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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는 기록 된 대로 가심
본문: 마26:24, 31, 35-75
설교자: 이성규 형제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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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인자는 기록 된 대로 가심
(마26:24, 31, 35-75)
기록된 두 길 (생명의 길, 선악의 길)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께서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달리게 되었을 때 베드로가 주님을 따르는데 철저하게 실패한 모습 과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완성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두 세계가 대조되는 장면이다.
베드로의 실패
예수님은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 목자를 치면 양은 다 흩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31) 하셨다. 이에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 했다.
주님은 기록된 대로 가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길로 가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 생각 안에서 자기의 길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 인지를 모르고 있다. 자신은 예수에게서 실족하지 않을 줄로 확신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되었다.
길을 몰랐던 가룟 유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하였다.”(24) 예수를 팔았던 가룟 유다는 예수와 자기를 다른 사람으로 생각했다. 알고 보면 이 두 사람이 다 똑같은 사람이다. 가룟 유다는 자기의 영원한 운명(길)을 판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버렸다. “저 사람은 나사렛 사람 예수다. 저 사람은 참람한 사람이다. 우리 종교와 다른 이단이다.” 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영원한 자기의 운명(길)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1. 기록된 길(로고스)
사람이 가야 할 길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로고스’라고 한다. ‘사람은 80살을 먹고 90살을 먹으면 무덤으로 간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기록된 데서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한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자기가 기록된 대로 가는 사람인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에 대해서 이미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길을 가 보려고 발버둥 치다가 예수를 팔게 되었다. 예수를 판 것은 곧 자기를 판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고 난 다음에 자기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우리도 우리의 길을 거절하고 나면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인생은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선악과 먹은 아담은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어 “하나님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암흑이 되어버렸다. 생명의 길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픈 인생 안에서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사람은 안 돼” 만 반복되는 것이다.
기록된 길이 한사람으로 드러남
예수님은 기록된 대로 가는 사람이 무엇인지 그의 일생을 통해 나타내셨다. 수천 년 감추어진 그 기록 된 길이 그렇게 사는 한 사람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예수는 “인생이 하나님을 표현하는 자리에서 완전하게 지음 받았구나!”를 증명해 내신 것이다. 예수님은 인생에게 정해진 길을 가셨고 그 길의 끝에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승리를 선포한다. 선지자로 가끔씩 보였던 정해진 길이 나타난 것이다.
정해진 길, 로고스를 걷다 보면 우리 안에 축복이 경험된다. 이것이 주관적으로 경험된 레마이다. 로고스가 아무리 쌓여 있어도 그 길을 걷는 사람이 없으면 그 길은 없는 것과도 같다. 그 길을 우리 인생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2.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우리의 길)
1) 하나님 형상을 드러내심
“하실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십시오. 그러나 내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가 없거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 여기서 예수의 목적은 사라지고 아버지의 뜻만 나타내는 참 인격을 드러내셨다.
2) 유월절 양과 떡으로 오심
“우리의 유월절 양” 이 양고기를 먹고 애급을 탈출하고 최후의 만찬에선 자신을 떡으로 말씀하셨다, 양고기를 먹음으로 양과 같은 성분이 되어 순종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 지는 것이다, 이 사람은 섬김과 드려짐이 생리가 되고 운명이 된다.
예수님은 생밀처럼 먹을 수 없고 단지 경배와 찬양을 드릴 분이어서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먼 곳에 계신 분이었으나 여러 과정으로 가루가 되시고 십자가에서 뛰어 내릴 수 없는 그분으로 먹을 수 있는 떡이 되신 것이다. 믿고 있는 예수는 생밀 자체이고 먹을 수 있는 예수가 떡이신 예수인 것이다. 우리의 모든 과정도 먹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어서 이 과정은 기록된 길인 것이다.
3) 십자가의 운명이 기초임
십자가를 지심으로 아버지 뜻대로 사는 참 사람의 운명을 보여 주셨고, 생밀이 아닌 먹을 수 있는 떡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이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높은 데가 아닌 먹을 수 있는 하나님으로 오신 것이다. 이렇게 예수를 먹을 때 예수의 운명이 내 운명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기록된 길이다.
3. 우리에게 베풀어진 축복의 상
1)먹을 수 있는 하나님이 오셨다.
구워진 떡을 먹고 우리는 또 떡이 되어간다. 그분을 먹고 우리도 또 먹혀지는 운명이 되었다.“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두드리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2)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고전10:16)
한 상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음은 한 제물을 나누어 먹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이 축복의 잔을 나누고 있다.
3) 먹고 마시면 주님의 길이 우리의 심비에 새겨져 이 길을 걷게 되고 보여 지는 삶이 된다.
기록된 대로 살아야함
우리가 따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했을 때 선악과가 필요했다. 내가 따로 운명을 개척할 필요가 없는 사람인 줄로 알게 된다면, 나도 역시 십자가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선악과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기록된 운명 안에 있다. 선악과 안에 있다면 흙으로 돌아가도록 기록되어 있고 생명나무 안에 있다면 하나님의 후사가 되도록 기록되어 있다. 생명의 노선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후사가 되고, 선악의 노선 안에 있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인자는 자기에 대해서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기록된 대로 가고 사탄은 사탄에 대해서 기록된 대로 간다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은 사람은 기록된 대로 간다. 그는 율법 안에서 사람은 반드시 땀이 흘러야 먹고 살게 되어 있다.
하나님 말씀은 모두 있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주님의 몸에 참여한다면 바울의 말처럼 “우리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하는 말을 하게 된다.
선악과로 말미암아 생명의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 같이 되려하면서 “사람은 안 돼”, “난 안 돼”를 반복하였던 것이다.
주님은 사람이 온전한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기록된 길로 가셔서 증명하셨다. 예수를 먹고 마심으로 우리 생명에 기록되어서 우리도 이 기록된 길로 가는 것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