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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12월 15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표적(2)육체로 된 성전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 2:1~11, 고전3:16,6:19. 골2:9 -
성경 본문
2: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2: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2: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2: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2: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2: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2: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2: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표적(2)
2. 육체로 된 성전 요 2:1~11, 고전3:16,6:19. 골2:9.
돌로 건축 된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배필로 지었다. 영이신 하나님은 육체가 있는 인간이 필요하고, 육체인 인간은 영이신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본질상 서로 필요하다. 그런데 아담의 이탈로 인하여 서로 만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오고자 해도 사람이 사탄의 지배아래 있음으로 올 수가 없고. 사람은 가고자 해도 위치가 빗나갔음으로 왜곡 되게 찾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상징하는 땅은 깊은 물에 잠겨 있어서 하나님의 신이 앉을 곳을 찾지 못했다고 했고(창1:2참),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간다는 것이 자기들이 각자 만든 제물을 가지고 가서 싸움만 일어났다고 했다(창4:1~참). 서로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인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날 선지자를 세워서 땅위에서 인간을 만나실 처소를 마련하도록 하셨고, 사람들은 자기들의 소유를 드려 공사를 한 것이 광야에서의 성막이며 이것이 왕국을 통해 확장 된 것이 성전이다. 성막은 천막과 같은 조립식 건축물이며 광야에서 이동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성전은 고정 되도록 돌로 건축 된 것이다.
돌로 건축 된 이 성전은 다윗이 그 재료들을 준비하고 솔로몬이 건축을 했는데 역사적인 풍랑에서 파괴 되었다가 중건하곤 했지마는 예수님 오셨을 때 있었던 성전은 헤롯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고 46년 동안 짓고 있었던 것으로서 준공까지는 아직도 20년이 더 남은 미완성의 건축물이었다.
그런데 이 성전마저 더럽혀지고 있었음
예수께서는 유월절이 가까이 왔음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유월절은 니산월 15일 (4월 중순경), 즉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민족적인 성일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 20마일 이내에 있는 유대인 남자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또한 그들 외에도 각처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250만 명이나 모여든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모임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 재물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돈을 바꿔주고 이윤을 챙기는 환전상들과 제물을 심사한다고 검사비를 챙기는 제사장들과 결탁한 사람들이다. 경배와 상관없는 일로 성전이 온통 더럽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심
이런 상황을 보신 예수께서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돈 상자를 뒤엎고 짐승들과 사람들을 쫓아내시면서“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하셨다.
제자들이 메시야의 표적을 봄
이것을 본 제자들은 메시야에 대한 인상을 받고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세계 안으로 들어갔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시69:9),“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리라“(말3:1~4)등등, 약속하신 메시야가 오실 때 일어나리라 한 말씀에 잠기게 되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함
반대로 유대인들은 그런 행동은 메시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느냐?”즉 네가 스스로 너 자신을 메시야로 주장하려고 이런 일을 행한다면 무슨 표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하였더니 “이 성전은 46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라고 하면서 분노하고 비난했던 것이다.
이로써 보면 하나님이 표적을 보여주셔도 반응은 다르다는 것이다. 표적을 보면 믿음으로 예언의 말씀 안에 잠겨든 사람이 있는가하면, 믿지 않음으로 볼수록 분노가 치미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는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표적을 요구하지마는 보여 줄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더 쉽게, 더 확실하게 말씀하셨다.“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는 말을 듣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 만에 일으키겠다.”하였다. 어느 것이 더 직접적이고 확실한가? 그러나 오히려 더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를 고발하고 재판할 때와(마26:61), 또 스데반을 재판할 때(행6:14).도 이것을 증거로 제시했던 것이다.
그뿐인가 심지어 제자들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가 부활하신 후에야“성전 된 자기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을 알고 성경과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다는 것이다.
믿음이 필요함
공관복음의 기자들은 성전에 대하여 모두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으나 요한은 “내 아버지 집”이라고 했다. 성전은 기도하기 위하여 지어진 집이기 전에 아버지 집으로서 아들의 형상으로 지어진 한 표적이었던 것이다.
표적을 보여주시면 믿어야 한다. 이성으로 알 수 있다면 왜 표적으로 보여 주시겠는가? 인간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하나님은 자신과 자신의 일을 표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이미 다 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억지로 노력할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한다.
더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믿지 못하겠다고 하지마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더 확실하게 보여 줄수록 더 믿지 못하는 것이다. 돌로 된 성전은 하나님의 거처로 믿었으나 인격으로 된 성전을 보고는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분노하고 죽여 버렸던 것이다.“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다(히11:6).
육체로 된 성전
예수로 말미암아 돌로 된 성전은 육체로 된 성전으로 바뀌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성전이 될 수 없게 되었음으로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못할 육체가 되었다고 했던 것이다(창6:3참).
그러나 생명과를 먹은 사람은 그 인격으로 인하여 육체가 성전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갈망이다. 고전 3:16절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하였고, 6:19절에는 “너의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의 전이라”하였다.
또 바울은 골로세서 2:9절 이하에서“예수 안에는 신성의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육적 몸을 벗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함께 일으키심을 받았으며~”라고 하였다.
육체는 인격의 거처가 되고, 인격은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이 된다. 물이 포도주가 되고, 돌로 지은 성전이 육체로 된 성전이 된다. 물로 된 포도주는 육체로 된 성전의 표적이며, 육체로 된 성전은 하나님 아들의 표적이다.
하나님은 표적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 창조 된 모든 것,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는 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표적으로 가득하다.
생명의 목적으로서의 하나님의 건축
요한이 이 사건을 물로 된 포도주 사건 바로 다음에 배열한 것은 물로 된 포도주로서 생명의 원칙을 보여주고, 돌로 된 성전으로 생명의 목적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명나무를 주신 것은 하나님과의 연결로 영원한 생명을 공급하여 그의 거처를 건축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시고 바로 하와를 건축하셔서 한 몸이 되게 하셨으며, 아브람을 불러 씨를 주시고 그 씨로 이스라엘을 건축하셨으며, 예수께서는 우리를구속하여 새 생명을 주시고 교회를 건축하신다. 포도주의 목적은 잔치의 생명을 위한 것이며 그 생명의 목적은 건축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며, 인간의 생각으로 갈고 다듬은 것도 아니다. 신성한 생명의 목적 안에 있는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