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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한 새사람
본문: 창1:26-28
설교자: 정한성 목사 -
성경 본문
(창1:26-28)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엡2:14-16)
그는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儀文)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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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2021년 개천절 연합성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
7.한 새사람
하나님은 단체적인 실체로서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기를 원하셨다. 옛 창조가 이런 목적에서 어긋났기 때문에 옛 창조를 십자가로 끝내시고 한 새사람이라는 새로운 실체를 창조하신 것이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도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20).” 성소의 휘장에는 그룹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이 그룹들은 첫 번째 창조에 속한 모든 피조물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것이 찢어졌다는 것은 첫 번째 창조에 속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후에 하나님의 지성소가 열린 것이다.
십자가는 옛 창조에 속한 모든 것, 우리 육신에 속해있는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끝내는 것이다.
한 새 사람을 창조하기 위해서 이것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을 폐기해야만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다 폐기되고 하나님의 본성이 사람 속에 들어오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본성만이 한 실체를 이룰 수 있고 하나 되게 할 수 있다.
교회는 새로운 세계이다. 한 새사람이라고 표현되는 새로운 인류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로 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이다. 한 본성, 한 말씀, 한 생명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외형적인 것은 서로 달라도 본질은 하나이다. 똑같은 나무에서 꽃이 핀다고 해도 같은 꽃잎이 없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이다. 그런데 옛 창조 안에서는 서로 다르다는 것 때문에 갈등과 대립을 하였다. 공산주의는 계획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통일시키려 했으나 가장 불행한 세계를 만들었고, 자유주의는 다양성을 추구하지만 끝없는 분열의 길을 가고 있다.
예수님은 이러한 옛사람의 모든 요소를 끝내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고 끝내셨다. 옛사람에게 속한 모든 문제는 옛사람이 끝나면 자연히 끝나는 것이다. 옛사람이 끝나지 않으면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는 옛사람을 끝내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한 새사람을 창조하기 위함이다. 한 새사람이 완성되지 않는다면 믿음도 헛되고 구원도 헛되고 연단도 헛되고 모든 것이 헛되고 마는 것이다.
옛사람을 끝내는 것은 새사람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 새사람이라는 새로운 인류는 교회 가운데 가장 높은 개념이다. 에클레시아 - 권속 - 몸 - 한 새사람. 이 ‘한 새사람’이라는 말은 단체적인 실체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러 개의 재료로 말미암아 하나의 건축물이 되는 것, 한 사회, 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판자들이 연해서 배가 되어야만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내가 하나의 지체이듯이 다른 사람도 또 하나의 지체이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몸 안에는 많은 지체가 한 유기적인 실체를 이루고 있다. 이것을 우주적으로 확대한 것이 바로 ‘한 새사람’이다.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고 내가 그의 표현이 된다고 해도 우주적인 실체, 사회화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세상을 보면 거대한 바다, 거대한 물결이다. 방주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이다. 연합하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지 않으면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예수님은 이 한 새사람을 창조하기 위하여 자기 육체로 옛사람에 속한 모든 것을 파기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이라는 단체적인 실체로서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기를 원하신다.
왜 꼭 십자가가 필요한가? 십자가에 못 박혀 내려올 수 없는 예수만이 한 새사람의 본질이다. 오직 이 사람의 운명밖에는 교회가 될 수 없다. 내 생명밖에는 내 몸이 되지 못한다. 생명에는 생명 아닌 어떤 것도 용납되지 못한다.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것도 들어올 수도 없고 들어와서도 안 된다. 교회가 성장했다고 하는 것은 이 생명이 자랐다는 것이다. 새 인류가 되게 하는 유일한 요소는 그리스도 자신밖에 없다. 생명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명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 단체적인 실체는 언제 생겼는가? 우리가 창조되기 전에 한 새사람이 창조되어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 되어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세계를 만들어놓고 우리를 이곳으로 초대하신 것이다.
“왜 여기서 놀고 있느냐?”, “나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있어서 놀고 있습니다.”, “그럼 내 농장에 와서 일하라.” 교회 안으로 들어올 때는 한 새사람이라는 사회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가 사실뿐 아니라 온 백성이 들어올 수 있는 당신의 나라를 만들어놓으신 것이다.
“너희는 새사람을 입으라.” 구약에서 하나님은 성막을 입고 계시고, 예루살렘을 입고 계시고, 이스라엘을 입고 계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옷 입고 계시고, 그리스도는 교회를 옷 입고 있고, 교회는 왕국을 옷 입고 있고, 왕국은 새 예루살렘을 옷 입고 있다. 교회는 우리의 옷이고, 우리의 집이다.
전에는 육신이 우리의 혼을 지배하였고, 혼이 우리의 영을 지배하였다(창6:3). 그러한 한 새사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통제 안에서 영이 통제받고, 영이 혼을 통제하고, 혼이 육체를 통제함으로 이제는 우리가 육체가 아니라 ‘한 영이 되었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생활이다. 우리는 지금 한 새사람을 나타내고 있고, 살고 있고, 표현하고 있다. 내 몸에는 아직 때가 많지만 옷은 아주 좋은 옷을 입고 있다. 이 좋은 사회 속에 살다 보면 나도 그 사회 사람으로 모든 것이 변화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아름다운 사회를 주셨음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교회를 주신 것은 우리가 살 수 있는 사회를 주신 것이다. 우리는 이 사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우리 교회, 우리 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서 더 평화롭게 살 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더 깊이 누림으로써 많은 다른 사람을 이 사회 안으로 초청할 수 있다.
우리는 점점 더 큰 집으로 지어져서 그 집안에서 모든 사람이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영원한 기업이 되어서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