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12년 5월 6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과 건축자(6)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0:22-42 -
성경 본문
10: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10: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10: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10: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10: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10: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10: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10: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10: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10: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10: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10:39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10:40 다시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주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10: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참이라 하더라
10: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과 건축자
하나님 아들이신 선한 목자 (요10:22-42)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불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육체로 가져오시고,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왕권 대신에 영원한 왕권을 얻으셨으며, 반복적으로 드려도 죄가 없어지지 않는 율법적 제사 대신에 십자가를 지심으로 백성의 죄를 단번에 담당하셨고, 폐하여질 옛 언약 대신에 새 언약을 가져오심으로써 선한 목자가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생을 주시는 선한 목자시다.
그리스도로서는 새로운 삶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영생하는 생명을 주시는 선한 목자시다.
수전절은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절기였다.
수리아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B.C175-164)가 헬라문화에 도취되어 팔레스틴의 유대교를 없애고 헬라문화와 종교로 대치하려 하여 예루살렘에 침입하여 8만 명을 죽이고 8만 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성전 안에 있는 금을 약탈하고 성전은 공창으로 만들고, 번제단에는 돼지를 잡아 제사 드리며, 성전 뜰은 동물들을 들여놓아 더럽혔다. 율법서를 소유하거나 할례를 행한 자는 사형에 처하였다. 유대인에게는 대환란이었다.
이러자 B.C 164년 마카비 형제들이 일어나 반군을 일으켜 자유를 위해 투쟁하여 적군을 물리치고 영웅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파멸에 처한 백성을 구하고 허물어지고 더럽혀진 성전을 수리하였기에 이때를 수전절이라 하는데 봉헌절, 성전정화 기념일, 빛의 절기 등으로도 불리고, 성전과 온 시내에 불을 밝혔다고 한다.
예수님은 이때에 선한 목자로서 자신이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 아들이심에 대하여 계시하시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 라고 하셨다.
하나님 아들에 대한 희랍인의 관념은 일반적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관념은 신탁과 관계 된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반응은 “네가 사람이면서 스스로 너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드느냐” 하고 참람죄로 바로 돌로 치려 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전통적인 관념과 성서적인 근거로서 그 하시는 일을 보고 믿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존재론적으로 예수를 몰아 세워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아들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성경을 들어 반박했다. 시82:6에는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재판관들을 신이라 했다는 것이다. ( 출7;1,21;6,22;8,9,시75;7.20:11 등에도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는 자들을 신(재판장) 이라 함)
예수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이 바라던 것은 수전절을 만들었던 마카비 형제들과 같은 메시야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행하신 일들이 메시야의 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메시야는 인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유대민족은 나라를 잃음으로써 주권을 잃었다. 그러나 인류는 하나님과 그의 동산을 잃음으로써 영생을 잃었다. 예수는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여 영생을 주시려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메시야, 곧 그의 아들이시다.
영생은 생명나무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으로서 아들 안에서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삶이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여호와의 동산을 지키는 것이며, 그를 위한 배필이 되는 것이고, 부르신 이의 백성이 되는 것이며(계21:3), 그의 기르시는 양이 되는 것이다.(시100:3)
끝이 없는 삶, 진실하고, 완전하고, 만족한 삶으로서의 영생은 하나님과 연합 되어 함께 하는 삶이다. 성경에는 영생을 여러 가지 방면으로 모사한다. (하늘에 간직된 구원,(벧전1:4) 하늘의 시민권(빌3:20) 상속(마25:34) 잔치(마8:11,22:2,25:19,계19:9), 안전한 성(히11:10,12:22-24), 상급, 보화(마5:12,6:20,막10:21) 등)
이 모든 것은 아들이며 또한 아들이 주시는 것이다.
아들은 생명임(요11:25,14:6,6:48,1요1:2)
아들은 생명을 가지심(1:4,5:26,6:68)
아들은 영생의 양식임(6:23)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음(3:15,16,5:21)
아들을 따르는 자는 영생을 얻었음
(3:36,5:24,6:47,1028,17:2-3,1요5:11,13)
선악을 아는 지식 안에서는 인간은 율법의 종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아담의 일성은 “두려워 숨었습니다”(창3:10)였고,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본 여호와의 모습은 불과 뇌성과 구름과 나팔 소리였다.(출19:16-18)
언약은 피로 맺어야 했고(출24:7,8) 사함도 피 흘림으로만 가능했다(히9:22). 그러므로 여호와와의 관계는 약속과 배반과 은총의 반복적 순환이었다. 영생이 없었던 것이다. 영생은 단지 미래적인 약속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약속의 실제는 아들 안에서 현실로 나타난 바 되었다. 결국 이 모든 약속은 아버지 안에 있는 한 아들(인격)이다. 인간은 새처럼 공중을 날 수 없고 물고기처럼 물에서 살 수가 없다. 공중의 생활과 물속의 생활은 새와 물고기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이와 같이 영생은 아들의 삶이며 아들만 가능한 삶인 것이다. 공중을 나는 것이 끊어지지 않고, 참되며, 완전하고 만족한 것이라면, 이런 삶을 영생이라 한다면, 이 삶은 새로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아들의 삶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인가? 믿고 영접하고 따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어떻게 믿고 영접하고 따를 수 있는가? 사람들은 새를 믿고 영접하고 따른 결과로 비행기를 만들었다. 인간의 종교가 만들어 놓은 것도 이와 같다. 그러나 비행기에 새의 모양이 있고 그 기능의 일부가 있을지는 모르나 그것이 새의 삶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영생이신 아들을 주시고 그 아들 안에 모든 사람을 포함시켜 영생이신 아들의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계시다. 인간의 종교는 비행기를 만들고 있으나 하나님의 계시는 이미 아들 안에 만유를 포함한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다. 이것이 영생의 길이다. 주님은 영생을 주고 영생을 살게 하는 선한 목자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