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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10월 6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그 안에 생명이 있음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1 -
성경 본문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그 안에 생명이 있음 (요1:1)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생명은 연결로 삶이 되는데, 인간은 왜 하나님의 생명에 연결되지 못했는가?
생명은 감추어져 있고 표현만 있으며 그 최종적 표현은 “말함”이라 할 수 있다. 아담은 그 '말함'을 잘못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에 연결되지 못하고, 사단의 '말함'에 연결되어버린 것이다.
“말함” 안에는 생명이 있어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나뭇잎은 바람에 따라서 움직이고, 사람은 말함을 듣고 삶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말함을 듣는 것에 따라서 삶은 나타나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같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같이 되려고 애를 쓰고 있고, 그 결과는 어둠이요 사망이며 혼란인 것이다. 이것이 가인과 아벨을 거쳐 바벨로 가는 길에서 확인되었다.
가인은 종교적인 이유로 아우를 죽였고, 라맥의 아들들은 자기를 위하여 육축과 예술과 전쟁기계를 만들었으나 그는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창4:23). 하였으며, 아담 자손들은 인생의 허무함을 알고(창5장 참조)는 결국 자기들의 좋은 대로 배필(협력자)을 삼아 강포를 행하여 멸망의 홍수를 가져왔고(창6장참), 최종적으로 서로 높아지고 강해지려고 바벨에 이르렀으나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도록 분열되어 흩어진 것이다.(창11장)
아담은 높아지고 더 나아지려 하다가 원한이 생기면 남을 해치게 되고, 허무함을 넘어서려고 자기 좋을 대로 하다 보면 멸망을 가져오며, 뭉치고 힘을 합하여 하늘에 이르려고 하면 분열되고 흩어진다는 것이다.
거역한 자의 잘못된 말을 듣고 위치를 이탈한 인간은 하나님을 모르고 사람을 모르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어둠이다. 정신을 차려 봐도 어둠이고 지식과 지혜를 동원해 봐도 어둠인 것이다. 근본적으로 위치가 잘못 되었기 때문에 시각이 다르고 청각이 다르다. 그러므로 연합될 리가 없다. 하나님같이 되려는 사람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분열되는 것이다.
그러나‘그(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1)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빛이 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알게 하는 빛이 있는 것이다.
왜 그 말씀하심 안에는 빛이 있는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알려면 위치가 발라야 한다. 지식이나, 지혜나, 순수인식이나, 순수이성 이전에 위치가 맞아야 한다. 아담은 지식이나 지혜나 순수인식이 없어서 바벨로 간 것이 아니라. 위치가 이탈되어 빗나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위치가 올바르신 분이다. 창조자 앞에서는 피조물로, 아버지 앞에서는 아들로, 그의 위치는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이 보기에 하나님같이 보일 때도, 완전하게 버림받았을 때도 그의 위치는 변하지 않으셨다. 그는 진실하셨다.
진실은 거짓에 대하여 빛이다. 그러므로 그가 하신 말씀은 그 안에 생명의 빛이 있다. 그 말씀은 그 자신과 함께 있고, 그 자신이기 때문에 그 안에 생명의 빛이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생명은 진실이기 때문에 어둠(거짓)을 비추는 빛이 되는 것이다. 거짓은 그 빛 앞에서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요1:5참)
거짓말하는 자의 말은 지식과 함께 있고, 진실한 자의 말은 생명과 함께 있다. 진실한 자가 누구인가? 위치가 바른 자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서양 사람들은 순수인식을 찾고 있으며, 불가에서는 독존적 인식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전1:22참)
십자가만이 진실의 보증이다. 순수인식, 지혜, 지식, 이성, 아무리 내세워도 보증이 없다. 참으로 누가 순수함에 도달하여 사심이 없는가? 누가 자아를 접었는가? 아무도, 아무 것으로도 보증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주객관적으로도 확고한 보증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 안에는 모든 거짓을 밝혀내는 빛이 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있다. 예수께서는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의 십자가는 영원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부터 있는 말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말씀, 하나님이신 말씀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요1:1참)
요한은 예수님과 처음부터 함께 있었고, 가장 가까이 있었으며, 가장 오랫동안 증거했고, 교회를 본 사도이며, 소위 “사랑하는 제자”로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하였다.(1요1: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만질 수 있는, 태초부터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노아가 듣고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았으며, 아브라함이 듣고 흩어진 바벨에서 부름을 받았고, 모세가 듣고 바로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켰던 바로 그 말씀인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고 살았던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이며, 깨진 반석에서 흘러나온 생수이고, 좋은 땅에서 수확한 풍성한 양식인 것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위치를 이탈함으로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르게 된 어둠에 처한 사람들에게 비치는 빛이며,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행하는 패역한 세대를 위한 구원이고, 서로 높아지려 하다가 혼란에 빠진 성(사회)에서의 신성한 부르심이며, 거역의 땅에서의 구속이고 해방이며, 길이 없고 공급이 없는 광야에서의 길이고, 양식이고, 음료이며, 약속의 땅에서 수확하는 풍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