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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7월 29일
제목: Ⅳ. 성전을 새롭게 하심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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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Ⅳ. 성전을 새롭게 하심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서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거하신다는 의미에서 성전이라 하고 만나는 곳이란 의미에서는 회막이라 한다. 하나님은 하늘에 거하시고 인간은 땅에 거하기 때문에 서로 만나기가 어려워서 하나님은 땅에 자신의 거처를 지으라고 명하셨고 백성은 그 집을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요 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유일한 길을 통해서 그분을 뵙고 죄의 용서와 자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로우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법을 따라야 했다. 그 법은 먼저 번제단에서 양이나 소를 잡아 제물로 드리고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사가 충분한 효력을 내지 못했으므로 해마다 그 일을 반복해야 했다. 반복해야 한다는 것은 죄의 회개가 온전치 못했다는 것이므로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온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히103,4참).
그러므로 성전은 새로워 져야 했던 것이다.
1. 성전은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곳임
성전을 가장 쉽게 정의한 것이 출애굽기 25장 22절의 말씀이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셨다. 성전은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곳으로서 여호와와 모세와의 약속인데 이것은 인류와 하나님과의 약속이 되는 것이다.
가. 백성들과 함께 하는 여호와
처음 성전은 성막이었다. 백성이 천막 생활로 광야를 지나던 때였으니까 하나님의 집도 천막 형식이었다가 왕국이 건설된 후 정식 건물로 지어졌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백성과 함께 하는 분이시다. 백성이 천막에 있으면 여호와도 천막에 거하시고 백성이 돌집에 있으면 그분도 돌집에 계시는 분이시다.
나. 자신이 정한 곳으로 모세를 부르심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늘에 거하시고 인간은 육체이니 땅에 있다. 이 둘이 어떻게 만나서 함께 할 것인가? 여호와는 모세를 만날 때 산에서 만나셨고 부르실 때도 산으로 부르셨다. 산은 하늘과 땅의 중간지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거기는 시커먼 구름과 뇌성과 나팔 소리가 천지를 흔드는 곳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올라오지 못하게 했고 가까이 하면 여호와께서 벌하실 것이라고 엄히 명하시고 모세만 올라오도록 했다.
다. 백성을 만날 자신의 거처를 짓도록 지시하심
그러니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서 함께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한 곳을 정하시고 그곳의 자세한 설계도를 계시해 주셨다. 이에 모세는 그 지시하신 대로 성막을 지었던 것이다.
1) 성막의 구조와 그 기능들
이 설계도에 따라서 지어진 장막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번제단과 성소와 지성소로 된 교통의 장소였다.
가) 번제단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들어가는 입구는 번제단으로 구성되었다. 여기는 소나 양 같은 제물을 잡는 곳으로 피는 그릇에 담아 지성소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모두 불사르는 곳이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먼저 선악과를 먹고 육체가 된 자아(이하 죄인)를 불사르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피)만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또한 죄인은 이런 심판을 받은 후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예수께서 만민의 죄를 짊어지고 구속을 위해 죽임 당하실 것을 예시한 것이었고 그의 피로 구속을 받은 사람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었다.
나) 성소
번제단을 지나면 성소가 있다. 여기서는 제사장들이 매일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떡 상과 등대와 향단이 있다. 떡 상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덩이의 떡이 있는데 매일 그것을 드려서 하나님께서 배고프지 않게 했다. 등대에는 감람유를 채우고 심지의 불똥을 제거하여 끊임없이 하나님 면전을 밝게 비치도록 하며, 향단에는 특별하게 제조한 향을 살라서 늘 그 향이 성막에 충만케 했다. 이것이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었는데 예수께서는 육신 안에 계실 때 이 길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셨다.
이것은 구속 받은 인간이 그 삶의 빛으로 하나님의 거처를 밝게 하고, 그 혼(생각, 사상)으로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며, 그 영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협력해야 함을 예시한 것이다.
