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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2월 26일
제목: 2. 구속(회복) 안에서 하나님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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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하나로세계
2. 구속(회복) 안에서 하나임.
인간의 문제는 하나로의 창조에서 이탈한 것이다. 자신과 남과 환경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시비, 갈등과 부조화는 모두 본 위치에서 이탈한 결과다. 여기서 인간은 동서고금, 지위 고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하나다. 이것을 제 위치로 돌려놓는 것이 구속이다.
a. 이탈한 자리가 하나다
인간은 많아도 이탈한 자리는 하나다. 사람의 위치를 버리고 하나님 같이, 천사 같이 되려는 것이다. 만유에게는 각자의 위치가 있다. 식물은 식물의 위치, 동물은 동물의 위치가 있듯이, 천사는 천사의 위치, 사람은 사람의 위치가 있다.
이 위치는 고유의 격이 되는데 이 격은 바꾸거나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만 이 위치를 떠나서 자신이 다른 격을 만들려고 한다. 사람은 자신에게 만족이 없기 때문에 사람 이상으로 천사 같이 되거나, 이하로 짐승처럼 되려고 한다. 자기 정체성이 없음으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죄와 저주라고 표현하고 있는바 예외가 없기 때문에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한다”고 하였다.(롬3;23)
인간은 자신의 격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지음 받았으나 이 위치를 버리고 천사 같이 되려 함으로써 문제에 빠지게 된 것이다.(롬3;23) 그러므로 문제가 많은 것 같으나 문제성은 하나다.
b. 구속(회복)의 자리가 하나다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도 인간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사람을 천사 같이 만들려고 했고,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사람답게 하려고 많은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위치가 이탈 된 인간을 바르지는 못했다. 혹 있다한들 몇이나 되었겠는가?
한 자리에서 이탈한 인류는 다시 그 한 자리로 회복(구속)되야 한다. 이 자리만 회복 되면 사람은 사람답게, 즉 하나님을 표현함으로써 그의 영광에 이르는 자로 살게 된다. 이 자리는 하나님이 함께하기 위해 정해 놓으신 인격이다. 인격은 하나님이 함께 하기에 알맞은 유일한 격이다. 말씀은 여기서 육체가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자리를 잃었지만 잃은 줄을 모르고 다른 인격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속았고 또 속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이탈한 것이 아니다. 만일 스스로 이탈했다면 누군가는 스스로 돌아갔을 것이다. 인간 이외의 다른 차원에서 속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신이 속아서 위치를 이탈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 사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로 인하여 드디어 완전하게 폭로 되고 전시 되었다. 그가 진정 인생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저주하고 실망하고 가지 않았던가? 누가 그가 자기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가? (사53;4-8)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지난지 이천년이 넘었지만 그를 사랑하고 섬기는 많은 사람들마저도 그가 자신의 운명이요 원형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랑과 충성과 고귀한 희생 같은 인간이 추구하고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로 그를 포장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라고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속은 것이다. 위치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유일한 길이다. 예수는 이 위치를 회복하려고 오신 그리스도시다. 회복해야 할 자리는 유일하다.
c. 구속자는 한분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손으로 만들지 않은 인격으로 참 사람을 나타내셨다.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친히 회복되어야 할 인격을 보여 주신 것이다.
성현들의 인격은 위대했고, 교정을 위한 가르침 또한 고상했지만, 너무 비범했기 때문에 범인들로서는 따라가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노력하지 아니한 인격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그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벼운 것이다.(마11;30)
그러므로 “누구든지 내게로 오라, 나를 따르라” 하셨다. 역사상 어느 성현이 누구든지 와서 제자가 되라고 했었던가? 누가 자신의 가르침이 쉽고 가볍다고 했던가? 어렵기 때문에 같이 배워도 천차만별이라서, 하나가 되려고 해도 될 수가 없었다. 이래서 결국은 다 바벨로 간 것이다. 이것은 바벨의 길이었던 것이다.
회복은 단지 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탈하기 전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은 노력이 아니라 순종이다. 그러므로 쉽고 누구나 가능한 것이다. 보고 시인하고 따르면 된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복음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정해주신 자리는 하나다. 인간은 많고 입장과 의견이 달라도 인격은 하나다. 나무가 많지만 식물이라는 격은 하나이고, 사람이 많아도 인간이라는 격은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격 회복의 자리에서 인간은 하나다.
