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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2월 12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건축을 위한 생명공급(20)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8:23,51,56,58 -
성경 본문
8: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8: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8: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건축을 위한 생명공급 (20)
선재적인 영원한 그리스도(요8:23,51,56,58)
예수님은 “나는 위에서 났다.”, “나 있던 곳으로 간다.”, “나를 믿는 자는 죽음을 보지 않는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보고 즐거워하였다.” 등등의 말씀을 하셨다. 그러자 이런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네가 우리 조상 아브라함 보다 크냐?”는 등의 말을 하면서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예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보다 먼저이고 크시다.
그리스도는 역사적이나 선재적이다. 선재적인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영원 안에서 역사 안으로 육신이 되어 오셨다.(요1;14) 즉, 인격 안에 기름부음 되신 것이다. 이 얼마나 인생을 위한 큰 영광이며 축복인가! (요1;14, 마1;23, 눅2;14)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는 복음 중의 복음이시다.
창조자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그의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셨다.(창1;26,27) 이는 하나님을 담기 위한 그릇이며, 싹 트게 하기 위한 밭으로서의 기름부음(위임)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으로 지어졌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지으신 인류의 영원한 본이시다.
인간은 어쩌다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영원한 계획 안에서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그의 형상을 따라 그의 모양대로 지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한 역사적 그리스도를 준비하려고 아담을 지으셨으나 아담은 그의 기름부음을 이탈하였다. 이로 인해 그 이후에는 간헐적으로 어떤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기름이 부어졌고 최종적으로는 그 기름부음이 예수에게 오셨으므로 그를 하나님의 그리스도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기름부음이 먼저 있고, 아담이 지어졌으며, 예수가 오신 것이다. 아담의 이탈로 기름부음이 유보되었으므로 저주가 왔으나, 예수에게 이 기름부음이 회복됨으로써 새 인류를 위한 축복이 시작되었다. 아담으로 인하여 보류 되었던 사람을 위한 기름부음이 예수로 인하여 다시 열린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은 전 인류를 자신의 대리자로 기름 붓는 것이다.
목수가 책상을 만들 때는 이미 그에게 그 책상의 도면이 있고 목수는 그 도면을 가지고 책상을 만드는 것이다 . 그러므로 도면이 책상보다 먼저 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인간 창조를 위한 그 도면이 상세하게 나와 있고, 2장에 보면 그 실시도면이 자세히 그려져 있는 것이다.
※ 성경은 복음이다. 선재하신 그리스도가 있고 그가 육체가 되어 오셨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예수 자신이 복음이다. 그는 새 인류를 위한 맏아들로서 우리의 형님이시다.(롬8;29,히1;6)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인생은 신성한 영광의 소망으로 벅차다.
그리스도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고, 아담보다 먼저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는 죽음이 없다. 죽음은 아담에게 속한 것이며 육신의 문제인 것이다. 아담도 죽었고 예수도 죽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영원하시므로 부활하셨다. 그 안에는 죽음이 없는 것이다.
그의 생애를 증거한 복음서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많고, 그의 영광을 증거한 서신서에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많다. 예수는 그리스도로 영광 받으시고 영원히 살아계신다. 인생은 잠깐이지만 그리스도는 영원하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로서 죽음이 없이 영원하다.
그런데 인간이 우연히 생겨났다던가, 미생물에서 진화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하고 저주스러운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인생을 무슨 의미로, 무슨 맛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창조를 믿을 수 없어서 진화를 믿는다면 어차피 불확실한 것인데, 기왕이면 축복의 편을 믿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이고 예수의 조상이다. 그러나 영원 안에서는 그리스도가 먼저고 그는 나중인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 중에 그 누구도 그리스도보다 먼저 있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있어서 사람이 지어진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존재적인 영광이며 복이다.
만약에 사람보다 먼저 원숭이가 있었다면 인간은 모두 원숭이에게로부터 왔다가 원숭이에게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는 곳도 영광의 그리스도이고, 돌아갈 곳도 영광의 그리스도, 우리의 소망이다. 인생의 갈 곳은 원숭이나 아메바가 아니라 그리스도, 우리의 영광인 것이다.
아담은 그리스도를 목표로 지어졌고, 아브라함은 부름 받아 이삭을 낳았고, 모세는 이스라엘을 인도했으며, 우리는 구속을 받고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간다.
그리스도가 선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그리스도를 전제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그가 없이는 되어진 것이 없고(요1;3), 그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은 무엇이나 축복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 아브라함은 “나의 때”, 즉 그리스도의 때를 보고 즐거워했다. 그는 100세에 아들을 얻고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였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고, 아브라함은 죽은 자 같은 100세에 아들을 얻었으며, 모리아 산(제단-십자가)에서 이삭을 다시 받았다. 이삭은 부활의 자녀였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이삭의 때, 즉 “그리스도의 때”를 보고 즐거워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이전에도 죽음을 짊어지고 사셨으며, 육체로 사실 때도 부활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않으리라” 하셨다.(11;25) 죽음은 육체에 속한 것이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통하여 일어난 그리스도의 때를 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안에서 성취된 그리스도의 때를 보았고 또 우리를 통해서 일어난 그의 때를 보고 소망을 보며 즐거워한다.
※ 인간 이전에 원숭이가 있고, 원숭이 이전에 아메바가 있으며, 아메바 이전에 인간이 우연이 있다는 말은 저주의 말이고, 인간 이전에 그리스도가 있고, 그리스도 이전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은 복된 말이다.
저주하는 말은 저주의 그물을 만들고 그 그물에 싸인 고기를 다 잡는다. 그러므로 복음을 들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나보다 먼저 있다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복음을 들으면 축복을 받는다. 복음이 들리면 인생은 축복의 동산에서 복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봄바람이 불면 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