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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10월 13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그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3 -
성경 본문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그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요 1:3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늘과 땅, 그리고 물질계의 모든 것은 전능자의 말씀하심으로 창조 되었다(창1:1참). 그러나 정신적이고 영적인 모든 것은 아들의 말씀하심으로 형상을 이룬다(요1:3참). 말은 말 하는 자의 마음과 생각의 표현이다.
창세기에서는 태초에 “전능자가 천지를 창조했다” 하고 “빛이 있으라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했고, 요한복음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고 그 말씀은 아들 하나님인데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발생했다”고 했다.
전능자의 말씀하심은 물질적이고 공간적인 모든 것들의 창조와 관계 되고, 아들의 말씀하심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모든 것들의 발생과 관계 된 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정해두신 긍정적인 모든 것들은 아들의 말하심으로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아담은 자기를 지으신 이의 말을 듣지 않고 거역하는 자의 말을 들은 것이다. 이것이 인간문제의 근원이다. 전능자의 창조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이 지어진 목적에 어긋난 말을 듣고 그 지으신 이를 거역하고 있는 것이다.
거역한다는 것은 사람 보기에 무슨 악한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선이나 악, 지혜나 무지, 좋고 나쁜 것, 편하고 괴로운 것,......이런 것들을 기준으로 인생을 취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지으신 목적에서 이탈한 것을 한탄하시는 것이다.
이탈하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입장이 달라지고 목적이 달라짐으로 대항하게 된다. 시각이 달라지고 이해가 달라지면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그래서 갈수록 갈라지고 멀어져서 알아보지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자간에도, 형제간에도, 부부간에도, 위치를 이탈하면 분열 되는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과 인간을 분열시키고 결국에는 인간과 인간을 분열시켜 하나님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려고 선악을 아는 지식을 주입한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될 것을 아시고 사단의 말을 받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다(창2:17참).
아담은 과연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된 것이다.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지음 받은 목적에서는 죽은 것이다. 쥐를 쫓으려고 고양이를 키웠는데 이 고양이가 쥐를 너무 좋아해서 온 동네 쥐까지 다 불러들여 놀고 있다면 그 고양이는 살았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주인을 위해서는 죽은 것이다. 자기목적이나 기호에 충실하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목적에서 이탈한 것은 죽은 것이다.
아담의 후손들은 자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지만 거역의 일을 하고 있고 그 결과는 바벨인 것이다. 이탈한 결과는 하나님 나라를 대항하는 바벨이다. 인생의 목적은 상실 되고 분열과 허무만 남는다.
목적 없는 것은 허무이고 이것이 죽음인 것이다. 아담, 그가 살았다는 것은 이 죽음을 확대하는 것이다. 죽은 자는 죽음을, 산자는 삶을 확대한다. 아담은 사단의 말을 듣고 이미 죽었다.
그러므로 죽은 자는 아들의 음성을 들어야 살아난다(요5:25참). 사단은 사람이 선악을 아는 지혜가 있으면 하나님 같이 된다고 한다. 아담은 이 말을 듣고 하나님의 목적에서 이탈하여 독존 자가 되었다. 사람으로서는 이미 죽은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과 사람이 생명나무를 통하여 연결되고 연합하여 하나님의 동산(한 나라)을 지키고 다스리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며 온전한 것인가!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그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지으시고 둘이 한 육체가 되리라 하셨다. 아담은 여자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하고 그 이름을 하와라 하지 않았던가?
한 생명으로 한 몸을 이루는 이 아름다움, 이 신비로움, 이것이 여호와께서 자신과 사람의 관계이기를 원하시는 바라는 것은 얼마나 축복이며 또 은혜인가?
한줌의 흙으로 지은바 된 인생이 그 지으신 이의 배필이 되어 그와 함께 왕 노릇 한다는 것, 이 어떠한 영광인가! 창세기 2 장에서 계시 된 아담과 하와는 구속의 과정을 거쳐서 계시록 21,22장에서 어린양과 그 아내로서 성취된다.
아들은 말한다. 인생은 하나님 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배필로서 그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유혹하는 마귀에게 말했고(마4:1~), 마지막으로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실행하고 있는 인생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받아들이면 아담 안에서 죽었던 인생은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의 목적 안으로 돌아오게 되고, 아들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새사람이 된다(1:12참). 또한 이 새사람은 교회로 소집 되어 어린양의 신부로서 그의 배필이 되기 위해 단장 되어 가는 것이다. (계19:7,8,21:2참)
사단의 말을 들으면 자존자가 되어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 살게 된다. 하나님 같이 된다는 것은 왕으로서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자가 되던가 아니면 지혜로서 전능자 이상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여 그 누구, 그 무엇에도 구애 받지 않는 자존을 누리는 것이다. 결국 두 길은 다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 사는 자가 되는 것이다(창6:1~4참).
아담의 후손들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허무한 인생을 알고 나면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 사는 것 밖에는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천사와 결합하여 네피림이 된다. 천사는 지혜와 지식과 능력의 화신이다. 그런즉 인간이 천사와 결합하면 얼마나 놀라운 자가 되겠는가?
아담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을 보고 충동을 받았다. 그래서 먹음으로서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천사와의 결합인 것이다. 사단의 말은 사단 자신이다.
말은 듣고 받아들이면 말 하는 자와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사단의 말을 들으면 사단과 결합하여 하나가 되고, 아들의 말을 들으면 아들과 결합하여 하나가 된다. 아담의 후손들은 천사와 결합하자 바로 네피림이 되었다. 그들은 다 유명한 자였다고 했다(창6:4참). 그러나 그들은 홍수에 밀려 멸망했고, 다시 바벨을 건설했으나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아들의 말을 듣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은 어린양의 배필로서 새 예루살렘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빛내는 나라가 된다. 이것은 아들의 말씀하심으로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