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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7월 29일
제목: Ⅴ. 제사(봉사)를 새롭게 하심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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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Ⅴ. 제사(봉사)를 새롭게 하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라고 하셨던 성전은 교회가 되었다. 성전이 교회로 새로워 진 것이다. 제사와 제물이 새로워지면 성전도 새로워진다.
1.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제물을 드림
가. 먹는 것으로 드림
제사는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서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 생명의 절대적인 기본 조건은 먹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족하게 할까를 생각하던 원시인들은 음식을 드리기로 결정했던 것 같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과 아벨이 각기 자기의 소산으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렸다고 하였다(창4:3~4참). 이것이 하나님을 대면하려는 인간 종교의 시작이다. 여기서 발전한 것이 제사(봉사)다.
인간은 누구나 먹고 만족한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 안에서 하나님께도 음식을 제물로 드리게 된 것이다. 자기가 그러하니까 하나님도 그러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처럼 물질적인 음식을 먹고 사는 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사는 새롭게 되어야 했던 것이다.
나. 받으실 분의 필요를 채워야 함
만족이란 필요를 채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만족하게 하려면 그의 필요를 알아서 그 면을 채워 줘야 한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먼저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최우선이듯이 하나님의 필요를 채워 드리는 것이 진정한 제사다.
1) 제물보다 그것을 드리는 사람을 보심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쁘게 받으셨다고 했다. 이를 두고 동물을 좋아하시느냐 곡물을 좋아하시느냐에 대한 이견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물질적인 양식을 먹고 사시는 분이 아니니까 제물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제물은 단지 드리는 자를 대신할 뿐이다. 하나님은 드리는 자를 보고 그의 제물을 받으시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가인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아벨을 기뻐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제물보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필요한 분이다.
2) 교리보다 인격을 보심
기독교사는 사람을 새롭게 하는 것보다 올바른 교리를 세우고 믿게 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정성과 열심을 쏟아왔다. 심지어는 교리를 세우기 위해서 사람의 생명까지도 아무런 가책이 없이 처형하고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는 전통을 남겨 준 것이다(요16:2참). 하나님을 위해서 사람을 죽인 것은 참으로 악한 것이다. 제물에만 관심을 가지면 인간은 악해 지는 것이다.
교리가 중요한가, 인간의 목숨이 중요한가? 무엇이 인간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그는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죽임 당해야 할 인간을 동물로 대신하게 하셨던 것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제물에 중점을 두고 해석하면 제물만 잘 드리면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리에는 충성을 다하고 인간은 버리는 결과를 범한 것이다. 불효한 자식이 제사만은 정성을 다해서 드린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는 그 무엇보다도 사람이 더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 두 사람이 왔는데 한 사람은 교리는 틀림없지만 사람답지 않고, 다른 한 사람은 교리는 틀릴지 몰라도 사람답다면 하나님은 누구를 택하시겠는가? 교리를 보고 택하시겠는가, 사람을 보고 택하시겠는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상당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리가 틀림없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어찌 되었든 제물만 옳으면 된다는 생각과 같은 것이다.
3) 주의 뜻 행하는 자를 보심
시편 40편 6절에는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였다.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면 무엇을 기뻐하시겠는가? 이어 8절에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라고 하였다.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고 알았던 것이다. 제사와 예물만 기뻐하시고 드린 사람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 뜻을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도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알아야 참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다. 하나님은 자신과의 교통을 위하여 한 인격을 원하심
1) 교통을 위하여 사람을 지으심
하나님은 자신과 교통하여 자신을 표현할 인격이 필요한 분이다.
만물은 아름답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으나 교통은 되지 않았다. 마치 우리가 소백산에 와서 “보기에 참 좋다.”고 하지만 소백산과 대화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이 많지만 그것들과는 교통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심히 좋다.” 하시고 창조를 마치신 것이다. 사람을 지으신 것은 창조의 완성이다. 더 지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하여 그의 마음을 알고 그를 표현할 수 있는 존재다.
2) 선악과로 인하여 교통이 단절됨(죽음)
그런데 이 교통이 막힌 것이다. 사람은 산 혼으로 지어졌다. 산 혼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도구일 뿐 생명은 아니다. 산 혼은 생명나무 열매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교통이 가능한데 사단이 이것을 알고 선악과로 바꿔 버렸기 때문에 교통의 길이 막힌 것이다.
발전소가 있고 집에는 전등이 있는데 전선이 바뀐 것과 같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라며 찾으시니까 아담은 “두려워 숨었습니다.”라고 했다. 구리 전선이 강철선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송전이 되면 즉시 화재가 발생하므로 두려운 것이다.
3) 예수는 완전한 제사로써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심
예수님은 이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시려고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 히브리서 10장 12절에는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라고 하였고, 14절에는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라고 하였으며, 16절에는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라고 약속하셨다.
새 언약은 한 제물로 제사가 온전케 된 후에 세워졌다. 이 언약은 인격에 대한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자신을 만족하게 할 한 인격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인격으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심으로써 제사를 완전하고 새롭게 하셨다.
