나만큼의 충성을 했고 오직 교회밖에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갈등과 전쟁과 분열이었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무너지던 날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목사님도 정말 모르겠다.’ 했다. 더 이상의 소망이 없었다. ‘말씀을 들으면 뭣하나 될 대로 되라’ 처음으로 내 자신에게 포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날 하나님 말씀이 들려왔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 내가 들은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찾아오신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처음으로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났다. 버리고 떠나간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신 그 주님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붙들렸고 그에게 이끌렸다. 내 앞에 나의 주님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에게 열린 문은 그 문밖에 없었고 뚫린 길은 그 길밖에 없었다.
목사님은 처음부터 십자가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예수를 말씀하셨으나 나는 뛰어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기 때문에 그 말씀이 내게 도달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허물어지는 날, 내 앞서 버림받으신 예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예수 외에 나를 포함할 분은 없다. 이 사람이 나의 생명이고 나의 길이다. 나를 절망케 하신 것은 바로 이 사람이 참 사람임을 알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긍휼이었다.
주님은 나를 당신의 구속 안으로 인도하셨다. 이 구속 안에서 비로소 형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십자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보였다. 내가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었던 말이 ‘교회’라는 말이었다. 교회는 나에게 비밀이었다. 그런데
이 구속의 자리에서 교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부르신 목적은 바로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동안의 과정은 은폐되어 있던 아담이 폭로되는 것이었다. 내가 허물어지던 날이 십자가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예수 안에서 발견되기 시작하는 날이었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었고 장사되었고 매장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우리를 일으키셨다. 할렐루야! 함께 일으키심은 십자가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이 사람을 머리로 새로운 한 몸을 건축하기 위함이다. 뛰어내릴 수 있다고 속은 아담은 바벨을 건축하였고 뛰어내릴 수 없는 예수는 교회를 건축하셨다. 교회는 조직도 제도도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다. 십자가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진실한 사람으로 건축된 그리스도의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