다) 지성소
지성소는 하나님이 친히 임재 하는 곳이다. 여기에는 계명이 새겨진 두 돌 판과 만나 항아리가 든 궤가 있고, 그 덮개는 정금인데 속죄소라고도 하는 시은소가 있다. 여호와는 거기서 제물의 피(생명)를 받으시고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정금 덮개는 하나님의 신성을 상징하고 피는 속죄를 위한 예수의 피를 예시한 것이었다.
2) 만날 장소를 정하시고 약속하심
여호와는 성막을 지시하시고 “내가 여기서 너와 만나겠다.”라고 약속하셨다. 만날 곳을 지정하신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더라도 만날 만한 장소가 있어야 하고 만날 약속이 되어야 한다. 아무데서나 각자의 마음과 생각대로 만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막이 세워진 후로부터는 성막 이외의 곳으로 여호와를 만나러 가는 자는 그 누구라도 저주를 받았던 것이다(삿18:30참).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다. 하늘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곳이므로 복수로(the heavens;하늘들) 표현되었다(창1:1참). 그러므로 하나님이 스스로 정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획기적인 축복인 것이다.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안 된다. 그분이 약속한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3) 예수는 말씀이 육체가 되신 인격의 성전이심
성막은 하나님과 인간의 교통을 위해 설치되었던 유일한 장소였지만 그것은 인격의 성전을 기대하는 모형이었고 실제는 아니어서 거기서 드리는 예배와 봉사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인격으로 성전과 제물의 실제가 되심으로 이 한계를 넘어서 온전한 성전이 되셨다. 원래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전에 거하시려는 것이 아니고 인격을 전으로 삼아 거하시려고 하셨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으로 그의 전도 살아 있어야 한다. 예수-성전은 인격 성전으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전이다(딤전3:15참).
가) 육체는 번제단에서 속죄를 위한 제물이 되셨음
죽임 당하는 것은 육체로는 끝나는 것이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그 지식의 육체(죄)가 되었다(창6:3참) 번제단의 제물들은 이 죄의 육체를 대신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육체가 끝나야 산 혼으로 회복되어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동산에 거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육체(우리들)를 완전하게 끝내기 위해서 제물로서 죽임을 당하셨다(요1:29, 고전15:3, 롬8:3, 히10:12,18, 벧전3:18참).
나) 혼은 성소에서 하나님의 필요를 위해 봉사하셨음
성소는 빛을 비추고 떡을 드리며 향을 피워 드리는 곳이다. 이는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는 일이다. 그의 만족은 빛이시며 생명이시고 향기이신 하나님을 나타내 드리는 것이었다.
(1) 생명의 빛을 발함
빛은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기 위해 정금 등대에서 감람유가 심지를 통해 탈 때 발하여 진다. 예수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그가 계신 곳에 하나님과 그가 행하신 일이 보였던 것이다.
(가) 정금
등대는 신성을 표현하기 위해 정금으로 만들었다. 정금은 금 이외 아무것도 섞이지 않아서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순전하시어 변치 않으신다. 그러므로 이 신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변치 못할 인격이 필요하다. 이것이 구속 안에 있는 인격으로서 인간에게서 변치 못할 것은 이것뿐이다.
(나) 기름
등대의 기름은 감람 열매를 틀에 짜서 얻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고뇌를 겪으시면서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하심으로 아버지께 그 기름을 드렸던 것이다. 겟세마네는 예수의 혼을 누르는 기름틀이었다고 할 수 있다(눅22:42참).
주님의 일생은 이렇게 어떠한 형편에서도 기름을 짜내서 아버지께 드리는 삶이었다. 신성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내 뜻을 제거하고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 심지
기름은 심지가 있어야 합당하게 타서 빛을 발하게 된다. 이 심지는 섬유질의 실로 만들었다. 실은 거친 식물의 껍질을 삶고 두들기고 씻어 내 깨끗하고 부드럽고 유용하게 만든 것으로 연단을 통해 유용해진 인성을 상징한다.
