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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구속의 길(부르심과 택하심)
본문:
설교자: 이현래 목사님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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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34.구속의 길(부르심과 택하심)
하나님께서는 동산을 떠나 방황하는 인생을 구하시려고 계획을 가지시고 아담을 찾아오셨다.
그런데 두렵다고 숨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인류역사다.
하나님 같이 된다는 지식을 얻은 인간은 하나님을 피하여 가는 것이다.
가인과 네피림을 거쳐 동산 대신에 바벨의 영주가 된 것이다.
다시 아브람을 부르셨다.
그는 갈대아 우르지방(바벨론)에 살던 사람으로서 아버지를 따라서 그곳을 떠나 하란에 머물고 있던 사람이다.
아버지를 여이고 나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이 사람을 불러내어 한 곳으로 인도 하신 것이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이렇게 길을 잃은 사람을 부르신다.
그가 지시할 곳으로.
사람들은 그 길이 어디냐고 묻지만 그냥 따라 오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미리 알면 아담처럼 다른 길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담은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알았기에 피하여 간 것이다.
아브람은 길은 모르지만 잘 따라왔다.
그래서 부름 받은 사람의 조상이 된 것이다.
세갬(능력), 벧엘(집에 거하는 하나님), 그리고 헤브론(교통)
그의 능력과 거처와 교통을 차례로 맛본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단번에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말씀대로 잘 따라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올바른 신앙생활을 한 셈이다.
그런데 궁극적인 목적은 그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후사를 얻는 것이었다.
자기만으로 끝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생명의 축복은 영원하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명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유증해야 했던 것이다.
상속이 없는 생명의 축복은 무의미하고 가치가 없다.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도 그를 이을 후사가 없다면 생명 없는 우상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도 후사가 있어야 하고
사람에게도 후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후사가 될 사람을 지으셨으나, 이 사람을 잃었음으로 그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아브람을 부르신 것은 그를 통하여 자신의 후사를 세우려 함이다.
그런데 일차적으로는 실패(?)하였던 것이다.
아브람의 그 무엇이 생명에 섞였기 때문이다.
생명에는 어떤 것도 섞이면 안 된다.
100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찾아와서 다시 약속을 하셨다.
“내년 이맘때에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믿기에는 너무 난감한 약속이었다.
그런데 약속대로 아들 이삭을 받았던 것이다.
그에게 아들은 또 있었지만 후사는 이삭이었고 이삭은 사라의 아들이었다.(눅3:23참)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다 얻은 사람이다.
부름 받은 사람으로서는 온전했다.
그러나 그가 곧 하나님의 후사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부르심은 받았으나 우르- 데라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택함을 얻지는 못하였다.
다윗에게 아들은 많았으나 후사는 솔로몬뿐 이었는데, 그 후사의 길에서 만유의 후사로서 예수가 오신 것이다.
솔로몬은 우리아의 아내가 낳은 아들이다.(마1:16참)
하나님의 후사는 만유를 포함하는 사람이라야 한다.
예수는 만유의 후사로서 합당한 사람이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으나 영으로는 하나님께로서 낫기 때문이다.(요1:13,롬1:3참)
이삭처럼.
이 사람 안에서 옛사람 아담의 모든 것이 끝나고 만유를 포함하는 새 사람이 시작 된다.
그의 십자가는 이 사실을 보증한다.
아브라함은 부름을 받았고 이삭은 택함을 입었다.
택함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만유를 포함한 사람-후사이다.
우리는 그 사람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계22:21,2)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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