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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7월 30일
제목: Ⅵ. 인류를 새롭게 하심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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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Ⅵ. 인류를 새롭게 하심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새롭게 하셨고, 율법을 새롭게 하셨으며, 성전을 새롭게 하셨고, 제사(봉사)를 새롭게 하셨다. 단순히 종교적으로 보면 율법도, 성전도, 제사도 유대인의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삶의 문제다. 신학은 곧 인간학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과의 문제는 곧 인간과의 문제인 것이다. 율법과 제사는 하나님과의 문제인 동시에 이웃과의 문제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는 이웃과 나 사이의 관계와 같다.
1. 하나님은 개인이 아닌 인류를 창조하셨음
가.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는 이름임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아담’이라는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하였다. 아담은 개인이 아니라 인류다.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 아담인 것이다. 아담은 곧 사람-인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개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류의 하나님이시다.
나. 아담의 타락은 곧 인류의 타락임
로마서 3장 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 고 하였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아담이다. 아담, 즉 인류가 하나님의 목적에서 이탈했다는 것이다. 죄란 하나님의 목적에서 이탈한 것이며 그 목적이란 하나님의 생명(말씀)을 받아서 그와 교통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만유에게 나타내서 분배하는 것이다. 즉 만유를 대하여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영광, 곧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다.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이 목적에서 이탈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2. 하나님께는 인류가 필요함
창세기 1장 26절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하였다. 이것은 개인이 아닌 인류를 통해서 이루어질 일이며 사람들의 필요를 위하기 전에 하나님의 필요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만유에게 분배하시기 위해 인류가 필요한 것이다. 생명의 말씀을 받아 교통하고 그 뜻을 알아서 표현하고 분배할 수 있는 피조물은 사람뿐이다.
그러므로 과학적인 이의는 의미가 없다. 또한 인간인 우리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축복이 없다. 물론 성경은 사람이 기록한 것이니까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누가 어떤 입장에서 기록했든지 하나님께나 우리에게나 복음인 것이다.
가. 사단은 인류를 하나님의 목적에서 이탈하여 거역케 하였음
사단은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하는 자다. 그래서 인류를 하나님의 목적에서 이탈시켜 거역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교통의 대상인 사람,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어 놓으신 사람을 이탈하게 만든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에서 이탈한 것을 유대인의 말로 죄라고 한다.
잘 사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인생의 목적이 있다는 사람은 없다. 한참 동안은 목적이 많아서 분주했는데 인생을 살고 보면 무엇을 위해 살았다고 할 것이 없는 것이다. 맹목적으로 바쁘고 힘들게 산 것이다.
인생은 원래 자기 목적이 없고 지으신 이에게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 목적에서 이탈하면 아무 목적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인생을 잘 살아 보려고 스스로 목적을 세우면 그것 자체부터 하나님을 거역하게 되고 남과 분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목적을 만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그 목적에 순종해야 한다.
나. 하나님은 한 족속을 불러 제사장 나라로 세웠음
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심
범죄한 인류가 모두 바벨을 건설할 때 하나님은 그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제사장 나라를 세우시려고 이스라엘을 택하셨다. 범죄한 인류는 불법과 거역 때문에 하나님과 만날 수 없고.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들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둘 사이를 중재할 제사장이 필요한 것이다.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하여 번제단에서 잡은 제물의 피를 가지고 속죄소에 들어가서 백성의 죄를 사함 받고 시은소의 은혜를 가지고 다시 백성 앞에 나와 그것을 분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범죄한 인간과 하나님이 교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스라엘은 이 일을 위하여 택함 받고 인도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되는 것은 특별한 은총이었으며 그 신분은 우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2) 이스라엘이 이 직무를 유기함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아름다운 직무를 유기하고 오로지 자기들의 영광만을 위함으로 독선에 빠져 이방인과 원수가 되고 만 것이다. 인류를 위하여 중보자로 섬기라고 주신 특권을 남용하고 오용하여 오히려 하나님을 욕 되게 하였다. 율법을 가지고 저들을 멸시하고 심지어 저주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대표적으로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분열된 것이다.
이 분열과 원수 됨은 유대인의 율법으로도, 이방인의 지혜로도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유대인은 율법을 자랑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자랑한다. 그러나 지혜로도, 율법으로도 이 분열과 원수 됨을 하나 되게 할 수는 없었다.