육체가 된 인성은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거역하는 데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을 받은 후에도 옛 습성들을 처리하기 위해 다시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 유용해진다는 것이다.
심지가 고와야 기름이 고르게 태워져서 빛이 밝고 아름답게 비친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심지에 타고 남은 불똥을 매일 정리해야 했던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들이라 해도 일을 하다 보면 심지처럼 불똥이 생긴다. 그러므로 이것을 늘 갈아 주고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의 빛을 발하시는데 온전하게 쓰인 심지이시다.
(2) 생명의 양식을 드림
(가) 떡 상
상은 조각목으로 짜서 금을 입혔다. 이는 인성과 신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떡이 놓일 위치가 연합된 한 인격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체가 되심으로 연합된 인격으로서 하나님 앞에 떡을 진설할 상인 것이다. 하나님께 드릴 양식은 아무 상에나 진설할 수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는 기초는 영원히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인격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나) 떡
조각목에 금을 입혀 만든 상 위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덩이의 떡이 항상 진설되어 있다. 이 떡은 제사장들이 매일 갈아 얹어 놓고 다음에는 자신들이 나누어 먹는다. 이는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고 다시 섬기는 자들이 받아먹는다는 것을 상징한 것이다.
떡 자체는 온전히 이겨지고 쪄지고 익혀진 인성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하나님이 잡수셔도 맛이 좋고 사람이 먹어도 맛이 좋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생명의 떡으로서 하나님에게도 만족이 되고 사람에게도 만족이 되는 영생의 양식이시다.(마16:16, 17:5참)
(3) 분향단에서 기도함
(가) 향단
향단도 떡 상과 같이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을 입혔다. 인성에 신성을 연합한 것으로서 성육신하신 인격이며 구속 받고 다시 난 인격을 의미하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기도는 번제단의 기도와 달라서 아무나 드릴 수가 없는 것이다. 반드시 말씀이 육체가 되신 예수님의 기초 위에 구속 받고 거듭나서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나) 향
분향단에서는 특수하게 제조한 향을 사른다. 이 향은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드리는 기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하려면 죽음과 고난이 따른다. 몰약과 육계와 창포와 계피로 구성된 이 향은 죽음과 고난의 향기를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는데 이 기도가 그의 전 생애의 기도였던 것이다. 이 기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최종적이며 최고의 봉사인 것이다.
(다) 번제단의 불로 향을 사름
향은 죽음(몰약)과 고난(창포)의 향기(육계와 계피)를 드리기 위하여 반드시 번제단에서 제물을 태운 불로 살라야 한다. 이는 십자가 없이는 이 최종적 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주님을 위한 모든 봉사의 기초는 십자가에 있다는 것이다.
*** 봉사의 원칙
제사장은 성소에서 등대와 떡 상과 향단을 돌본다. 이는 제사장들의 일상적 봉사다. 사람이 이 봉사를 하려면 번제단에서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드릴 피만 남기고 타락 이전의 위치로 구속 받아야 한다.
그리고 성소에 들어가서 산 혼으로 섬기려면 아담 안에서 스스로 선악을 아는 지식으로 길들여진 오랜 혼의 습성들은 처리해야 한다. 그 습성이란 선악과 안에서 자기 뜻대로 하던 것이다. 자기의 빛, 자기의 양식, 자기의 기도, 이런 습성으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군대에 가더라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고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랴! 그러므로 우리의 혼은 어떤 경우에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순종해야 한다.
주 예수께서는 일생을 아버지와 하나로 사셨기 때문에 한 번도 자기 뜻 때문에 고민하신 일이 없으신 분이다. 그러나 겟세마네에서는 그분도 무거운 압력에 눌리고 있었다. “내 마음이 심히 민망하오니 아버지여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라고 하셨다.
