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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12월 8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표적(1)물로 된 포도주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2:1~12 -
성경 본문
2: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2: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2: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2: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2: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2: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2: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2: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2: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표적(1)
1. 물로 된 포도주(요2:1~ 12)
사흘 되던 날에 열린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
사흘 되던 날
성경에서 사흘 되던 날은 부활을 상징하는 날이다. 요한은 이 날을 위해서 1장에서 이튿날(죄를 처리하는 문제와 제자들을 부르신 일)을 세 번이나 말하고 나서야(29,36,43) 2장에서 사흘 되던 날의 일(혼인)을 말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본다면 사실은 다섯째 되던 날이지만 특별한 사건(부활-혼인의 일)을 말하려고 이 날을 사흘 되던 날이라고 한 것이다. 혼인은 옛것을 끝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계21:9~참).
혼인 잔치는 사흘 되던 날에 일어난다. 왜냐하면 혼인은 부활과 관계된 새로운 인생의 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셨다. 이 신성한 목적을 이루려면 절대적으로 혼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창조가 끝난 후 바로 혼인을 선포하신 것이다(창2:24참).
갈릴리 가나에서 혼인잔치가 열림
그런데 이 잔치가 예루살렘에서 일어나지 않고 갈릴리 가나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갈릴리는 멸시받던 땅이고 가나는 상하기 쉬운 갈대의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곳이다. 멸시받고 상하기 쉬운 곳에서 새 인생의 잔치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참 잔치는 언제나 이렇게 세상에서 멸시 받고 상하기 쉬운 곳(사53:3,마12:20참)에서 열린다. 천국은 그 영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고 했다(마5:3). 아담이 멸시하고 버린 곳에 새 인생을 위한 참된 혼인이 있어서 축복이 있고 감사와 만족이 있으며 기쁨이 있는 것이다.
잔치에 포도주가 다함
그런데 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모자란다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들 예수께 전한 것이다. 이 잔치 집은 예수님과 가까운 사람의 집이었던지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초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예수님 가까운 주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데 이것이 우연한 일이었을까?
잔치 집에 포두주가 떨어지면 잔치가 썰렁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신랑은 수치스럽게 되는 것이다. 난감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말을 듣고 “그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신 것이다. 사실 남의 잔치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인생의 잔치는 언젠가 포도주가 다 하게 된다는 것이다. 육신의 생명이 다하면 그 잔치도 다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개입하심
예수께서는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하셨지만 따로 하인들을 시켜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셨다. 육신적인 혼인잔치는 예수님이 어떻게 하실 일이 아니었기에 내 일이 아니라고 하셨으나 예수께서는 다른 새로운 잔치를 보여주기 위하여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신 것이다.
이 돌 항아리는 유대인의 결례에 사용하는 것인데 여섯 개라고 한 것은 처음 창조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며, 물이 두세통이나 들어가는 상당히 큰 항아리라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것을 담아야 할 그릇이라는 것이다. 한통은 1메트레테스라고 하는 용량 단위로서 39.5리터정도의 용량이라고 한다.
첫 번 쩨 창조 안에 있는 인간은 새로운 많은 것을 담아야 할 빈 그릇이다.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산 혼이 되었다고 했다. 산 혼은 하나님 생명으로 가득 채워야 할 빈 그릇인 것이다. 그 잔치 집에는 커다란 빈 돌 항아리들만 자신을 채워 줄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황이 역전됨
예수께서 이 일에 들어오심으로 상황은 역전되었다.
혼인잔치는 인생의 소망이며 최고의 자랑이요 기쁨이다.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모든 축복은 혼인으로 완성된다. 창세기 1장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라고 축복하셨다.
그리고 아담을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지키게 하시면서 배필을 지어 둘이 한 육체가 되도록 하셨다. 또한 최종적으로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서 신성한 계시가 결정을 이룬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연합하여 영원한 나라를 이루게 하신 것이다.(계21:22:참) 이것은 축복인 동시에 신성한 기름부음이며 사명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아담은 자신의 형상 대로 큰 돌 항아리를 만들어 물을 담아놓고 더러움을 씻으며, 포도(생명)를 비틀어 즙을 짜서 발효시키고 술을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서 잔치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고 헛된 노력이다. 생명을 받아서 참된 연합을 이루어야 더러움은 씻어지고 기쁨의 잔치는 영속하는 것이다.
생명을 받으면 육체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지고, 돌 항아리는 이 인격을 받으면 다함이 없는 포도주로 가득 채워진 항아리가 된다. 더 이상 효력이 없는 결례를 위한 물 항아리가 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주님은 하인들에게 돌 항아리에서 물로 된 포도주를 떠다가 연회 맡은 사람에게 갖다 주라 하셨다. 이것은 새 포도주였다. 영문을 알지 못한 연회장은 새로 가져온 포도주를 맛보고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느냐고 감탄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생전 처음 이런 포도주를 맛보았을 것이다. 돌 항아리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이것을 예수께서 행하신 처음표적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말씀이 육체가 되신 예수님 자신에 대한 처음 표적이었다.
예수께서 개입하심으로 잔치가 다시 시작되었고 끝이 없게 되었다.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 가득 채워진 포도주는 아무리 마셔도 다 마실 수 없을 만한 양으로 만들어졌다. (39.5x3x6=711리터) 처음 준비한 포도주는 아무리 많이 준비했다 해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주님이 새로 만드신 포도주는 한량이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원칙을 보여 줌
결례는 더러움을 씻고 하나님 앞에 서려는 인간의 노력이다. 그러나 씻고 또 씻어도 더러움은 없어지지 않는다.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크고 많은 물 항아리가 필요했지만 만족하게 씻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포도주는 힘껏 준비했지만 먹다 보면 부족하고, 물은 많이 준비해도 더러움을 다 씻을 수 없기 때문에 늘 부족한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포도주가 없으면 기쁨이 없어지고 물이 없으면 씻을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이럴 때 주님이 필요하다. 주 예수의 이름 안으로 침례를 받으면 모든 더러움이 씻어지고, 다함이 없는 표도주가 있으므로 인생의 잔치는 끝이 없게 된다. 그분은 깨끗하게 하는 물이시고 기쁨이 넘치게 하는 영원한 포도주시다.(엡5:26,27참)
물은 포도주가 되었다. 결례를 행하는 데밖에는 쓸 수 없었던 물이 기쁨을 일으키는 포도주가 되어 새 생명의 잔치에 중심이 되었다. 물로 된 포도주는 육체로 된 독생자의 표적이다. 물로 된 포도주는 잔치를 풍성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며, 육체로 된 독생자는 은혜와 실제로 충만하여 이생을 온전하게 한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믿었다고 했다. 생명의 모든 표적들은 이 원칙에 따른다.
갈릴리는 아담에게 멸시 받는 곳이며, 가나는 상하기 쉬운 곳이고, 돌 항아리는 모양이 멀쩡한 빈 그릇이며, 물은 깨끗하나 결례를 행하는 데 사용됨으로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생명은 모든 것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