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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하나님의 절대주권(3) 공의와 사랑
본문:
설교자: 이현래 목사님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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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33.하나님의 절대주권(3) 공의와 사랑
이방인의 사도로 위임을 받은 바울은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의 문제가 걸림이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절대주권을 들었으나 단순하지 않았다.
결국 유대인에게 주신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먼저는 이방인을 구원하고 최종적으로 유대인을 구원할 것이라는 것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 궁여지책처럼 보인다.
공의와 사랑을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갈등은 어디에나 있다.
대립을 해소하려고 노력했으나 그 결과는 물 타기 였다.
이 문제는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일을 인간의 이성으로 분리해서 처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이성으로 분리하고 분석하며, 수양으로 조화를 이루려 하거나 관념으로 넘어가려 한다.
하지만 성취 된 것은 없다.
과학은 발달 되었으나 그 끝을 모르게 되어가고 있다.
인간은 무엇이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줄 알고 있다.
이런 세계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기독교는 이런 문화에 말려들었다고(?) 할 수 있다.
복음은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갈망이고 그의 후사로서의 인간 역시 형상- 생명인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생기를 불어넣은 산 혼- 존재다.
하나님이 영이요 생명이라면 사람은 혼- 생명(육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분석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이 사람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두 관계 안에 있는 일을 인간적 방법으로 대책을 세울 수 있겠는가?
바울의 소원처럼
이방인은 유대인이 부러워 할 만큼 복을 얻지 못했고 유대인은 아직까지 자기들이 부러워할만한 대상을 만나지 못했다.
바울의 예칙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의 소원은 오히려 분열만을 더해가고 있다.
복음은 생명의 문제다.
즉 다시 나는 문제인 것이다.
니고데모가 하나님 나라에 참여 할 수 있는 길은 다시 나는 것 밖에 없다.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른 길은 없다.
인류가 진보 발달했다고 해도 생명에는 변화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구원받을 길은 없는가?
예수의 구원은 이방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만민을 위한 것이며 나아가서 만유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대책이 아닌가!
십자가에 못 박혀 내려오지 못한 예수 안에 포함 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며 모순되고 갈등을 일으킬 일은 아무것도 없다.
유대인과 이방인, 공의와 사랑?...
하나님이 시작하신 모든 일은 예수 구속 안에서 온전하게 완성된다.
그러므로 그의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는 것이다.
유대인을 부르신 하나님이 또 이방인도 부르신 하나님이시다.
유대인이 어디서 왔고 이방인은 또 어디서 왔는가?
다 한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피조물이 아닌가! ......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모든 인류가 다 버린 그 인격 안에서 완성 되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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