그러나 다시“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다. 이것은 자기의 혼의 뜻을 완전히 아버지께 이양하신다는 뜻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다. 나의 뜻을 버려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일이 잘 되느냐 안 되느냐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흔히 자기 뜻대로 하게 되고 일이 잘 된다는 명분 때문에 혼으로 했다는 것을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혼으로 일한다. 그러나 이 혼은 선악을 아는 지식으로 오랫동안 물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처리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성소의 봉사는 자기 생각이나 뜻대로 하면 안 된다. 반드시 명하신 법대로 해야 한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봉사의 원칙이요 생명이다.
다) 영으로 지성소에 들어가셨음
(1) 피를 가지고 들어감
지성소는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며 거기는 제단에서 가져온 피로써만 들어갈 수 있다. 피 없이는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피는 육신의 생명이고 영은 인격의 생명이다. 지성소에 거하시는 여호와는 피만 보신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별것이 되었다 하더라도 생명의 하나님은 피-생명-인격-영만 보시고 받으신다는 것이다. 구속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것만을 찾으신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백성을 대신하여 일 년에 한번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소 혹은 시은소에 뿌리면 하나님께서는 시은소 두 그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명할 모든 일을 이르셨던 것이다. 피를 뿌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유발하는 것이다.
지성소는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영을 드리는 곳이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여 내 영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운명하셨다고 하였다. 이것은 시은소에 피를 뿌리는 것과 같다.
육은 번제단에서 불살라지고 혼은 성소에서 연단 받고 영(피)은 지성소 속죄소에 뿌려진다. 주님은 모든 과정을 마치시고 마지막에 자신의 영을 아버지 손에 드렸던 것이다. 그 때 성소의 휘장이 열렸던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마지막에는 영만이라도 자기의 것으로 남아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셔야 죄를 사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피는 하나님의 은혜를 유발한다.
내가 끝날 때 주님이 일하신다. 주님의 일은 부활이요 생명인 영생을 주시는 것이다. 영생은 하나님의 삶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삶을 받아 살려면 내 영도 드려야 한다. 드려야 함에는 포기함이 포함된다(눅23:46참).
(2) 피를 보시고 죄를 사하심
여호와는 피를 보시고 이스라엘 집을 넘어가셨고, 백성의 대표자가 속죄소에 뿌린 피를 보시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하셨으며, 이제는 인류의 대표자이신 예수의 피를 보시고 인류의 죄를 사하신 것이다.
피는 몸 안에 있을 때는 생명이지만 몸 밖으로 나오면 생명이 이미 죽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제물은 번제단에서 이미 피를 흘리고 죽었다. 그러니까 지성소에 들어온 피는 죽은 자의 피다. 하나님은 이 피를 보시고 드리는 자가 이미 죽었음을 확인하신 것이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같이 된 자는 죽었다. 그러므로 그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는 것이다. 죽은 자에게는 죄를 묻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의 피를 의지하고 그 피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면 죄 사함을 얻고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엡1:7,골1:14참).
(3) 피를 받으시고 은혜를 베푸심
법궤의 뚜껑 밑, 법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두 돌 판이 들어 있다. 그 뚜껑을 열고 닫는 것은 피다. 법궤의 뚜껑에 피를 뿌리면 율법 상자는 덮이고 정금의 시은소가 된다. 하나님은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셨는데, 주님께서는 “아버지여 내 영(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하셨다. 이때 성소의 휘장이 열렸다. 은혜의 문이 열린 것이다.
(4) 육과 혼과 영을 온전히 드림(포기함)
‘내 원대로’ 하려는 것은 혼의 문제이고, ‘내 생명-내 영’을 붙잡으려는 것은 영의 문제이다. 흔히 영은 문제가 없는 줄 생각한다. 그러나 ‘내 영’은 ‘내 혼’이나 ‘내 육’과 한가지다. 어차피 내 것이다. 선악과를 먹고 이탈했을 때 혼과 육만 이탈한 것이 아니다. 영도 함께 이탈한 것이다. 영은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인격은 전인적이다.
