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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본문: 마3:13-17
설교자: 정한성형제 -
성경 본문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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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4.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침례 요한은 침례 받으러 오는 유대인들에게 “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사셨다. “나는 그의 말씀이 영생인줄 아노라.”(요12:50)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사탄의 말을 중하게 여김으로 그의 종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서 들려오는가?
흙이 흙의 자리에 있으면 씨가 찾아온다. 하나님 말씀은 창조자가 피조물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씀이다. 자기 자리를 떠나면 하나님의 말씀은 들리지 않는다.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4)
네피림 시대에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고, 바벨 시대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자리에 있는 자에게 말씀이 들린 것이다. 생명은 가장 연약한 자리에 찾아온다. 예수는 가장 연약한 자리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이 충만하여 광야로 나가서 연약한 인생을 가지고 마귀와 싸워서 승리하였다.
사탄은 연약한 인생을 조롱하고 송사하여 자기의 양식을 먹여서 강한 자가 되게 하였다. 예수는 가장 연약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흙으로 지어진 인생이 하나님이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자임을 알고 이 사람으로 사탄을 정복하였다.
원래 하나님은 흙으로 지으신 사람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다.” 하시고 자기의 배필로 삼으셨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이 사람으로 하여금 “땅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르리라.”고 하셨다. 예수의 절대적 가난함이 하나님의 비밀을 열었다. 그는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예수에게서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이 열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음성이 예수의 인생을 완전히 점령해버렸다.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구나!’
선악지식을 먹은 아담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율법적으로 들린다. 아담은 선악지식의 바탕 위에서 하나님 말씀을 가져와서 자기를 세운다. 자기 의(義)로 하나님의 의(義)를 대적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義)이신 예수를 죽었다.
예수는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였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100세이고, 야곱의 130세이며, 모세의 80세이다. 아담이 끝나고 그리스도가 시작된 것이다. 예수는 요단강에서 하나님 말씀이 들린 것이다. ‘나는 원래 아버지로부터 왔구나. 나는 원래 아버지의 품 안에 있었구나.’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내 생명임을 알 때, 그 말씀이 내 육신이 된다. 인생의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 길이 다른 것들 때문에 가려져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빛이 다 사라져버릴 때 하늘의 빛이 비쳐온다. 하늘의 빛이 비쳐오면 그 빛 안에서 비로소 내가 발견된다. “만물이 그 상관하시는 자 앞에서 벌거벗은 자로 드러나느니라(히4:13).”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하나님이 창세전에 정해놓으신 인생의 길이 보인다.
왜 방황하는가? 빛이 없기 때문이다.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 길을 보았고, 이 길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알았다. 생명이 곧 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길이 보이면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요12:23-28).” 이 영광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일이다. 성소에서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구약 몇 천 년 동안 지성소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없다. 하나님과 사람은 다만 간접적으로 만나고 있었을 뿐이다.
예수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알았다. 하나님께로 가는 것은 완전한 피조물로 드러나는 것이며, 아버지께로 가는 것은 완전한 아들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 길은 자기 육체를 깨뜨려서 하나님을 증거 하는 길이다. 예수는 육체는 보존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있는 것임을 알았다. 지성소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육체가 찢어지기 전에는 해방되실 수 없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하나님을 보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을 해방시키지는 못했다. 예수는 자기 육체로 모든 역사와 종교의 껍질을 깨고 하나님을 해방시켰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사시는 새롭고 산길을 활짝 열어놓았다.
“내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내가 그니라.” 유대종교는 ‘사람이 어찌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느냐?’이다. 예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이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오늘 우리가 종교의 질문 앞에 확실한 대답을 갖지 못하면 종교에서 벗어날 수 없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빗겨가는 것이다. 예수는 이 대답의 결과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십자가는 ‘예수(사람)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 아닌가?’를 밝히는 자리이다. 사탄과 하나님 간의 마지막 전쟁이다. 예수님은 완전히 버려졌고, 완전히 포기되었고, 완전히 죽임 당했다. 마지막 남은 인간의 모든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다. 예수님이 마지막에 보이신 것은 ‘나는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버렸던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인생의 운명(진실)을 확실하게 드러내셨다.
선악과를 먹고 무화과, 가죽옷으로 가려졌던 아담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벗겨졌고, 벗겨진 예수 안에 우리가 멸시하고 버렸던 흙으로 지어진 사람이 완전하게 공개되었다. 우리는 이 사람을 부끄러워하여 사탄의 종이 되었고, 예수는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사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사람으로 자신을 나타내시고, 이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경륜을 이루신다. 이 사람으로 사는 삶이 바로 교회생활이고, 왕국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