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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본문: 에베소서 2장 20절
설교자: 김치현 목사 -
성경 본문
(에베소서 2장 20절)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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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2022년 가을집회
반석 위에
1.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터
우리는 개인적인 이유로 하나님을 찾게 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 안에서 우리로 당신의 집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신다.
바울은 이 집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졌다고 말했다.
집을 흔들리는 터 위에 세울 수 없기에 반석을 찾아 세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마16:18)라고 하셨고
바울은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고전3:11)라고 말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터는 바로 죽고 다시 산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흙으로 지음받아 생명의 씨를 받을 수 있는 귀한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 침해받고 유혹받기 쉬운 존재이다.
첫 사람 아담은 흙으로 지어져 유혹받았지만,
둘째 사람 그리스도는 돌로 보석으로 강화된 생명이기에 유혹에서 승리하셨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반석이 되셨다.
창세기 1~2장은 타락하여 무화과 잎으로 가리기 이전 모습을 보여준다.
구속은 단지 태초의 아담으로 돌아가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 안으로 포함되고 연합되어,
그 안에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집으로 건축되는 것이다.
선지자들의 터
우리는 수많은 사람이 걸어온 토대 위에 서 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의 돌만으로 건축할 수 없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서 열두 돌을 취하여 기념비를 세웠다.
이스라엘을 건축하는 데는 열두 돌이 필요했고,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는 데는 열두 보석이 필요하다.
선지자들은 구약 시대의 사람이다.
율법은 모세로부터 왔지만, 시대마다 율법을 새롭게 한 사람은 선지자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는 길을 준비한 사람들이다.
신약의 물꼬를 트고, 그리스도의 길을 평탄케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 많은 표현이 선지자들에게서 왔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외침도 세례요한이라는 선지자에게서 왔다.
신약의 경륜에 이르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들이 닦은 터는 그리스도가 오시는 길이 되었다.
사도들의 터
사도들은 예수를 증거 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사도들이 예수를 증거한 내용은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열두 제자들은 예수를 경험하고 나서 그 역사적 실체를 보존하고 증거했다.
둘째, 역사적 예수의 삶은 죽음으로 함축되었고,
사도들은 선지자들의 말씀을 토대로 그의 죽음을
“우리를 위한 죽음” 곧 ‘대속 제물’로 해석하고 선포했다.
셋째, 바울은 사도들의 터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이해했다.
바울은 사도들이 말한 대속의 죽음이,
실상 예수와 함께 내가 죽었다는 것을 말한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5:1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처럼 계시는 누군가가 본 것을 토대로 점점 더 분명하게, 더 넓게 발전된다.
하나님의 우주적인 집은 해 돋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 모든 사람을 포함하여 건축된다.
이 터는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닦은 터 위에 세워졌는데 이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확고한 기초가 되셨기 때문에 사도들이 그 위에 첩 놓였고,
사도들이 확고한 터가 되어서 우리가 그 위에 첩 놓였다.
아담은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흙에 새겨진 말씀이 쉽게 지워졌다.
모세는 연단을 거쳐 돌이 되어, 돌판에 말씀을 새겼다.
이 돌판에 새긴 말씀이 예수의 인격 안에 와서
육신이 된(인격으로 만날 수 있는) 하나님 말씀이 되었다.
예수 안에서 비로소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한 사람을 보았다.
분명히 사람인데 하나님의 마음이 인격으로 표현된 사람을 보았다.
분명 예수는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가진 분인데, 하나님 영광의 형상이셨다.
그는 우리 썩을 육체를 하나님 영광의 표현체로 변화시키신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모퉁이돌이 되심
하나님의 집은 여러 개의 벽을 연결해서 지은 집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두 벽을 연결하는 모퉁이돌이 되셨다.
“너희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요긴한 돌이 되었다.”라고 한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결되었듯이,
교회 건축에 가장 중요한 관건은 만나질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일이다.
모퉁잇돌이 없으면 아무리 개인적으로 변화된 사람들이라도 모여서 집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들을 연결할 수 있는가?
십자가 앞이 아니면 누구와도 온전하게 만나지지 않는다.
하지만 십자가의 자리에서는 누구도 차별을 둘 수가 없다.
거기에서는 우리를 갈라놓은 행위와 생각의 차이까지도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사람은 누구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 이 버려진 사람 안에 모든 사람이 포함되는 기이한 능력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