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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사랑 교회에게
본문: 계 3:7-13
설교자: 박종규 형제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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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형제 사랑 교회에게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3:7-13)”
1) 일곱 교회 :
계시록 2:1-3:22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역사적으로 보면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있던 초대 교회들이었고, 사도 요한에 의해 묘사된 교회의 상태 역시 각 교회의 실제적인 영적 상태였다. 그러나 한편 성서 속에 나오는 예표나 상징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계시 안에서 보면 이 일곱 교회는 초대 교회 이후 나타난 역사적 교회들의 어떤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자 동시에 교회로 짜여 진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준거(準據: 정도나 성격 따위를 알기 위한 근거나 기준)이기도 하다.
신약 시대 이후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그의 몸된 교회 안에 지체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라도 교회의 일부(구성원)이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이 속한 교회의 상태(그리스도 생명의 순도나 구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곧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은 곧 교회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다.
2) 빌라델비아 교회 :
일곱 교회 중 가장 모범이 되는 교회가 바로 빌라델비아 교회이다. 일곱 교회는 교회의 어떤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일곱 교회에 주신 말씀의 공통적인 약속은 그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이기는 자’ 즉 그리스도와 온전하게 연합하는 자에게는 생명나무, 생명의 면류관, 감추인 만나,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 생명책에 이름을 기록함,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함,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않게 하겠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로 끝나고 있다.
기독교 계시의 핵심은 어떤 인간도 스스로 사단의 미혹이나 세상의 권세를 이길 수 없고 오직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산 그리스도의 생명, 즉 죄와 사망에서 승리한 그 인격과 연합함으로써만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그러므로 이김의 전제 조건은 이미 이기신 분과의 연합이다. 특별히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 6:6)”
그분과의 연합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그분과 함께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롬 6:8)” 더 나아가 바울은 서신서 곳곳에서 끝없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이미 ‘함께 장사됨(롬 6:4)’, ‘함께 못박힘(갈 2:20)“, 함께 감추어짐(골 3:3)’, ‘함께 부활함(롬 6:5)’을 전하고 있다.
3) 그리스도와 연합한, 함께 한 교회 :
일곱 교회 중 버가모 교회가 세상과 결합한 교회의 상징이라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교회의 대표이다. 그래서 특별히 종교개혁 이후 많은 교회들이 이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왜냐하면 빌라델비아 교회만이 구속사의 최종 결론인 왕국을 넘어서 새 예루살렘으로 발전해가는 계시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직 하면 신앙의 자유를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유럽인들이 미동부의 심장부에 건설한 도시 이름을 필라델피아로 불렀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젊은 시절 소위 구교와 신교의 여러 교회를 다녀보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일종의 외도로 볼 수 있는 전통 종교인 유교와 불교에도 심취한 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곳은 바로 그 내용이 형제사랑인 우리 교회였다. 처음에는 연합이 무엇인지도? 십자가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단지 형제자매들이 세상 혹은 종교 시절에 만난 사람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뭔가 다른 사람들이어서 무작정 좋아서 다녔다. 그리고 우리 목사님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4) 능히 닫을 수 없는 열린 문 :
지식이 많은 학자들도 만나보았고, 도가 높은 고승이나 유학자들도 만나보았지만 능히 닫을 수 없이 열린 문인 사람을 본 적을 없었다. 모두 다 절차가 필요하고 예약이 필요하고 인연이 필요했다. 그러나 교회에서 만난 이 인격의 문이 닫혀 진 적을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비록 육신이 약하여 병실에 누워계셔도 이 분은 항상 열린 문이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끝난 사람만이 열린 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끝남으로 체험하고 살아낸 사람만이 교회의 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열린 문으로 통과하면 형제사랑이라는 교회가 나왔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연합한 자들이 만나는 형제들은 그리스도의 살으심에 연합한 새 가족들이다. 생명의 현상은 연합이고 그 결과는 사랑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주는 것인가? 받는 것인가? 흘러 받고 보내는 것인가? 최종적인 사랑은 함께 하는 것이다. 영원한 사랑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무덤에서, 갈릴리 바다에서, 승천에서, 보좌 옆에서 함께 하는 것이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일 동안은 그의 무덤에 함께 장사지내야만 한다. 그분의 죽으심이 나의 죽음으로 확인될 때까지 우리는 부활을 기다려야 한다. 도망가도 실패하고, 나중에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의 은사만으로는 함께 살 수 있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 분과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해서는, 형제와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해서는 무덤 안이던 밖이던 최소한 3일만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곧 우리는 주님의 면류관을 받고 성전의 기둥이 되어 그 위에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받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