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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시
본문: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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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하나님의 계시
성경은 이미 있는 사실에 대한 계시와 새로 올 사실에 대한 예언이 있다.
성경은 전혀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있지만 열리지 않았던 것을 열어 보여 주고, 반드시 올 것이지만 아직은 알려지지 않는 사실을 예언하는 것이다.
이 계시는 하나님 편에서 사람에게 주는 것이며 우리의 과정을 거쳐 열려진다.
하나님이 주시더라도 사람이 듣고 볼 수 있어야 하며 그 목표가 하나님과 사람이 공유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유는 이간이 있기 전에도 이미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하심이 있기 전에는 그 의미를 100%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있으나 마나?....
중국인들은 이 자연 안에서 공통된 이치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천리(하늘의 이치_진리)라 하여 순응하고 시행하는 것을 지혜요 덕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유교의 모든 가르침은 천리를 따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만상은 다 허상임으로 그것들에 매이지 말고 오직 사람의 마음을 닦아서 참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한다.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능력)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걸림이 되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 하였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어떻게, 왜, 만유를 구원할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인가?
이것이 비밀 중의 비밀이고 비밀한 복음이다.
십자가에 못 박인 채 내려올 수 없는 그 예수가 우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인가?
무엇을 해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그 지혜, (의와 거룩함과 구속) 가 되는 것이다.(고전1:30참)
우리는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으나 그 지혜가 없고 못 박인 예수 안에는 아무것도 없으나 그 지혜가 있다.
야곱은 모든 것을 잃었으나 요셉에게서 그 지혜가 나타났다.
사람에게는 왜 그 지혜가 없는가?
v 만유에게는 각각 정해진 길이 있다.
이것은 운명이다.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만은 자신에게 정해진 길을 이탈했다.
아무리 지혜로운 자도 길을 이탈하면 어리석어질 뿐 아니라 사명이 없어지고 그 안에 포함 된 축복과 능력도 함께 없어짐으로 허무한 것만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탈한 사람을 돌아오게 하려고 한 길을 예비하셨다.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창1,2장)
바벨에서 불러내시며 (아브라함, 이식, 야곱),....(12:1~)
그 세대에서 택하시어 (모세, 아론, 다윗,.......)
만유의 그리스도가 오시는 다리가 되게 하셨다.
이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가 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참 사람의 위치를 나타 내셨다.
하나님과 사람이 거룩하게 만나는 지성소가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한 구원은 이 사람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사람이 우리를 구원해 주려고 왔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체적으로 그는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분이다(고전1:30)
그래서 “나를 믿으라.” “내 안에 거하라” 했고,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라 하신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이 사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속이는 자를 따라서 그 동산을 떠났고, 제자들은 그 안에 거하지 못해서 함께 기도하지 못하고 갈라졌으며(겟세마네) 십자가 앞에서는 그를 먹지 못해서 모든 사람들과 같이 다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골고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낸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인 것이다.
그러면 이 사람을 어떻게 먹고 마실 것인가?
군중들은 물론 제자들도 난감해 했던 일이다.
그러나 이 사람처럼 먹고 마시기에 쉽고 딱 맞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우리의 복음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는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인대로 내려오지 못하고 죽임 당했다.
이것은 사실인데 하나님의 비밀이다.
어떤 모양으로라도 내려왔다면 이 모든 일, 즉 아브라함_예수까지의 길은 모두가 무효 되고 마는 것이다.
“하실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이 얼마나 간절한 바람이며 기도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만일에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 같이 되려다가 그 동산을 잃고 두려움을 이기려고 바벨탑을 건설하다가 흩어진 인류는 어디서 하나로 만날 것이며 하나님은 그 인류를 어디로 부를 것인가?
어디서 그 잃어버린 형상을 다시 찾으실 것인가?
어디서 다시 그 동산에 함께 거할 것인가?
사람은 어디 가서 하나님을 만날 것이며 하나님은 어디에 와서 사람을 만날 것인가?........
그가 죽으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고 찢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 다 열려버렸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창조자와 그 피조물, 남자와 여자, 사람과 사람, 사람과 만유,....이 분열과 갈등...
어디서 진실로 만날 것인가?
어디서 그 본래의 목적 안에서 그 목적을 의논할 것인가?
어디서 다시 관계가 시작 될 것인가?......
십자가에 못 박이고 내려오지 못한 인생의 위치에서 모든 것이 다시 시작 된다.(롬6:4참)
이 사람은 누구나 먹고 마시고, 그와 함께 그 안에 거하기에 딱 맞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사람이 동거하기위해 창설하셨던 그 동산이며, 이전 것들이 다 지나가 버린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어린양과 그의 단체적인 신부가 한 사회를 이루는 새로운 나라인 것이다. 할렐루야 !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