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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9월 9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과 건축자(19)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3:1-10 -
성경 본문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13: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13:5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13: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13: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과 건축자
씻기시고 먹이심 (최후의 만찬) 요14:13-30
요한복음 1장부터 13장까지의 말씀은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하나님 아들로서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끄심을 보여주고 있고, 요한복음 14장부터 21장까지의 말씀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하나님 아들로서 사람을 하나님 안으로 이끄심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면으로 보면, 요한복음의 전반부는 생명의 건축을 위한 재료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기술하고 있고, 후반부는 생명의 건축을 위해 재료들을 모으시고 세우시는 것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주님은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셨다. 그분은 대중들에게 마지막 생명을 선포하시고(12;44~50) 제자들에게 마지막 생명을 분배하려고 만찬을 베푸셨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셔야 할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러나 사단은 가룟 유다의 마음에 배반할 마음을 넣었다고 했다.
신성한 교통을 위해 발을 씻기심
유대인들은 손님으로 초대 받으면 목욕을 하고 잔치에 참예하는데, 이때 초대한 주인의 종이 문간에 나와서 손님들의 발을 씻어준다고 한다. 이미 목욕을 하고 왔을지라도 오는 동안에 샌들을 신었기 때문에 발에 먼지가 많이 묻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보아, 남의 발을 씻어 주는 사람은 주나 선생이 아니라 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소에도 종은 주인의 발을 씻겨 주는데, 이때가 주인과 종이 제일 가까운 관계가 되는 순간이다.
샌들을 신고 다니는 유대인의 관습으로 보면 발은 늘 땅과 접하기 때문에 쉽게 더럽혀지는 곳이다. 씻는 것은 깨끗하게 하기 위함인데, 물로 씻는 것의 영적인 의미는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서 친밀한 교통을 위한 것이다. 남편이신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인 아내-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흠과 티나 주름이 없게 한다고 하였다.(엡5:26,27)
주님은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통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써 그들과 온전하게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싶으셨을 것이다. 세상에서 묻은 먼지나 불순물은 몸의 신성한 교통을 방해한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씻었고 주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해도 세상에 살고 있는 한, 먼지는 늘 묻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먼지들이 온전한 교통을 방해하는 것이다.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세상 문제들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세상과 접한 부분을 늘 물-생명의 말씀(엡5:26,27)으로 씻어내야 한다.
영원히 죄를 사함 받았다는 사람들의 딜레마가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그들은 발은 늘 세상과 접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몸은 구속 안에서 이미 깨끗해졌다. 또 씻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발은 방에 들어갈 때마다 늘 씻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생명으로 새기기 위해 먹이심
요한은 주께서 발을 씻기신 일이 식사 중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했다. 공관복음에는 이 사건이 빠져 있고, 요한복음에는 각자에게 떡과 잔을 주셨다는 일이 빠져 있다. 요한은 떡과 잔의 의미(성찬)를 일부러 제쳐둔 것일까? 만약 요한이 일부러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초대교회의 성찬에 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고전11:27~29참) 그래서 발을 씻기는 일로 대체했는지도 모른다.
성찬의 의미에 대해 바울은 주님의 죽으심을 다시 오실 때까지 기념하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고전11:24참) 주님의 죽으심이 몸 안에서 계속적으로 기념(각인) 된다면 몸은 정결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주께서 발을 씻기신 일은 결국 씻음으로써 한 공동체를 정결케 함이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성한 공동체의 유기적인 연합을 위해서는 세상에서 묻은 때를 씻어냄이 필요하고, 이는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셨듯이 또 우리 서로가 행해야 할 일이다. 주님께서는 ‘지금은 너희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리라’ 고 하셨다.
이것은 교회생활 안에서 알게 될 일이다.
주님은 먼저 본을 보여 주셨다. 교회는 섬기는 자들로 인하여 정결케 된다. 주님이 우리의 허물을 씻어 주시듯이 우리는 서로 섬김으로 씻긴다. 씻어주는 것이 섬기는 것이다. 선악을 아는 지식으로는 서로 씻어줄 수 없다. 생명의 사랑을 먹이고 섬김으로 씻어줄 수 있는 것이다.
가룟 유다는 떡을 먹고도 세상으로 나감
주님은 씻어주시고 먹여 주셨다. 요한은 가룟 유다에게 주님이 특별히 떡을 포도주에 찍어 주셨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떡을 받고 밖으로 나갔다. 예수를 넘겨주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 씻어주시고 먹여주셨으나 사단이 벌써 그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서 주님을 팔았다는 것이다.
사단에게 점유된 사람은 은혜를 헛되이 할 뿐 아니라 욕되게 하는 것이다.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이 달라지고 목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목표와 입장에서 이탈함으로써 모든 것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것마다 자기 목적대로 오용했으며, 자기 소원대로 목표를 세워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가 되었다.
동산을 지킬 자가 바벨을 건설했고, 성막을 건축할 자가 자신의 국고성을 건축하는 데 하나님의 백성까지 동원했으며, 심지어 이스라엘까지도 하나님 나라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의 제국을 소망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룟 유다의 배신이 나온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소망인 그 나라의 회복, 즉 제국의 영광을 소망하다가, 결국 백약이 무효여서 주님을 팔기에 이른 것이다. 후에 사도들은 그가 불의의 삯을 받았다고 했으나 돈이 욕심나서 주님을 팔았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은 세상 영광을 바라다가 주님을 판 것이다. 돈은 세상을 대표한다.
그는 은 30냥이 탐이 났던 것이 아니다. 돈 뒤에 있는 세상이 탐이 났던 것이다. 은이 탐이 났다면 왜 그 은을 성전 금고에 반납하고 자결했겠는가? 그는 자기목적에 따라 예수님에게 기대를 걸었고, 그를 따르다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시험하고자 했던 것이 분명하다.
예수를 궁지에 몰아넣으면 그가 좌우간에 그 모습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예측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의 예측대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삼년간 따르던 스승만 죽음에 넘겨지고 말았다. 그래서 돈을 다시 반납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은 보지 못하고 세상의 영광만 좇던 인류를 대표해서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