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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흔적을 가진 중매자
본문: 요 20:27-29,갈 6:14-17,고후 11:2
설교자: 박금희 자매 -
성경 본문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7-29)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4-17)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라.”(고후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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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예수의 흔적을 가진 중매자
▲ 십자가의 도 (1988. 여름집회)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사람들은 뛰어내려 보면 믿겠다고 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확실히 드러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아무 이적도 나타나지 않는 지경에서, 아무 능력도 행하지 못하면서 무슨 하나님 아들이냐? 네가 하나님 아들이면 나도 아들이 될 수 있다. 너 같은 사람은 우리 중에도 얼마든지 많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조롱했다.
▲ 하나님이 오심 (2001. 여름집회)
그리스도의 죽음은 만유를 포함한 죽음이다. 죽음은 끝이다. 선악이 끝나고, 높고 낮음이 끝나고, 길고 짧은 것이 끝난다.
▲ 예수의 승리 (2002. 여름집회)
사탄은 거짓으로 사람을 속이고 예수님도 신이라고 속이려 했다. 신이니까 하나님이 나타난다면 인간은 피할 곳이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그 분의 목적을 위해 드려질 인생의 길을 회피할 수 있다. 예수님은 죽으심에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사람을 사람 되게 하였다.
▲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2003. 여름집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만고에 없는 절묘한 대책이다. 사탄이 아무리 교묘해도 여기는 침투할 수 없다. 오직 여기만 완전한 방부제이다. 내 인생에 주신 하나님의 마지막 대책이 이것이다.
▲ 십자가의 사역 (2006. 가을 뉴욕집회)
예수님께서 죽으신 그 자리에는 모든 인류가 다 차별 없이 참여할 수 있다. 거기는 종교적인 특성도, 인종상의 특성도, 관념상의 특성도 없다. 오로지 흙으로 지어진 인생밖에 없다. 숨이 코에 붙은 인생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자리다. 이것을 나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 자리로 모든 인류를 부르셨다.
기독교가 겉으로는 십자가를 내세우지만 십자가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분열을 가져왔다. 기독교는 십자가를 단지 고난과 희생과 사랑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고난에서도, 희생에서도, 봉사에서도 사람은 갈라진다. 나쁜 것으로가 아니라 좋은 것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 되는 길은 죽음 밖에 없다. 그 분의 죽으심 안에만 유일한 하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파해야 한다.
▲ 천국의 비밀 (2008. 여름집회)
나무 목(木)변에 각각(各)자가 박혀 있듯이 꼼짝달싹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인격이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났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나무 목(木)변에 각각(各)자가 붙어있는 것처럼 붙잡혀서 꼼짝할 수 없다. 그래서 사탄은 이격을 바꿔보라고 한 것이다. 쓸모없고 비참한 것이니까 다른 것으로 바꿔보라고 사탄은 사람을 속인 것이다.
“네 인격은 너무 비참하다. 그것을 중요시할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 너 자신을 만들어야 된다.”며 사람을 속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 인격을 쓰신다. 하나님이 쓰시면 하나님이 나타난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나는 흙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천국이다.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의 비밀 (2014. 봄집회)
예수님은 한 때 물 위를 걸었으며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였고 죽은 자도 살렸다. 이런 일들을 행한 것은 그가 메시야라는 표적이었다. 유대인에게 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이런 사람은 인류의 소망이었다. 아담은 이런 사람이 되려고 하나님이 경고하신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이다. 그런데 그가 여느 사람과도 다름없이 죽었다. 인간은 누구나 십자가에 달아 놓으면 예외 없이 죽는다는 것만 다시 확인한 것이다. 인간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 같이 되든지, 아니면 하나님 아들로 세상에 왔든지 다 죽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선악과를 먹고라도, 즉 무슨 방법으로라도 하나님같이 되겠다는 인간에게는 너무도 확실한 경고의 증거가 되었다.
▲ 십자가의 효능 (2016. 가을집회)
십자가는 위치를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 하는 전쟁이다. 예수를 못박아놓고 하는 말이 “네가 하나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고 했다. 42절에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고 했다. 그런데 47절에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했다. 뛰어내려 보라는데 마지막 답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였다. 겉으로 볼 때는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효능은 무엇인가? 사람을 사람 되게 하고 그 사람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올린 것이다. 우리는 신과 같은 사람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혀서 뛰어내리지 못한 그 사람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았다는 것이다.
▲ 우리의 선택 인격 회복 (2017. 봄집회)
그 생명을 살아내야 알 수 있다. 살지 않고는 누구도 모른다. 아무리 눈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인 그 이상은 쓸 수가 없다. 그러니 그 말을 누가 알아듣겠는가. 죽은 지 사흘 되신 분이 생선을 구워 놓고 와서 먹으라 했다고 말한들 누가 그것을 믿겠는가. 내가 그것을 봤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못 믿는다. 이것은 내가 살아서 그 부활을 증명해야 될 일이다.
사도들과 성경을 쓴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들의 인생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것을 기록하였다.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객관적인 부활 사건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 속에서 경험하고 체험한 실제를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