‘내 영’이거나 ‘성령’을 받았거나 ‘그 영과 합한 영’이거나 다 ‘나’ 다. ‘나’와 ‘내 영’이 따로가 아니다. 그런데 영만은 신성한 것으로 보존하고 사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니니까 하나님께 내놓아야 한다. 만나는 하나님이 친히 주신 것이지만 자기 것으로 가지고 있으면 곧 부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육으로 일하는 사람이나 혼으로 일하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영으로 일 한다는 사람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육과 혼과 영을 온전하게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만 일하실 수 있도록 봉사하셨다. 그래서 그분이 곧 성전인 것이다. 성전의 기능은 번제단과 성소와 지성소다. 예수님 안에 성전의 기능이 완성되어 은혜와 실제가 충만했다(요1:14참).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성전이 새로워 진 것이다.
물질로 지어진 처음 성전은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이 되심(요1:14)’같이 인격의 성전이 되어 우리 가운데 성막이 되셨다. 성전이 새로워 진 것이다. 하나님의 거처(성전)가 되기 위해 창조되었던 인격은 완전히 회복되었고, 옛 성전은 예수 안에서 인격적 성전으로 새로워 졌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 계시고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거기서 너와 만나고…….’라고 약속하셨던 실제는 예수의 인격 안이다(고전1:30참).
라. 죽으심으로 옛 성전을 헐고, 부활하심으로 새 성전을 세우심
돌로 지었던 성전은 말씀이 육체가 되신 예수로 대체 되었다. 그런데 다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삼일 만에 내가 다시 일으키리라” 하셨다.(요2:19) 이것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는데 제자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이 말씀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예수는 분명히 육체가 되신 성전이었다(요1:14참). 그런데 이 성전(육체)을 헐면 삼일 만에 다시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죽임 당하시면 부활하여 또 다른 성전을 짓겠다는 것이었다.
돌로 지었던 성전은 말씀이 육체가 되신 성전으로 대체되었고 육체가 된 성전은 다시 죽으심으로 허물어지고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성전 즉 교회가 되었다. 예수님은 새로운 성전을 세우신 것이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라고 약속했던 ‘거기’가 성막이 왕국의 건설을 통하여 성전으로 확대되었던 것처럼, 예수의 인격 성전은 그의 부활 생명의 분배를 통해 교회 성전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는 시대에서 교회의 승리를 통해 새 예루살렘으로 최종 완성 될 것이다.
부활하신 몸은 교회가 되었다. 부활하시기 전에는 예수님 자신만이 성전이었다. 그런데 부활하신 후에는 그 영이 우리에게 분배되었으므로 우리가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집이 되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는 교회가 성전인 것이다. 새로운 성전이다.
에베소서 2장 21~22절에는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고 하였다. 성전이 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엄청나게 큰 성전으로 지어지고 있다. 기둥이 수천, 수만 개가 있고 서까래가 수십만, 수천만 개니까 온 우주가 다 성전이 될 때까지 우리는 성전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그분 한 분만 성전이고 더 이상의 성전이 없을 뻔했다. 그런데 부활하신 후에는 온 인류가 참여하여 하나의 큰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 한 분만으로 지어진 성전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성전이 되기를 기다리신다.
마. 하나님은 교회를 거처로 삼으셨음
하나님은 예수 안에 거하셨던 것과 같이 교회 안에 거하신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을 만나려면 교회로 와야 한다. 원리상으로는 하나님을 만나려면 바로 그분에게로 가야 하는데 우리가 갈 수 없으니까 성전을 세웠던 것이고, 그 성전이 온전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성전이 왔던 것이며, 또 현실적으로 예수님에게로 간다는 것은 제한적이니까 교회 성전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현실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라고 하신 곳이다. 장막에서 성전으로, 성전에서 예수로, 예수에서 교회로 바뀐 것이다.
