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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10월 27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말씀이 육체가 되심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14 -
성경 본문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말씀이 육체가 되심 요1:14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들 가운데 장막이 되시니 우리가 보니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실이 충만하더라.”
기독교는 유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유대어로, 유대인의 관념에 맞게 복음이 전해졌고 성서도 기록되었다. 그러나 유대를 벗어나서 소아시아와 로마까지 이른 기독교는 더 이상 유대적 관심과(메시야 대망 사상) 언어와 개념들로서는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가 곤란하게 되었던 것이다.(유대인이 전부이던 교인의 구성 비율은 1:1만이었다고 함)
예수님 사후 30년, 주후 60년경 에베소에 머물던 사도 요한은 이방인들과 교통을 하면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개념으로 복음을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하던 중에 말씀, 즉 로고스라는 개념을 찾아내었다. 로고스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익숙한 개념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적 개념
유대인들에게 말씀은 소리 이상의 어떤 것으로서 실제로 어떤 일을 행하게 하는 것이었다. 발설된 말은 표적을 향하여 날아가는 총알같은 것으로서 되돌아올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살아 있는 것이며 힘이 충만한 에너지의 한 단위와 같았다.
창조역사가 말하심으로 이루어졌고 (시33:6,107:20,147:15등), 출애굽이 말하심으로 일어났으며, 모든 축복이 말함으로 이루어졌는데 한번 말이 발하여지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다. (이삭의 축복 참조)
또한 말하심의 권위는 유대인들의 종교생활 속으로 깊이 발전하여 하나님에 대한 호칭도 말씀으로 대입했던 것이다. B.C 100년경에 번역된 아람어 성서(탈굼)에서는 “하나님을 맞으려”가 “말씀을 맞으려고”(출19:17)로, “나와 너희 사이에 영원한 표징”을 “하나님의 말씀과 너희의 사이”(출31:13) 등으로 번역하였다.
또한 지혜문학, 즉 대표적으로 잠언에 이르면 지혜와 말씀이 동일시되어 신비적이며 창조적인 지혜가 하나님의 영원한 대리자, 도구(잠3:18~20)등으로 인격화되고, 지혜와 말씀은 거의 동의어가 되어 “말씀은 사람들의 빛이다”를 “지혜는 사람들의 빛이라”는 식으로 두 가지 개념이 신속하게 혼합되고 있었다.
또한 지혜는 하나님과 동의어가 되어 잠8:29,30 에는 “땅의 기초를 정할 때 내가(지혜)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라고 하였다.
헬라적 개념
헬라인들은 B.C 560 년경부터 로고스 개념을 발전시켰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변전한다고 주장한 사람인데, 그런데 어떻게 인생은 혼돈되지 않는가에 대해서 로고스가 통제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했고, 자연계와 사건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로고스에 의해 일어난다고 했다.
스토익 학파는 세계질서와 그 모든 의미는 하나님의 이성인 로고스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았고,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유대와 헬라세계의 지혜를 연구하는 데 일생을 몰두한 사람인데, 로고스는 이 세상을 창조할 때 도구로 상용되었으며 우주의 조종자로서 하나님은 로고스라는 키로 만물을 조종하며, 인간에게 이상, 사고력, 인식력을 주고, 세계와 하나님,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조종 중계자로서 우주를 만들고 보존해주는 능력이라고 하였다.
요한은 이런 개념을 가진 헬라인들에게 바로 그 로고스가 이 땅에 육신으로 왔다. 그러므로 더 이상 추측이나 모색을 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예수를 보고 하나님의 정신을 알면 된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위대한 모험이었다. (이상은 요한이 사용한 로고스 개념에 대하여 윌리엄 버클리의 요한복음 강해 중에서 발췌 요약한 것이므로 참고하기 바람)
말씀이 육체가 됨
헬라인들에게 로고스는 추측이며 사유의 결과일 뿐, 실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로고스가 육체가 되었다고 함으로써 헬라적 사변주의에서 나온 로고스 개념을 한 영원한 인격의 표현이라는 개념으로 유도하려 하였다.
유대인들에게는 말씀은 살아 있는 분에게서 발하여지며, 발하여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는 신비한 힘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여호와의 말씀하심으로 이루어졌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 역시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들의 운명은 여호와의 말씀하심과 함께 있었다.
그러므로 로고스를 알려면 추측이나 모색을 멈추고 인격으로 나타나신 이를 통해서 직접 보고 듣고 만져보라는 것이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
추상적인 로고스 안에는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오고 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나 인격이 되신 로고스 안에는 그 실제가 충만하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것이며, 진리는 그분을 믿게 하는 근거인 것이다. 이 한 인격 안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오고 가는 가장 쉽고 합당한 내용이 충만한 것이다.
독생자의 영광
이상적인 로고스는 인간에게 은혜와 진실을 줄 수 없지만 육체를 통하여 표현된 하나님의 로고스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실을 인간에게 직접 분배할 수 있으므로 이 인격의 영광은 유일하다. 천사도 흉내 낼 수 없음으로 흠모하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 전에 예정했던 것이며 인생에게 두셨던 하나님의 기대와 목적이며 사단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인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는 악하고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이므로 하나님과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고 가현설은 주장했던 것이다(1요4:2참)
그러나 예수께서 육체가 되신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표이며, 또한 신성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마귀를 멸하기 위하여 육체로 오심
여호와는 육체인 인간을 통하여 자신을 만유에게 분배하며 인간과 더불어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인간을 지으셨다. 그러나 마귀는 그 나라를 방해하고 하나님을 대항하려고 사람을 유린하여 자기의 종을 삼은 것이다.
마귀가 하나님같이 된 모습은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같이 되려 하면 인생은 일생 동안 마귀에게 매달려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함으로 허무하게 죽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시어 십자가를 지심오로 마귀를 이기셨으니 하나님은 마귀를 멸하게 되었으며, 인생은 누구나 예수 안에서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의 경륜에 동참하여 그의 나라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죄를 없애기 위하여 육체로 오심
죄는 인간이 하나님같이 되려 함으로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다. 에덴에 들어가는 길이 막혔고(화염검으로), 지성소에 들어가는 문이 막힌 것이다(휘장으로).
구약에서의 예표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관문인 번제단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같이 되려함을 끝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하나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영역을 무시하고 침범하는 자라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 문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육체로 오시고 단번에 자신을 드리심으로 죄를 없애고 지성소에 들어가셨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그 안에서 하나님같이 되려함을 끝내면 죄가 없어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육체로 오심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육체를 가진 인간을 통하여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만유에게 자신의 성품을 분배하며 그 사람과 더불어 한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로서, 동산은 그 예표이고 새 예루살렘은 그 실제다. “나는 저들의 하나님이 되고 저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하셨다.
* 하나님에게는 자신의 표현과 나라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인격이 필요하다. 창세기 1장의목표는 인격이고, 2장의 목표는 연합이다. 하나님에게는 인격과 연합하여 한 나라를 이루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갈망이다. 그래서 육체를 가진 인간을 지으셨고, 구속하기 위하여 말씀이 육체가 되신 아들을 본내셨다. 인격은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정해진 위치다. 이 인격을 회복하기 위하여 말씀하심이 육체(인격)가 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