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소리를 지르고 영을 포기하시더라
본문: 마27:45-50
설교자: 이민재 형제 -
성경 본문
-
말씀 요약
큰 소리를 지르고 영을 포기하시더라
(마27:45-50)
가. 하나님에게 버림당하심
예수께서는 당시 종교적인 최고 권위를 가지고 있는 제사장들과 서기관, 바리새인, 그리고 공회원들로 구성된 유대교로부터 저주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다. 그럴 때 사랑하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완전히 버린바 되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든 진실과 모든 의를 동원해서 예수라는 한 사람을 완전하게 버렸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가 그 어떤 사람의 세계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하늘로부터 왔다고 밖에는 할 수가 없다. 이 우주 가운데서 오직 한 사람, 모든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온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이 마지막 십자가에 달렸을 때, 하나님이라면 분명 그를 옹호했어야 했는데 하나님까지도 그를 버렸으니 여기서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의 효력은 없게 된 것이다. 부르짖으면 응답하고, 의로운 자에게 보상하고, 선한 자에게 상을 주는 그 하나님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땅이 흔들렸다는 것은 그때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믿음, 하나님에 관한 모든 관념이 흔들리고 새로운 법이 선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서에 보면 “땅만 아니라 하늘도 흔들리리라(히12:26).” 하는 말이 나온다. 땅은 흔들려도 하늘만은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데 하늘마저 흔들린다면 사람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1) 하나님에게 버림당하심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이것은 하늘이 흔들렸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를 보호해야 했다. 만일 이런 사람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믿을 만한 하나님이 못되는 것이다. 이렇게 의롭고, 선하고, 옳은 분을 십자가에 내버려진다면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이 하늘이 흔들린다는 뜻이다.
그는 분명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 하고 순종하였다(마26:39).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만은 내 편이라고 그를 전적으로 의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응답 없는 하나님을 볼 때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까지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하나님만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그 기대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이 되었던 것이다.
2) 그의 영을 포기하심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마27:50).” 여기서 크게 무슨 소리를 질렀는지, 어떤 절규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런 후 영혼이 떠나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수께서 자기의 영혼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누구에게 줘 버렸다(give up)는 말이다. 즉 육신도 포기하고 자기 생각도 포기하고 다 포기했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향해 붙잡고 있던 그 영마저 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난 자리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영혼이 떠나시니라.”고 했지만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는 “숨지시니라(막15:37,눅23:46).”고 했다. 죽었다는 것이다. 영혼이 살아서 하나님께로 올라간 분이 아니고 완전하게 끝난 분이다. 그 영마저 포기해 버렸기 때문에 세상에서 붙잡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고 했다(마28:51). 그리고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렸다고 증거했다(마27:51). 이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욥이 처참한 환경에 처했을 때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내가 와서 ‘여호와를 원망하고 죽으라’고 하였다(욥2:9). 그때 그는 아무도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주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압니다(욥42:2).” 하였다. 즉 내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시작되었다.
3) 휘장이 찢어짐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휘장의 두께는 12cm나 된다고 한다. 매우 두꺼운 휘장이 가려져있는 것이다. 창세기에는 생명나무 주위를 화염검으로 막아서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오늘날 많은 종교인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장막(휘장)이 찢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유대인들은 이 장막(휘장) 때문에 예수님을 버렸다. 만일 그들에게 이 장막이 없고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도록 문이 열려져있었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장벽보다 큰 장벽은 성소 안에 있는 휘장이다. 이 휘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인류 최초의 장벽이다.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더라(창2:22).”고 한 것은 장벽이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사람, 아담과 그의 아내 사이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완전히 찢어졌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던 담이 허물어졌고,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감춰졌던 비밀이다. 이 비밀 안에 교회가 있다.
이 휘장을 누가 걷어버리는가? 영을 포기해 버린 그 자리에서 이 휘장이 둘로 찢어졌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도 하지 못하고 사람도 하지 못하던 그 일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된 것이다.
이 휘장은 반드시 없어져야 할 휘장이다. 이것을 걷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밖에 없다.
나. 새 창조 안에서 우리를 부르심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며 죽은 성도들이 일어나 성에 돌아다니고(마27:51-52)” 이것은 새 창조를 말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창조 없이는 성소의 휘장이 찢어질 수가 없다.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 안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멸망에 이르고 만다. “그런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전5:17).” 예수 안에서,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새롭게 창조된다.
만약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다면 그분의 죽으심이 헛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3:1)” 라고 했다.
예수께서 죽으신 자리에 우리의 구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께서 죽으신 자리가 우리가 구원을 받는 자리다. 그 자리가 바로 내 자리다. 여기서 하나님의 일이 시작된다.
예수를 정죄하는 모든 사람들은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한다.’고 조롱하면서 “네가 너를 구원하고 내려와서 우리도 구원해라(눅23:35).”고 하였다. 남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군가?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수 없는 사람만 남을 구원할 수 있다.
만일 예수께서 거기서 뛰어내렸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러면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없다. 그가 영을 끝까지 붙잡고 놓지 않았다면 우리의 구원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영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 되었다.
예수님을 마지막 자리까지 내려 보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신 것이다. 그 자리는 우리의 영원한 자리다. 그 자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를 십자가까지 내려가게 하신 것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