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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1년 11월 13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건축을 위한 생명공급(7)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4:36-39 -
성경 본문
4: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4: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4: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4: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리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말씀 요약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건축을 위한 생명공급 (7)
심으면 거두는 황금시대로
(4:36~38,레26:5,암9:13참)
씨는 심으면 추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이 기간이 어렵다는 것이다. 기후 조건이 맞아야 하고, 재난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며, 병충해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그 열매를 맺으리라......” 하였고, “보라 날이 이를찌라. 그때에 밭 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라고 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시대, 즉 황금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씨를 뿌려도 거두지 못하는 역사다. 아담에게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창3:18) 했고 가인에게는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라”(창4:12) 했던 그대로다.
가인과 아벨은 신성한 일을 시작하였으나 살인을 저질렀으며, 아벨 대신에 셋을 주셨으나 네피림이 되었고, 노아의 식구들은 방주에서 구원을 받았으나 바벨을 건설했던 것이다. 심어도 거두지 못하거나 저주를 거둠으로써 악순환이 연속되었다(물론 씨의 문제도 있지만). 이런 일은 모두 심음과 거둠 사이의 문제 때문이다. 이런 일은 그 후의 역사 안에서도 계속 되고 있다.
원시부족 사회, 봉건영주 시대, 시민(도시 상공인) 사회, 자본주의, 공산주의, 신자본주의로의 이행은 그 때마다 모두 푸른 꿈을 약속하는 혁명으로 시작했지만 하나같이 약 주고 병 주는 역사를 반복했다. 시작은 다 그럴 듯했지만 무엇을 심던지 그 결과는 비극적인 열매였다.
좋은 씨를 잘 심었다 해도 열매를 얻으려면 유혹과 고난의 넉 달을 잘 넘겨야 한다. 이것이 농사의 어려움이고 생명의 위기다. 자연 상태에서 생명은 그 유년기를 넘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위치를 이탈한 인간이 만든 검증 되지 않은 씨를 심은 경우에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주님은 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는 때가 왔다고 하셨다. 선지자들로 약속했던 하나님의 황금기가 지금 보인다는 것이다. 심고 거두는 일이 곧 바로 축복으로 이어졌다. 여자는 물동이를 놓아둔 채 곧바로 동네로 내려갔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듣고 바로 예수를 믿었다. 재난의 위험이 없이 곧바로 추수된 것이다. 이는 황금시대의 징조였던 것이다.
아담은 산 혼으로서 하나님의 동산에서 선택의 기회 안에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기회는 넉 달이라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유혹을 받을 기회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
예수는 검증을 거친 인간으로서 죽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으로 죽음으로써 넉 달이라는 그 시험의 때를 없애버렸다. 넉 달이란, 선택의 기회가 있는 사람에게 해당되는것이다. 예수, 그는 선택할 기회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이미 선택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나의 선택으로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사람으로서 분배하는 것이다.(고전15:45) (인생은 이미 생명의 분배자로 선택된 존재다.(창1:26~참))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는 아담 안에서처럼 심음과 거둠 사이에서 긴장할 필요가 없어졌다. 선악을 앎으로 하나님 같았던(?) 인간은 예수 안에서 그와 함께 죽었다. 그러므로 아담에게 내려졌던 재난의 때는 없어지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황금시대는 온 것이다.
예수, 옛 것을 끝내고 다시 산 사람 안에는 새 것뿐이다. 더 이상 해를 받을 필요가 없으며 염려할 필요가 없다. (계2:11) 원래부터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그것을 거두라고 하셨다.(창1:26, 27) 그런데도 인간은 늘 다른 것을 찾는다. 소득 없는 땅을 갈고 있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해 은을 달아주고 있는 것이다.(사55;2) )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희를 수고하지 않는 것을 거두러 보내노라”(38) 하였다. 이것은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격언)을 적용하신 것이다.
부정적으로 적용하면 심는 때와 거두는 때가 너무 멀다는 뜻이 되지만 황금시대 안에서 이를 하나님과 인간에게 적용하면 축복이다. 하나님은 심었고 인간은 거두며, 예수님은 심고 우리는 거두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수고하여야 식물을 얻을 것이라는 판과 수고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는 판 사이에는 얼마나 깊은 구렁이 있는지!
하나님은 처음부터 축복을 열어놓으셨다. 다만 사람이 욕심에 끌려 자기 위치를 떠났으며, 하나님 대신에 우상(자기가 만든 것)을 섬김으로(골3:5) 수고해도 열매(복)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한다. 심고 거두는 일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암9:13) 하나님과 예수는 아버지와 아들로 하나였고, 예수와 우리들은 한 운명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이 이어질 때 서로는 모든 일에 함께 즐거워하게 된다.
단절되면 서로가 불만이고 비판뿐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마다 불만이고 복음이 오히려 저주로 들린다. 무엇이나 자기가 하지 못하면 불평이고 자기가 하면 자고해진다. 자기의 욕심과 의 때문이다. 수고하지 않고 거두는 것을 함께 즐거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복음은 내가 심었지만 다른 사람이 그 열매를 거두고 다른 사람이 심은 것을 내가 거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로가 기쁘다. 하나님 나라는 서로 연하여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되는 나라가 아니다. 심는 자가 있고 거두는 자가 있어서 서로가 기뻐하는 나라다.
하나님은 창조하셨고 우리는 산다. 예수는 인격을 구속하셨고 우리는 그 인격을 누린다. 인생은 원래 하나님이 준비하심을 누리도록 창조 되었다. 그러니까 이것을 모르면 모든 것을 잃고 ,알면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하셨다. 참예 하라는 것이다. 그의 안식에 참예하는 것은 모든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안식하셨다. 계획하신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으므로 안식하시고 그날을 복 주어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 안식에 참예하는 것은 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참 행복이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느니라” 하셨다. 노력하지 않은 것을 거두면서 감사하지 않을 수 있는가? 노력하지 않은 것을 거두었으면서 자고할 수 있는가?..........은혜 안에서 넉넉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창조에 참예하자!
예수님의 구속에 참예하자!
사도들의 증거에 참예하자!
형제들의 승리에 참예하자!
교회의 영광에 참예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