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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12월 29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만족의 표적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4:1~42 -
성경 본문
4:1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4: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4: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4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4: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육시쯤 되었더라
4: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하시니
4: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4: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4: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4: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4: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4: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4: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4: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4: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4: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4: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4: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4: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4: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4: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4: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4: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4: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4: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4: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4: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4: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4: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리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41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만족의 표적 (요4:1~42)
니고데모가 흠 없는 사람이었지만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는 것으로서, 거듭남은 타락으로 인한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과 그 목표를 위한 문제이며 거듭나려면 장대에 달린 예수를 보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4장에서는 만족이 없어서 너무 험한 인생을 살아온 한 여인을 통해서 산 혼(여자)으로 지어진 인간은 누구나 신성한 생명(그리스도)을 받아야 참 만족에 이른다는 것을 표적으로 계시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가시기 위해서 사마리아를 통행하셔야 했고 행로에 피곤하여 수가라는 고을에서 한 우물가에 쉬게 되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동네로 내려갔고 예수님 혼자 우물가에 앉으셨는데 어떤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려고 왔던 것이다.
요한은 이 두 사람의 만남에서 일어난 긴 얘기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두 사람이 다 목마름의 상태에서 만족의 상태로 바뀌었다는 것을 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수님도 목이 말라서 우물가에 앉으셨고 이 여인도 목이 말라서 물을 길으러 왔던 것이다. 목마름은 만족이 없음의 표시다(사12:3,44:3계21:6참).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원수지간이었다. B.C 720년, 앗수르인들이 북왕국을 점령하고 사마리아인들을 포로로 잡아가서 사방으로 흩어버리고, 사마리아에는 다른 민족들을 이주시켜버렸던 것이다(왕하17:6~참). 이 때 다 잡혀가지 못하고 남은 사람들(포로될 가치도 없는 자들)이 이방인들과 혼인함으로 혼혈이 되어 유대인의 혈통을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이 사람들이 당시의 사마리아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 오경을 사용했으므로 여호와께 경배를 드려야 했기에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보수할 때(B.C450년경) 협력하려 하였으나, 유대민족으로서의 상속권이 없다고 하여 경멸당하고 거절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갈 수가 없으므로 그리심산에 성전을 짓고 정통성을 세우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유대 장군 힐가누스는 B.C 129년에 사마리아를 공격, 성전을 파괴하고 약탈함으로써 관계는 더욱 악화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굳이 사마리아를 통행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파격적이며 유대인의 전통과 관습을 완전히 무시한 행동이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이런 행동을 하면 그의 명성은 끝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한은 단순하게 사마리아로 통행해야 했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행하신 일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주님이 행하신 일들이 다 우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요한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행로에 피곤하고 목이 말라서 우물가에 앉으셨다. 그런데 대낮에 물을 길으려고 온 사마리아 여인은 비상했다. 보통 여인들은 대낮에 우물에 오지 않고 해질 무렵에 오는데 이 여인은 제 6시, 즉 정오, 12시 대낮에 물을 길으려고 왔다는 것이다.
그의 사정은 딱했다. 너무 부도덕한 여자였기에 동네 여인들의 멸시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우물에 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니고데모가 밤, 아무도 없을 때 찾아온 것은 자신의 높은 신분 때문이었으나 이 여인이 아무도 없는 대낮에 우물을 찾은 것은 자신의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이 여자는 외롭고 목이 마른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이 여자를 보시고 “물을 좀 달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셨고 이 여자는 당황해서 “당신은 유대인이 아니냐? 유대인인 당신이 내게 어찌 물을 달라 하느냐”고 했다. 그리고 물을 주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할 길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 우물은 사마리아아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유서 깊은 우물이다.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야곱의 우물이었으며, 요셉이 이 땅에 묻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우물의 물을 유대인인 당신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만일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다시 여인은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우물은 깊은데 어데서 이 생수를 얻겠느냐”라면서 이 우물은 우리조상 야곱이 우리에게 준 우물인데 당신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크냐?”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였다. 이 말은 메시야만 할 수 있는 말이다(사44:3겔47:1~12참).
여자는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소서”하였다. 약간 비꼬는 말이었다, 그래 당신이 메시야라도 된단 말입니까? 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네 남편을 불러 오라”하셨다.
