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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핵심
본문: 요15:1~5
설교자: 이재승 형제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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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복음의 핵심
(요15:1~5)
1. 접붙임과 포함
포도나무는 원래 머루였는데 접붙여져서 좋은 포도가 된 것이다. 바울은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쓴 사람인데 그가 발견한 가장 큰 진리는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첫째는 ‘포함’의 비밀이고 둘째는 ‘접붙임’의 비밀이다. 우리의 운명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포함되고 부활에도 포함되는 비밀을 발견한 것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17:21) 그리고 돌감람나무에서 잘리고 참감람나무에 접붙여 나무 전체가 참감람나무로 변화되는 놀라운 그림을 발견한 것이다.
(원래 머루나무였는데 참 포도에 접붙여져 나무 전체가 참 포도로 변한 것이다.) 접붙일 때 습기가 마르지 않도록, 잘 접붙여지도록 이끼로 감싸고 비닐 테이프로 잘 감아 줘야 한다. 그러면 수액이 밤새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나무 전체가 좋은 포도나무로 변화하는 것이다.
현대 농사는 접붙여지는 작물이 많다. 면역력도 좋아지고 좋은 열매가 맺히기 때문이다. 주님과 우리 사이 좋은 수액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안 우리 인생이 새로워지고 놀랍게 변화하는 것이다.(교회에서도 형제 자매들 간에도)
포도는 계속 전지를 해 주어야 열매를 잘 맺는다. 열매 맺지 못할 선악과가 계속 가리고 있으면 좋은 열매를 못 맺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것을 가려내는 것이다. 그것을 미리 잘라내고 연합을 가져오는 생명나무 가지를 키워야 한다.
머루는 열매맺어도 초라하지만 포도는 생명의 풍성을 상징하는 나무다.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것은 너무너무 탐스럽다. 포도나무는 넝쿨이니까 정말 보기가 싫은데 왜 가꾸는가? 풍성한 열매 때문이다. 성전 현관에 세워져 있는 황금나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를 왜 포도나무로 해 놨는가? 이스라엘의 번성을 위해서 세워놓은 것 같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가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 것도 제자들로 하여금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려고 이 말씀을 당부하신 것 같다. 세상을 떠나시는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도록 당부하신 것이다. ‘이 포도나무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어라.’ 우리의 삶에서 이런 포도열매처럼 풍성한 열매가 맺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없는 행복이고 영광이다.
무릇 내게 있어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하여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고 이를 깨끗하게 한다. 깨끗하게 한다는 말이 가지를 자른다는 말이다. 주님 안에 거하므로 그 열매가 되게 한다는 말이다. 농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경작을 하고 나무는 붙어만 있으면 자기 생리적으로 영양을 공급하게 되어 있다. 그러면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러므로 다만 가지는 나무에 유기적인 관계 안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된다.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만일에 스스로 열매를 맺으려고 한다면 이것은 생명에 대한 일종의 거역이다. 생명은 유기적으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데 자기 혼자 뭐가 되어 보겠다든지 자기 혼자 깨달아 보겠다, 자기 혼자 도를 통해 보겠다, 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자만심이고 거역이다. 생명은 유기적으로 흐른다. 그렇게 하면 방황하게 된다.
산 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시므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눈에는 살았냐 죽었냐 이것만 보이지, 선한 자를 통해 나타나느냐 악한 자를 통해 나타나느냐, 이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들의 눈에도 산 자와 죽은 자만 보여야 된다. 잘하냐 못하냐 이것이 보이는 게 아니고, 살았냐 죽었냐 이것이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2.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노선과 싫어하시는 노선
하나님은 아담의 후손들이 타락하고 나서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다.(창6:6)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너는 나의 친구다. 너에겐 어떤 비밀도 숨기고 싶지 않다.”, 다윗을 보고는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자다.”, 예수를 보고는 “내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아들이다.” 하신 것이다. 어느 노선을 따르느냐가 이렇게 중요하다.
3. 십자가 의미 재조명
나는 십자가에 대해 수십 년을 들었는데도 그 의미가 분명해지지 않았다. 인간적으로 종교적으로 십자가를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의 입장에서 해석하게 되었다. 모든 게 100점인 예수를 0점으로 낮추심으로 즉 존재만 남게 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그 안에 포함되게 하신 것이다. 지성소에 들어갈 때 제사장은 세마포 옷을 입도록 되어 있다. 세마포는 다 빼내고 존재만 남은 것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세마포를 제일 좋아하신다. 존재만 남도록 하는 것이 십자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하나님으로 하여금 새 창조를 하시게 하는 일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새 창조의 하나님이시다.
내가 그의 죽으심 안에 거함으로 그의 말씀이 부활의 능력으로 생명의 열매로 나오게 되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될 것이다.
열매는 나무의 생명의 풍성이고 그 뿌리의 영광이며 이것이 바로 인생의 영광이다. 여기에 와서 비로소 ‘아~ 이래서 인생이 있구나. 내가 왜 그렇게 살았던가? 왜 그런 길을 걸어왔던가?’ 열매를 거둘 때 ‘아~ 이래서 그랬구나.’ 하고 다 알게 된다. 주님 안에 오지 않으면 자기 인생을 거둘 곳이 없다.
유기적인 생명의 열매는 뿌리의 영광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는 만물이 그 풍성으로 지으신 이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단은 무엇인가? 이것을 막기 위해서 선악을 아는 지식으로 생명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마귀는 지식으로 사람을 송사해서 자기 문제에 빠트리는 것인데 사람은 일생동안 자기의 문제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죽는다. 자기 문제를 다 해결하고 죽은 사람이 없다. 공동묘지에 가면 어떤 묘지에서도 “나는 다 이루었다.” 하는 묘지가 없다. ‘우물쭈물 하다가 나 이럴 줄 알았어!’ 이런 소리만 있지 ‘다 이루었다’는 데는 아무데도 없다.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럴 것이 아니고 오히려 주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자기만큼 다 이룰 수가 있다. 내 문제는 없고 내 문제는 하나님 문제 밖에 없다 하고 가면 자기 문제는 저절로 없어진다.
주 예수는 생명의 유기적 관계를 회복해서 풍성한 열매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다. 우리가 예수를 따르는 것은 우리가 그 분이 오신 목적을 따르는 것이다.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유기적 생명의 관계에서 열매를 맺어야만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에 완성된다. 창조의 목표에 완성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에 완성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창조되어졌다.
교회의 유기적 관계 안에서 맺은 열매를 가지고 세상에 내놓으면 최상품의 포도가 될 것이다. 목마른 사람, 배고픈 사람, 메마른 사람들에게 풍성한 열매가 될 것이다. 그것을 자랑하다 보면 자기 문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자기 문제를 버리고 하나님 문제로 들어간다.
4. 예수님 십자가 부활 후에 맨 처음 하신 일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 맨 처음 하신 일이 벽과 담을 허물어뜨린 일이었다. 이방인과 유태인간의 엄청난 두꺼운 벽을 허무시고 철천지 원수였는데 ‘형제여!’라고 한 식구로 한 권속으로 부르게 만드신 것이다. 이것이 최고의 기적이다. 교회에서 벽과 담이 남아 있지 아니한 것이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