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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 외에는
본문:마17:1∼8
설교자: 박왕규 형제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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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오직 예수 외에는
(마17:1∼8)
예수께서 변형되신 모습을 보여주심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변형된 모습을 보여주셨다.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하였는데 이것은 십자가를 지고 난 후 변형된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주의 형상으로 변해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러간다(고후3:18)”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하였다.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곧 변형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성이 사람 안에 들어와서 자라난 결과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변형되도록 지어 놓았다.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동산에 두신 것은 사람이 생명나무를 먹음으로써 변형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임
제자들이 이 놀라운 광경을 볼 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하는 것을 보았다. 모세는 구약에서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예언(선지자)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예수는 율법과 예언이라고 하는 나무에서 나온 열매이며 그 율법과 예언을 성취하신 분이다.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을 만들고 나니까 비로소 창조가 완성되었다. 사람은 만물의 열매이며 그리스도는 만유의 후사, 곧 열매이다. 모든 것은 이 인격 안에 와서 완성된다. 모세와 엘리야는 바로 이 인격을 증거하기 위해서 나왔고 영원토록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우리는 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하는 것과 ‘이 사람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이다’ 하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격 안에서 완성됨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곳에서는 완성되지 않았다. 가나안 땅에서도 이스라엘 국가에서도 완성되지 않았고 오직 그리스도 인격 안에서만 완성되었다. 천국도 인격 안에서 완성되고 하나님의 약속된 모든 것은 인격 안에서 완성된다. 어떤 시간 안에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인격 속에서 성취된다. 시간은 이 인격을 성숙하게 하기 위해서 있다.
하나님은 인격 안에서 나타나시며 영화롭게 되신다. 하나님이 사람 안에서, 인격 안에서 완성될 때 그것이 영광이다. 요한계시록에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는 말이 나온다. 인격으로 나타나는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본 바요 들은 바요 주목하고 만진 바 된 이 그리스도가 얼마나 존귀한 줄 알아야한다.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는 것은 존귀함이고 영광이다. 인성 안에 들어온 하나님의 신성이 육체를 통해서 성장해 나타난 것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이 인격의 연합됨 안에서 나라가 있고 교회는 그 인격의 공동체이다. 교회는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될 수 없다.
죽으면 한 줌의 흙이 되고 말 육신인 인생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나온다면, 하나님의 법도가 살아나온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살아나오고 사랑이 살아 나온다면 그보다 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은 세상에 없다.
한 사람이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이 희어져서 빛과 같이 되었을 때 이것은 한 어떤 사람의 광경이 아니었다. 이것은 온 인류의 소망이고 영광이다. 이것을 보고 살려내지 않을 방법이 없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 자신도 그것을 위해 동원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 십자가를 통해서 빛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통하니까 율법과 예언이 영광이 되고 그리스도가 되었다.
우리는 변화산의 사건을 가짐
작든지 크든지 우리는 이 변화산의 사건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더 큰 것을 기다리고 더 희어지고 더 빛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본 바요 들은 바요 주목하고 만진 바가 있기 때문이다. 태초부터 있는 것을 봤으며 하늘로부터 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은 우리 속에서 살아나게 될 것이며 커져갈 것이다. 뱃속의 어리아이가 자라듯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구로하는 여자처럼 아기를 낳게 될 것이다. 우리 인생은 아기를 낳기 위해서 있다. 아기를 낳아야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죽든지 살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한다. 그것을 위해서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변형되시는 방법으로 세상에 오심
모세와 엘리야는 어찌하든지 열매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 열매가 나타나야 자기들의 모든 것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 광경은 얼마나 놀라운 광경인가! 비록 축소판이지만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완성되는 자리이다.
꼭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는 오늘도 나타나고 있다. 주님은 이렇게 오신다.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행1:11)”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헛되이 그리스도를 찾고 있지만 그리스도는 이렇게 변형되어서 나온다. 그는 우리 안에서 변형되어서 나올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오셨다. 모세를 통해서 나타난바 되셨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변형되셨고 야곱과 다윗을 통해서 변형되어서 나오셨다.
당신은 씨고 생명이시다. 그러므로 어딘가 들어가서 다시 살아나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떠다니시는 분이 아니라 생명으로 우리 안에 와서 자라서 변형되시는 분이다. 우리 안에 자람으로서 영광이 되시고 그 영광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표현이다.
생명은 그 표현된 자리에서 밖에 볼 수 없다. 오늘날 변형된 교회가 없다면 변형된 그리스도가 없다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변형을 통해서 나온다.
마태복음 13장에서 17장에 이르는 과정은 이 변형을 향해서 가는 과정이다. 배척받기도하고 버림받기도하고 밀려나기도 하면서 헐몬산 까지 오셨다. 우리는 세상에서 버린바 되고 배척받고 멸시받은바 되는 과정 속에서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이며 그리고 난 다음에 변형될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운명이 십자가라는 것을 깨닫게 된 그다음에 변형될 것이다. 우리자신이 너무나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아무 소용없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런 다음에 우리는 변형되게 될 것이다.
오직 예수 외에는
베드로가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광경을 보고 초막 셋을 짓고 여기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했을 때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하는 음성을 듣고 두려워서 엎드렸다가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와 모세와 엘리야가 다 같은 줄 알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뿐이라는 것이다.
열매가 다 익으면 열매뿐이다. 열매가 열리기 전까지 나무가 있는 것이다. 너는 예수만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것도 지나고 저것도 지날 것이다. 율법도 예언도 지나고 제사도 우리 육신도 생각도 지나고 오직 그리스도만 남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제 그리스도뿐이다. 내가 잘 살았어도 못 살았어도 그리스도뿐이다.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 한 사람만을 향해서 간다. 하나님이 나타나야 하는 완전한 인격 안으로만 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이것은 결국은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남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다. 나는 살고 그리스도는 죽고 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으며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남는다. 사람은 다 내 소원대로 살고 싶고 내 목적을 이루면서 그리스도는 보류하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다. 오직 우리는 진리를 위할 뿐이다.
사도 바울의 일생은 어찌하든지 자기에게서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기를 원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롬14:8)” “우리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해서 죽는 자도 없도다(롬14:7)”
우리에게는 오직 예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변형되신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