4) 하나님을 섬기기(제사) 위하여 성전으로 들어 감
가) 번제단으로 들어감
(1)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하여 피를 취함
성전의 입구에는 피를 취하는 번제단이 있다.
피는 육체의 생명이며 인격의 상징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것들을 필요로 하지만 하나님은 인격만을 필요로 하신다. 인격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원히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 인격을 대신하여 피를 취하신 것이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번제단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려면 번제단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를 의지하고 그 피 안에서 교회의 건축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2) 피만 취하고 다른 것은 다 불사름
선악을 아는 지식과 그것을 통하여 얻었다는 모든 것은 소멸해야 할 것들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주신 것만 취하신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하신 그것만을 필요로 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갈라내려고 번제단을 설치하신 것이다.
나) 섬기기 위하여 성소로 들어감
하나님을 섬기려면 성소로 들어가야 한다.
번제단에서 심판을 받고 구속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성소로 들어간다. 구속의 목표는 사단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이다. 모세는 바로에게 광야로 나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구속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교회의 건축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1) 성소의 떡을 먹고 그 양식으로 봉사함
제물은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섬기는 자가 다시 받아서 먹는 것이다. 섬기는 자는 섬기는 것으로 산다(고전9:13참).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을 먹고 그 인격으로 하나님을 섬기셨고 그 인격을 먹고 사셨다. 말씀이 육체가 되신 인격으로 섬기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구속 받고 광야로 나왔을 때 오로지 하나님이 주신 양식만 먹고 하나님을 섬겼다. 애굽에 노예 되었던 것은 애굽의 양식 때문이었는데 그 양식을 먹고 바로를 위해 일해야 했다. 이와 같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하나님이 주신 양식을 먹고 하나님을 섬기게 했던 것이다.
같은 원리로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양식만 먹고 살았어야 했다. 하나님과 같이 살려면 하나님이 주신 양식을 먹어야 한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신 양식을 먹었으므로 동산에서 쫓겨났다. 사람은 먹는 양식으로 사는 것이다. 교회의 봉사는 그리스도-교회의 양식을 먹고 그 양식으로 한다.
(2) 성소의 빛으로 분별하고 봉사함
성소에는 신성의 빛이 인성을 통해 비친다. 성소의 빛은 자연의 빛도 아니고 세상의 빛도 아니다. 성육신 한 인격의 빛이다. 그 빛으로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분별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을 위한 봉사는 이 빛 안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다른 빛으로 일하기 때문에 교회는 헛된 일에 열중하는 것이다. 교회의 봉사는 이 빛 안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3) 죽음과 고난의 향기로 하나님을 위해 기도함
성소의 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다. 분향단의 기도는 특별하게 제조된 향(출30:23~24 몰약, 육계, 창포, 계피:죽음과 고난의 향기)을 피우는 것으로서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위치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돕기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에서까지도 자기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시고 아버지 뜻이 이루어지도록 분향단의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구속 받은 사람으로서 봉사하는 사람은 자기 일이 없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주기도문 참조).
다)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감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가 있다. 제단에서 흘린 제물의 피는 구속 받은 그 인격의 표시다. 십자가에서 남은 것은 인격뿐이었다. 예수께서는 그 인격으로 하나님을 대면하셨다.
(1)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피만 드려야 함
인격(피)은 번제단에서 피 아닌 다른 것은 불사름으로 육체와 갈라져야 되고, 성소에서는 하나님을 섬김으로 선악과로 오염된 혼과 갈라져서, 온전한 피만 남은 사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 대제사장의 일을 하게 된다. 성장한 인격은 피만 가지고 가는 인격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인하여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엡1:7참). 그러므로 우리는 그 피를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우리가 가지고 갈 것은 피밖에 없다.
(2) 하나님은 피를 받으시고 은혜를 베푸심
(가) 백성의 죄를 사하심
피는 생명이 죽었음을 표시한다. 그러므로 이 피를 법궤 위 속죄소에 뿌리면 하나님은 백성의 죄를 용서하신다. 하나님은 죽은 자에게 죄를 묻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번제단) 죽으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의 피를 의지하고 그 피(구속)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나) 축복의 말씀을 주심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생명이다. 그런데 죄로 인하여 끊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죄가 해결되었으므로 그의 말씀이 주어진다. 막히지 않으면 생명의 축복이 흐른다.
*** 옛 성전은 예수로 인하여 새로워 졌음
번제단은 십자가의 구속으로, 성소의 등불은 교회의 빛으로, 떡은 교회의 양식으로, 향단은 주님을 위한 기도로 새로워 졌고, 지성소의 피는 주님께 구속 받은 인격으로 새로워 졌다. 모든 것이 주님으로 인하여 새로워 졌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렇게 새로워 진 성전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
[ 기 도 ]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성전이 되시고, 피로 우리를 구속하여 성소에서 봉사하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뵙도록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구속받은 사람으로 정해진 양식을 먹고 정해진 빛을 받아서 날로 성장하여 지성소 안에서 하나님과 밀접하게 교통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