그러자 “나는 (데려올) 남편이 없다” 하였고
예수께서는 "네 말이 맞다. 전에 다섯 남편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것은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이다.
그때 “당신은 (나를 알고 있는) 선지자이십니다”. 하고 또다시 시험하려는 생각으로 질문하기를 어디서 예배하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었다. 이 질문은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을 원망하고 거부할 수 있는 마지막 무기와 같은 질문이다. 예루살렘이라고 하면 욕을 하고 가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예수께서는“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실제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실로 예배할지니라" 하셨다.
그러나 또다시“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즉, '그야 메시야가 온다면 지금처럼 여기냐 저기냐 하겠느냐' 는 것이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네게 말하는 내가 그니라”하셨다.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내려가서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소리친 것이다. 물동이는 이 여인이 예수께 물을 좀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는 자신의 유일한 소유이며 주권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자가 물동이를 버렸다는 것은 사마리아인으로서의 자신의 자존심과 주권을 버려두고 자신을 알고 있고 하나님을 알고 있는 한 사람을 증거하려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 여자는 만족했다. 종교와 전통과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관습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만족한 답을 얻은 것이다. 해방 되었다. 지금이다, 이 곳도 저 곳도 아니다. 영과 진실로 예배할 수 있다. 이 여자의 영은 그리그도 안에서 살아났다. 사람은 참으로 자기를 알고 있는 사람 안에서 안식과 만족을 얻는다. 참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두 사람간의 대화가 마무리 되었을 때 음식을 구하러 갔던 제자들이 돌아왔다. 그 동안 얼마나 시장하셨을까 해서 물었더니“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서 추수하게 되었느니라......”고 하셨다. 무엇으로 만족하다는 뜻이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구원의 생수로(계7:17,21:6참) 만족한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인하여 만족하셨던 것이다. 여자는 자기를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그리스도를 만나서 만족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으로 만족하셨던 것이다.
산 혼으로 지어진 인간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 빈 그릇이며 씨를 받아야 할 흙과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지음 받은 후에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거듭났어야 했고, 구속을 받은 후에도 하늘의 양식이신 그리스도를 먹고 다시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구속을 받고 광야에 나와서 만나를 먹으면서 하나님 백성으로 다시 살았던 것이다.
이 여자는 흙으로 지어진 빈 그릇으로서의 인간을 상징한다. 여자 앞에서는 남자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여자의 위치에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찾고 있는 사람은 남자 위치에 있는 인간이 아니라 여자위치에 있는 인간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경멸하고 사마리아인들도 원망하는 그 동네, 사마리아로 왜 굳이 통행하려고 하셨을까? 이 여인은 왜 하필 그 날에 이 우물에 왔을까? 예수님은 가까운 길로 가려고 하셨을 수도 있고, 이 여인은 우연히 오고 보니 이 분을 만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경험을 돌아보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이다. 요한은“예수께서 사마리아로 통행해야 하겠는지라”고 함으로써 이 일을 우연한 일로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두 사람 다 물이 필요해서 우물에서 만났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족함을 얻은 것이다. 성경에는 영혼의 만족을 표현할 때 생수라는 말을 사용했고(계7:17,21:6,등), 하나님은 생수의 원천이라고 했다(렘2:13참). 물을 찾다가 하나님-생수를 만난 것이다.
니고데모에게는 장대에 달림으로 모든 사람을 거듭나게(영생을 얻게) 하겠다고 말씀하시고,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신다고 하셨다. 니고데모는 만족이 없음으로 사람의 존경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었고, 여인은 만족이 없어서 험한 길을 방황했던 것이다. 모두가 먹어도 다시 목마를 물만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릇은 아무리 좋고 많아도 그릇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고, 흙은 아무리 좋은 흙이고 많이 있어도 씨가 없으면 공허하다.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은 그리스도(기름부음)로 만족하도록 지어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만나면 평안하고, 믿으면 만족을 얻게 된다. 인간의 존경과 지위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지고, 물동이를 놓지 못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하는 생수의 표적이시다.
그리스도는 살았다고 하는 자에게는 장대에 달린 놋뱀으로 죽음을 보여주시고. 죽었다고 하는 자에게는 생명수를 주셨다. 그리스도는 다시 나게 하시는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