장막도 돌로 지은 성전도 없어졌다. 그러나 예수-성전은 없어지지 않고 더 확대되었고 지금도 확대되고 있다. 이것은 영원한 인격의 성전이므로 인류가 다 포함될 때까지 확장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고 섬기려면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성전에서만 하나님을 만나고 봉사할 수 있었고 성전 이외의 곳에서 드리는 예배는 우상숭배로 정죄되었다. (왕상12;25~33참) 성전은 하나님이 지정하여 임재하신 현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엡1:23참) 하나님의 집이다(딤전3:15참). 그러므로 교회는 오늘 ‘내가 거기서 너와 만나고…….’ 의 실제다. 하나님은 자신의 집에서 우리들을 접견하신다.
1) 교회가 성전이 됨
교회 안에는 번제단과 성소와 지성소가 있다. 제물이 잡히고 불살라지는 번제단이 있고, ‘내 원대로 마옵시고…….’하는 혼으로 봉사할 성소가 있으며, 마지막 피-영을 드릴 지성소 안에 시은소가 있다.
가) 교회-번제단
교회는 번제단으로부터 시작된다. 전도를 받고 교회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번제)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예수 사건으로 인간의 정체성이 판명되었음을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구속 안에서 인간을 보시고 전도자들을 보내시어 만방에서 사람들을 부르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불리어 온 사람들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이미 십자가로 이루어진 구속 안에서 부름 받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모두 예수 안에서 번제단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나) 교회-성소
교회 안에는 성소도 있다. 성소 안의 봉사가 연합 체계로 섬기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의 삶은 형제와 연합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예수께서 “내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같이 내 뜻을 버리고 형제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는 곳이다. 교회는 실제적인 성소다.
다) 교회-지성소
예수님의 마지막을 누가는 “아버지여 내 영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운명하셨다고 했고(눅23:46) 요한은 “다 이루었다 하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라고 했다.(요19:30) 이것은 자기 영을 넘겨주고 포기하셨다는 것이다. 영을 포기하셨다는 것은 ‘마지막 나’를 포기하셨다는 것이다. 사람이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 영이다.
그래서 영만은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지성소에서는 피-영을 드려야 한다. 교회 안에서도 그렇다. 나를 포기하고 그의 나라-연합의 나라- 새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다. 교회는 실제적인 지성소다.
2) 하나님은 교회적(단체적) 봉사를 원하심
가) 신약성서는 교회를 위한 것임
하나님의 거처는 산당도 아니고 사원도 아니다. 기도원도 아니고 골방도 아니다. 교회다. 골방에서 기도하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람들이 있지마는 하나님의 거하시는 곳은 분명히 교회다. 그렇지 않다면 성전도, 성육신하신 예수도, 그의 집인 교회도 필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신약성서는 모두 개인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교회에 보낸 것이다. 개인으로서는 받는 데 한계가 있다.
나) 하나님의 목적은 단체로써 이루어짐
제사장들은 반열(조별)로 봉사했다.(눅1;8참) 그분의 목적에 협력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므로 단체적이어야 한다. 이 기도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단체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만이 이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다) 새로운 성전에서 봉사함
성전은 교회로 새롭게 되었다. 이제는 교회가 성전이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에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하였고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는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다. 성전은 과정을 거쳐 이제 교회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교회생활을 회피하고 예수님만 믿겠다고 하는 것은 기피자 생활을 하려는 것과 같다.
성전은 새로워졌다. 현재 땅위에 건축된 유일한 하나님의 성전은 교회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려면, 그를 위해 봉사하려면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 죄 사함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섬기려면,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이 나타나게 하려면 교회 생활을 해야 한다.
[ 기 도 ]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늘에 계시지 않고 땅에 와서 우리를 만나시려고 하신 은혜를 감사하고,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께 봉사할 수 있는 실제인 길을 열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말씀이 육체가 되심으로 우리의 성전이 되신 주님, 부활 생명으로 교회를 세워서 성전이 되신 주님, 이제 주님 안에서 우리가 날마다 번제단과 성소와 지성소를 경험하고 봉사하는 길을 열어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오직 이 길 안에서만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