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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고찰
본문: 롬10장
설교자: 이현래 목사님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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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31.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고찰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만민의 구속이 율법 안에 있는 유대인의 구원과 충돌하는 상황에서 바울의 고민은 심각했다.
왜 충돌인가?
대속이냐 구속이냐 때문이다.
사도들은 서신 대부분에서 대속을 전한 것이 사실이다.
대속(속죄)에 대한 유대인의 이해는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제물만 바뀐 것이니까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런데 자기들이 버리고 온 인류가 버린 예수가 구속 자체라는 것은 유대인 뿐 아니라 온 인류가 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인 것이다.
율법을 위반하고 인간의 운명을 부끄럽게 한 예수, 그 안에 나와 너의 구속(진실)이 있다니.....
여기서 바울은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말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붙잡았다.
토기장이의 비유는 이에 대한 너무나 유명한 비유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다른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이 없겠느냐" (롬9:19참)
하나님이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누가, 또 무엇이, 어떻게 그의 일을 상관하겠느냐는 것이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말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인간의 찬반을 초월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이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은 유대인과 이방인뿐만 아니라 온 인류 중에 그 누구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영 단번에 구속 곧 죄 사함을 받고 (골1:14)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에 참여하게 되는 온전하고 최종적인 구원에 이르는 곧은길이다.
그런데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는 그 누구도 바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인 것이다.
하물며 신성한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이라면 더욱 그렇고, 타 종교, 혹은 지성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 역시 그런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땅에 왔으나 (요1;19~13) 아무도 영접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에게 버린바 된 것이다.
말을 타고 오시지 않았기에 그리스도를 대망하던 유대인들에게 버려졌고,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나타냈기에 합리적인 지혜를 찾는 희랍인들에게 무시가 되었다.
그러나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가 된다. (고전 1:22~24)
이 절대적인 구원을 위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위임 받은 바울은 이방인을 살리려 하면 자신의 동족이 멸망이 되고 그렇다고 해서 그의 동족을 살리려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이방인들이 살 곳이 없고....
그러나 만민을 살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차별이 없다.
하나님의 주권은 만민을 살리는 지혜요 능력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인정을 받는 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알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법을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적 은혜는 받는 자 까지도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이래도 되는가? 이럴 수 있는가? 혹 올가미가 아닌가?......
야생하는 짐승에게 먹이를 주면 바로 받아먹지 않는다.
경험이 없다. 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믿지 못한다.
자기 생각과 경험만을 믿는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은 더욱 그렇다.
그의 죽임 당하심 안에 구원의 길이 있다니.....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누구도 믿지 못한다.
그런데 한번 보고 그 안에서 “참사람”을 시인만 하면 그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고, (요3;15,민21;9참)
유대인들에게 소중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 부르심, 긍휼, 율법,...
헬라인들이 찾는 참 지혜가 그 안에서 완성 되어 실제화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하늘로 눈이 뜨이고 그 문이 열리는 것이다.
모든 것이 회복 되고 모든 것이 완성되어 실제화 된다.
절대주권에 대한 반론이나 왜곡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마음(영) 안으로 들어간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이다. 할렐루야 !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왜곡 악용한 것이 사실이다.
유대교, 이슬람, 천주교, 개신교, ....
하나님은 믿는 모든 종교가 다 이런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반 주권적인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도 많다.
특별히 지성적이라는 사람들이 그렇다.
절대주권적인 종교는 야만적이고 독선적이라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주권을 죽이는 주권으로 오용했으니 떠나간 그들을 나무랄 수만도 없다.
이제는 이 왜곡을 끊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의 실상을 보임으로서.......
하나님의 살리는 주권을 더욱 찬양하도록 해야 한다.
예수 죽임 받으심으로 이룬 구속은 무조건적인 것도 아니고 비이성적인 것도 아니다.
가장 큰 대가를 치른 것이다.
v 그러므로 만민의 왜곡을 소멸하고 참다운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여 만민을 살리는 신성한 주권이 된 것이다.
왜곡 된 절대주권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하나님의 주권을 왜곡시킨 인간도 예수와 함께 죽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 구속, 예수의 죽으심으로 얻은 구속 안에는 살리는 하나님의 주권만 온 천지에 편만하게 되었다.
v 다시는 밤이 없고 저주가 없으며 눈물이나 애곡하는 것이 없다.(계22:1~5참)
할렐루야!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 (계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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