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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씨(매달린 인격)로 건축되는 왕국
본문: (계21:7-11)
설교자: 이성규 형제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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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새 씨(매달린 인격)로 건축되는 왕국
(계21:7-11)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보기 좋은 것에 미혹되어 주신 복을 잃어버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전하게 지음 받은 존재이었으므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시고 다음날 모든 일을 쉬셨다. “너는 하나님처럼 네 맘대로 살라”는 사탄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은 후 “내하고 싶은 대로 살 거야!” 라는 본성을 갖게 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위치를 잃어 버렸다. 예수님의 목적은 원래 사람에게 주신 놀라운 위치와 하나님을 따르는 본성을 가진 사람으로 회복 되어 참 광복(光復)을 누리게 함이었다.
선악과를 먹은 사람은 “내 맘대로”라는 본성을 갖게 되므로 보기에 좋은 것을 쫓아다니는 노예가 되었고, 사람의 존귀함은 모르고 행위, 업적, 종교 등 무화과 잎으로 포장하기 시작하였다. 선악과는 헬라 철학에서 이원론으로 발전하여 물질과 육체는 더럽고 이데아, 영혼은 절대 깨끗한 것으로 규정지었는데, 이 영향을 받은 교회는 “사람은 안 돼”, “천당이 해답”이라는 사상이 굳어졌고, 오실 메시아는 “신과 같은”존재여야 했다. “내 보기 좋은 대로”라는 본성은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보기에 좋은 것만 찾아서 기적의 예수, 도우시는 예수, 내 소원을 이루시는 예수만 극대화 시켰고, 십자가에서도 미덕만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본질은 비켜가게 되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싶은 예수님의 최종열매는 “요나의 표적”, “장대에 매달린 사람의 위치”였는데 그 자리는 두렵고 입맛에 안 맞아 모두가 다 도망가서 다른 것으로 대치하게 된다(21:8).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싶은 참 열매는 감추어지게 된 것이다.
예수의 본질이신 장대에 매달린 인격
독사에 물린 사람들이 장대에 매달린 놋 뱀을 보고 살아난 것처럼(민21:8,9), 선악과의 독성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살아날 방법은 십자가의 매달린 인격을 보고 그 안에서 매달린 인격이 내 운명의 자리이고 인생의 근본적인 위치임을 발견하는 것 뿐 이었다. 이 자리가 만민이 포함되는 구원의 자리가 드러난 것이고, 이 자리에서 연합이 되고 이 사람은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바꿔진 본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남들이 다 버리고 간 길에서, 나도 가봤는데 안 돼. 안돼서 나는 다시 돌아와서 안 가본 것을 가보게 된 것이다. ”(목사님) 우리 모두가 능력의 예수를 따랐고 매달리신 예수는 버렸는데, 우리를 가난하게 하셔서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 큰 은혜이다. 매달려있는 자리는 모든 것의 시작점이었다. 매달리고 끝나 버렸는데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고, 새로운 마음, 새로운 본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매달려 있는 인격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열려진 문, 끝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아카페) 나타나는 실재를 본 것이다. 이 자리에서 연합과 건축은 당연한 결과이고 교회는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40년간 매달려있는 인격의 자리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증인들이다.
성전을 청소하고 무화과 열매를 찾으심
예수님은 백성 자신이 제물이어야 하는데 자기 자신은 빠지고 제사장이 기른 양을 사고 파는 것으로 가득 채워진 성전을 청소(마21:12)하셨다. 매달려야 될 곳에서 다 도망가고 자기들 보기에 좋은 것만 가득 차 있는 성전을 청소하고 계신 것이다.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던(마21:19) 예수님은 생명의 열매, 뛰어내리지 못하는 인격을 찾고 계신 것이다. 그는 신 이였어!, 아니 그는 사람 이였어! 하는 것도, 기사와 이적, 십자가의 미덕도 본질이 아니고 무화과 잎이다. “어찌하여 날 버리십니까?” 하면서도 끌려가 매달리신 참 사람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회복되고 참 사람의 열매가 나타난 것이다. 뛰어내리지 못하는 이 열매 만 참 양식이고 주님이 남겨주신 유일한 유업으로 알아야 한다.
3일 동안 함께 머물면 .....
“거기 머물다 보니 그 안에 내가 있었다.”(목사님)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고전1:3) 어떻게 함께 있고 그리스도안에 있는가? 그 자리에 3일 동안 머물다 보면 내 길로 보일 것이고 이것이 “예수와 함께 (롬6)”이다. 3일 동안 머물면서 살펴보라! 매달린 그 자리에서 참 내 운명이 발견되고, 이것만이 살아야 할 이유임을 알 때 알곡을 추수하는 인생이 되고, 이기는 자이고 하나님 자신을 상속 받은 아들이고 아내이다.(21:7, 9)
“십자가에 매달린 참 사람의 자리”라는 말에 이론(異論)많다.(목사님) 그 자리를 피하고 싶기 때문에 방법을 찾지만 모두 무화과 잎이다. “뛰어내릴 수 없는 이 자리”는 사탄이 들어올 수 없는 더욱 과정거친 새 씨이다. 사탄도 이 자리에 들어오려면 매달려야 하므로 완전한 성이고 이 성분이 모여 새 예루살렘이 되는 것이다.
온갖 좋은 미덕으로 혼합된 양식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에덴에서 실종된 참 생명의 양식이 예수안에서 오늘 우리 교회안에서 분명한 씨로 나타났다. 우리는 이일의 증인이고 우리가 이 양식을 말하지 않으면 또 다시 지난 2000년처럼 수면 아래 잠겨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인격을 기초로 매달린 열매를 따먹고 누리고 있는 놀라운 축복의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축복의 기초석은 “뛰어 내릴 수 없는 매달린 인격”이었다. 이 인격이 참 열매임을 선포하는 나팔을 불어야 속은 자들을 구원하고 쭉정이가 아닌 참 열매를 추수하는 타작마당이 되는 것이다. 듣든지 안 듣든지 우리는 선포해야 한다. 이 마지막 복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은혜를 감사 찬양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