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의 건축을 위임하기 위하여
본문: 요21:15~18
설교자: 이효용 형제 -
성경 본문
-
말씀 요약
생명의 건축을 위임하기 위하여
(요21:15~18)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신 것은 무엇인가를 위임하고 부탁하기 위해서였지만 그들은 자기 일에 매여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다.
그 날 제자들은 밤이 맞도록 수고했지만 고기를 못 잡고 굶주리고 있었다. 그 때 주님이 직접 준비한 조반을 먹이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a. 사랑하는 사람에게 위임하기 위해
베드로는 분명히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나 주님의 일을 위임받기 위해선 그 이상의 확고한 관계가 성립되어야 했던 것이다. 주님의 일은 이 땅위에 그의 생명으로 몸 된 교회를 건축하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위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싶었던 것이다.
b. 사랑을 확인하심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거듭 물으심에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시나이다.”고 대답했다. 세 번째 물음에 근심하며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주님은 왜 세 번이나 거듭 사랑하느냐고 물었을까? 베드로는 세 번 주님을 부인했다. 세 번은 완전히 부인했다는 말이다. 확실히 부인했기 때문에 확실한 사랑을 고백해야 했던 것이다. 그 사랑의 고백을 듣고 주님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말씀하셨다.
양을 먹이는 것은 양식을 주는 것이고, 양을 치는 것은 양떼를 인도하는 것이다. 인도의 목표는 건축하는 것이다. 먹이는 것은 생리적인 양육으로 여자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그러나 기르는 것은 사랑의 돌봄이기에 의지적이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양들을 칠 것을 위임하셨다.
주님의 일을 위임 받을 사람은
첫째, 다시난 생명이라야 함
창조된 인간은 원래 생기를 받았을 뿐 아직 영생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사탄으로부터 선악의 지식을 받았으므로 옛 생명으로는 주님의 일을 위임받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나라의 건축을 위한 생명을 주시려 아들을 보내셨다. 그러므로 그를 만난 사람은 그분과 함께 죽고 함께 살아 새 생명으로 다시 나서 주님의 위임을 받는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롬6:8)”
둘째,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함
먹이고 기르려면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하려면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사랑은 창조에서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아들을 주심에서 나타났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사랑하는 것은 자기 생명을 주는 것이며 그 안에서 죽는 것이다. 주님은 “내가 너를 사랑한 것(agapao)처럼 너도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고 베드로는 “내가 어찌 주님의 사랑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필리오(Phillio) 할 수 밖에 없습니다.”로 대답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고 싶었던 사람이었지만 옛사람의 한계로 완전한 실패자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나?
왜 베드로는 실패자가 되었나? 자기와 너무 다른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외모가 같아서 비슷한 사람인줄 알고 따랐지만 오고 가는 길과 생명이 너무 다른 사람을 만난 것이다. 베드로는 우리의 대표자이다.
주인과 일심동체가 되어 주인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모두 선악과를 먹고 태어났기 때문에 주인이 없는 야생마처럼 쓸모가 없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일을 위임하기 위하여 사랑이 넘치는 베드로가 필요했다. 그러므로 주님께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에게 붙잡혀 다루심을 통한 공과를 배워야 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