인간은 왜 이 위치를 잃었으며 누가 이 위치를 회복할 것인가?
아담은 격이 정해진 인간으로 지음 받았다. 인간은 이 격으로 하나님의 동산에서 그의 생명을 먹고 그의 배필로서 그와 동행하는 것이다. 애기는 태어나면 엄마의 품에서 엄마의 젖을 먹고 자라서 성인이 되고,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서 자양분을 먹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만유는 각자의 격에 맞추어 살아가도록 정해졌다. 이것은 높거나 낮은 문제가 아니고,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각자에게 알 맞는 분수다. 그런데 아담은 능력의 천사에게 속아서 자신의 분수를 버리고 전능자가 되려고 지식을 취한 것이다.
지음 받은 인간은 천사와 비교하면 다른 점이 있다. 육체적 존재는 천사의 특성이 없고 천사는 인간의 특성이 없다. 서로 다른 것이다. 부족함이 아니라 다른 점이다. 그런데 인간은 전능자가 되고 싶어 천사의 말을 들었다. 인간이 능한 자가 되려면 천사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것이 천사숭배다.
그러나 피조물이 전능자가 되려하면 자신에게 정해진 정체성과 존엄성을 잃고 비천한 자가 된다. 까마귀가 비둘기가 되려고 하면 우스개 꺼리가 된다는 것이다. 까마귀들에게는 배척을 받고, 비둘기들에게는 놀림감이 된다. 인간은 전능자가 되려다가 이런 꼴이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러야 할 인간이 만물의 찌끼 같이 심히 부패한 자가 되었으며, 천사들의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렘17;9,히1;6참)
예수는 사람의 위치를 회복하려 오신 그리스도시다. 결함을 극복하고 더 전능한 자가 되게 하려고 무엇을 더 가르치러 오신 분이 아니고, 단지 잃었던 위치를 회복시키려고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가르침은 특별하지 않고 사역은 단순하다.
나는 평생을 예수 한 사람을 추구하면서 따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그분에 대하여 아는 것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인생으로써 죽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스도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모든 칭송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지 한 인생으로써 죽은 것이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사도들은 이를 가리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구속자요 구속의 주님이라고 했으며 우리가 그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했다.(엡1;7,행5;31,고전1;30참) 그러므로 그의 죽으심 안에서 나타난 회복 된 사람을 보고 믿으면 그와 함께 회복 된다.
누가 참 사람인가? 모든 이름을 다 빼앗긴 채 아무 이름도 없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한 사람, 그가 바로 인간의 원형이고, 진실한 사람의 표본이며, 모든 인류가 회복 되어야 할 인격인 것이다.
인생이면서도 인생임을 알지 못하고 천사의 힘을 빌려 전능자가 되려는 인간들을 위해서 예수는 십자가에서 그런 모습으로 죽으셨다. 그런데 거기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다 그 자리를 떠났고 제자들 까지도 다 버리고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진실을 가르쳐 주셨다.(요15;26)
이가 참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된 사람이며, 이 안에 인류에게 정해진 위치가 있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격이 있다는 것을 알려(계시) 주신 것이다.
유가나 불가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악한 것도 아니며 선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본성은 하늘이 준 것이나 사람들이 그 본성을 따르지 않아서 도가 희귀하다는 것이다(천명지 위성, 솔성지 위 도)
천명이 있는데 왜 따르지 않는가? 위치와 격을 이탈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위치와 격이 바르게 회복 되지 않는 한 모든 가르침은 헛되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는 별로 가르치지 않았다. 단지 인생의 위치와 그 격을 보여 주셨을 뿐이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진실이 판명 되고 만민 앞에 전시 되었다. 괴도를 이탈한 열차는 달리려고 할수록 문제가 커진다. 열차는 엔진을 꺼야하고 누군가가 괴도에 올려줘야 한다.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열차는 구속을 받은 후에 구원(다시 달림)이 있는 것이다. 인생은 구속을 받고서야 구원이 있다.
※ 예수는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지도자들 중에 구속에 있어서 유일한 분이시다. 다른 길이 없고 다른 구속자가 없다. 그러므로 유일한 구속 안에서 인류는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