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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7월 22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과 건축자(17)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2:37~43 -
성경 본문
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12: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12:39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12: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12: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2:42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12: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과 건축자
주의 영광을 보고(요12;37~43)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셨다”고 하였고,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였다.” 고 하였다.
예수께서 지금까지 행하신 일은 자신이 그 그리스도로서 새로운 세계를 가지고 왔으며, 또 가지고 올 것을 말씀하신 것과, 그것을 믿게 하는 표적들을 행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믿지 아니함으로 그들을 떠나신 것이다.
왜 믿지 못했을까?
하나님의 구원은 세상과 인간의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는 전혀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계획을 벗어나서 세상을 살고 또 경영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생명 대신에 선악을 아는 지식이 생명이 되어 있어서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밖에는 살수 없는 자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이 평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자신들의 계획을 위하여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들의 생각이 항상 악하다는 것이고(창6:5,롬3:10~16참), 사람들의 생각에는 하나님이 항상 멀리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러 온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죽여 없앴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기 때문에 선지자들로 하여금 말을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생선을 달라하는데 하나님이 뱀을 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길이 다르면 축복이 저주가 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땅이 너를 저주하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그런 것들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가는 길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자는 탄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고, 또 저희가 믿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이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다는 것이다.
바벨로 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가 없는데 그들은 이미 돌이켜 고침 받을 수 없는 길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저주하려고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다만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면 스스로 저주가 되는 것이다. 전기는 많은 돈을 들여 화재를 일으키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화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을 위해 만든 동산은 인간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화염검에 둘러러싸여 있고, 땅은 가시덤불을 내게 되었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길인 것이다.
그런즉 하나님 말씀이 달콤하게 들린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가! 주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또한 어떠한 영광인가! 이사야는 왜 그 백성을 보고 탄식했던가?“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하였다.(사6;1~4참)
아람과 에브라임이 동맹을 하고 예루살렘에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아하스 왕은 몸이 사시나무가 떨리듯 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그 때 이사야는 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의 영광을 보고 내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뵈었으니 나는 망하게 되었다고 엎드렸던 것이다.
두 사람이 다 권능 앞에 놀랐지만 하나는 적군에게 놀라서 떨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에 놀라서 그 앞에 엎드렸다는 것이다. 적의 군사력에 놀라는 자는 절망하나, 하나님의 영광에 놀라는 자는 담력을 얻는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낼꼬?" 라고 했을 때 이사야는 “주여 나를 보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사6:8)하였다. 그 때 여호와는 이사야에게 너는 아하스를 만나서 “너는 삼가 조용하라~그들이 심히 노할찌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하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하스는 믿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아하스에게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무슨 징조든지 징조를 구하라” 하였으나 역시 “나는 구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멈추지 않고 “주께서 징조로 친히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였던 것이다.(사7:1~17참)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은 언제나 이렇게 사람의 생각과 멀리 있는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믿고 기대할 인간이 없다는 것이다.
혹시 믿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바리새인들에게 출회 당할까 해서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인간의 영광을 더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은 예수 십자가의 구속밖에는 길이 없다. 하나님의 영광은 구속 안에서만 보이는 것이다. 아담은 범죄하지 않았어도 구속이 없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영광, 인생의 영광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사야가 보았던 여호와의 영광을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보았기 때문에 이 말을 한 것이다. 그가 말한 “주의 영광”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인 것이다.
말씀이 육체가 되신 영광,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의 영광, 십자가에 못 박혀 만민의 구속자가 되신 영광, 부활하시어 새 생명의 주가 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사야가 탄식했던 그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안타까운 것이다.
무엇이 인생의 문제인가?
주의 영광을 보지 못한 것이 문제인 것이다. 주의 영광이 보이지 않으면 아하스처럼 항상 세상의 세력 앞에 두려워 떠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영광)을 믿는 자는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1요5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