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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6월 23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맺는말(2)생명의 양식을 주려함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21:1-14 -
성경 본문
21: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21: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21: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2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21: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21: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21: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21:9 육지에 올라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21: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21: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21:12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21: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21: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을 위한 부활
요20:1~21:25
맺는 말 (생명의 양식을 주려함)
요21:1-14
요한은 어려운 진리를 여러 가지 표적과 상징으로 말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인 요한복음과 계시록은 표적들로 가득하다. 그는 20장 마지막에서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표적들을 선별해서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육체가 되신 말씀, 포도주가 되신 말씀, 놋뱀이 되신 말씀, 양식이 되신 말씀, 생수가 되신 말씀, 생명의 빛이 되신 말씀, 양의 문이 되신 말씀, 한 알의 밀이 되신 말씀, 참 포도나무가 되신 말씀, 그리고 찢어진 성소의 휘장,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 등으로 생명을 얻게 하시고, 21장에서는 디베랴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목양을 위임하시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생명을 얻었으면 먹어야 자란다. 제자들은 표적들과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새 생명을 얻었으나 성장하기 위해서 양식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먹을 양식이 없었으므로 옛 습관을 따라서 고기를 잡으러 갔던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구속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거처를 마련하는 새로운 백성이 되기 위해서 새로운 양식을 먹어야 했다. 이와 같이 새로 난 생명은 그 생명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새로운 양식을 먹어야 한다. 아담은 지음 받고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서 산 혼이 되었으나 동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양식을 먹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양식이 없자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은 모두 물고기 잡으러 옛 디베랴(갈릴리)바다로 돌아간 것이다. 옛 삶, 옛 방식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옛 생명 안에서 그들은 전문적인 어부들이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날 때에는 전에도 고기를 잡지 못했던 때였다는 것이다(눅5:4참). 이것이 어찌 전문가로서의 그들이 육신을 양육할 양식을 얻지 못했다는 것뿐이겠는가?
내 노력으로 얻은 양식은 육신을 먹일 수는 있지만 새 생명을 먹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배가 고프니까 고기 잡으러 갔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해서 여전히 굶주리게 된 것이다.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두 양식을 구하러 갔다가 종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 백성의 양식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서 생명과를 준비해 두셨다. 새끼를 낳으면 젖이 나오는 것이다. 출산을 위해서 미리 젖이 준비되는 것이다. 생명을 주신 분은 양식도 준비하시는 것이다.
제자들이 고기를 잡으려고 수고하였으나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생선과 떡을 미리 준비해 놓고 물고기 있는 곳을 가르처 주셔서 153마리나 되는 고기를 잡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잡은 생선이 아닌 주님이 준비해 주신 양식을 먹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공과였던 것이다.
주님은 언제나 앞서 계시고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주님보다 앞서 가면 안 된다. 그러면 항상 되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다 고생하고 되돌아왔었다. 마침내 그들은 그 길을 되돌아오는데 400년하고도 40년이 더 걸렸던 것이다. 그 기간은 고난의 세월이었다.
아담은 스스로 양식을 구했다가 되돌아오는 데 얼마의 세월을 허비했으며 어떠한 고난을 겪어야 했던가? 십자가가 아니면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쉽게 갔던 아담은 모든 인류를 끌고 바벨의 종이 되게 했던 것이다.
주님의 백성은 주님이 정하신 양식을 먹어야 하고 그의 제자들은 그가 준비하신 양식을 먹고 주님의 일을 해야 한다. 광야의 백성들은 만나를 먹고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주님이 주신 양식을 먹고 주님의 일을 해야 한다. 선악과를 먹고서는 여호와의 동산을 지킬 수가 없었고 애굽의 양식을 먹고서는 여호와의 거처를 지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양식을 얻으려 했으나 철저하게 실패한 후에야 주님이 준비한 양식을 먹고 주의 증인들이 되었던 것이다. 밤이 새도록까지 수고했으나 얻은 것이 없었다고 했다.
주님은 새 생명을 주러 오셨을 뿐 아니라 새로운 양식을 주러 오셨다. 아담과 같은 실패를 다시는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양식을 가지고 제자들을 찾아오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잡아 올린 물고기는 모두 153마리였다고 했다. 요한은 왜 이 숫자를 기록해 놓았는가? 그는 표적들과 상징들로 숨은 뜻을 전달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100은 완전한 숫자로서 씨의 완전한 열매가 100배이고(마13:8참), 한 무리의 양떼의 단위가 100마리 라고 한다. 그러므로 100은 사방에서 모여올 이방인들이고, 50은 돌아올 남은 유대인들이며, 3은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하는 숫자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당시에 물고기의 종류가 53종이어서 모든 고기가 100배로 모여들어 교회로 넘치게 될 것을 상징한다고도 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교회는 찢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바벨은 많아지고 높아지면서 무너졌다는 것과(게18:2,21) 얼마나 큰 대조가 되는가?
새 생명을 주시고 새 양식을 주신 것은 모두 교회를 위한 것이다. 이는 생명과 생명의 건축을 위해 기록한 요한복음의 요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