율법주의자들은 “모든 인류가 다 같은 율법을 지키면 하나가 될 것이다. 이방인들도 우리와 같이 율법을 지키면 그들을 인정하겠다.”라고 할 것이고(기독교의 생각도 그러함), 이방인들은 지혜가 있으면 하나 될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율법 또는 교리가 없어서 분열된 것도 아니고 지혜가 부족해서 분열된 것도 아니다. 선악과를 먹고 다 하나님같이 되었기 때문에 분열된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사람과 분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버지를 거역하고 형제가 연합할 수는 없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인류를 구속하여 정해진 목적 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아들을 주셨음
분열의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유대인의 율법과 이방인의 지혜로 나타나지만 그 깊은 것은 선악과를 먹고 각자 하나님같이 된 것이다. 가짜 하나님이 된 사람들끼리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한 분뿐이어야 하는데 각자가 하나님같이 되었으니 분열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원수 된 것을 자기 육체로 폐하시고 화목하게 하시려고 그것들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고 하였다(엡2:15,16참). 십자가는 선악과를 먹은 인간을 끝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의 구속 안에는 원인 자체가 소멸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정하신 목적 안으로 인류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아들 예수를 주셨다. 믿는 자는 천당으로 보내고 믿지 않는 자들은 지옥으로 보내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목적은 창세기 1장 26~27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그로 하여금 ……을 다스리게 하자.” 하신 말씀으로 분명하게 계시되었다. 하나님의 성품을 자신과 하나 된 인격을 통해 만유에게 분배하자는 것이다.
나. 인간이 이탈하여 하나님을 대항함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그를 대신해야 할 아담은 스스로 하나님같이 되려고 사단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다. 그 결과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같이 되어 하나님을 대항하고, 자기들 스스로도 서로 대립하고 분열된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모두 거인이 되려 하고 단체적으로는 큰 성 바벨론을 건축하고 있는 것이다.
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려고 아들을 주심
1) 예수는 인류 구속을 위해 합당한 제물임
이탈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한 사람이 필요하다. 범죄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므로 해결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다(롬5:19참).
아담이 인류의 대표자로서 범죄하였으면 이 범죄를 담당하고 처리할 사람도 인류의 대표자여야 한다. 누가 대표자가 될 수 있는가? 속죄를 위해 드리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다. 이와 같이 인류를 구속할 사람도 흠이 없어야 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다.
예수는 하나님 앞에서 생명으로 순종하는 아들로서 흠이 없으므로 하나님과 하나인 사람이다(요10:30참). 한편 인간에게는 아담이 되고 싶었던 바로 그것, 즉 하나님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모두 만족을 줄 수 있는 흠 없는 제물이었다는 것이다.
2) 인류의 죄를 담당하심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는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목적에서 이탈하여 하나님같이 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이 죄를 담당하고 죽으신 것이다.
죄에 대하여 즉,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같이 된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살게 하려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것이다. ‘의’는 하나님의 목적에 합한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게 하시려고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것이다.
가) 죽임 당하심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진리의 말씀을 하시고 좋은 일들을 하셨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결정하고, 로마 총독에게는 반역죄로 고발하여 십자가에 처형했던 것이다. 그는 어이없게도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는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마치 가인과 아벨이 각자 제물을 드렸으나 가인이 자신의 제물이 받아들여 지지 못한 것을 알고 아벨을 죽인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비극적인 종교사의 전형인 것이다. 합당하지 못한 경배를 드린 사람들은 어느 때나 합당하게 경배한 자들을 핍박하는 것이다.
나) 인류를 구속하심
그런데 여기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있다. 하나님은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셋을 주어 대를 이어가게 하셨고, 네피림이 땅을 멸망으로 이끌 때 노아와 그 식구들을 구원하셨으며, 바벨의 거역에서 아브람을 불러내 열국의 아비를 삼았고, 죽은 태에서 이삭을 낳게 함으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만드셨으며, 애굽에 종 되었던 야곱 족속을 구원하여 성전을 세우고 왕국을 건설케 하신 것처럼 예수의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속하여 교회를 세우고 영원한 왕국을 준비하신 것이다.
아담은 선악을 아는 지식으로 자기 운명을 거부하고 하나님같이 되어 자기 세계를 만들고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고 있다. 이런 인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르치고 회유하고 인도했으나 이미 하나님같이 된 인간은 돌이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구속하신 것이다.
아담은 지식을 받은 후 개인적으로는 거인이 되었고 단체적으로는 거대한 세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원래 바라던 것은 참으로 하나님같이 되는 것이었지 거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자기와 자기가 만들어 놓은 세계를 보고도 만족을 하지 못하고 끝없이 또 다른 세계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아담이 바라던 바로 그 하나님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성품에 흠이 없었고 인간이지만 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이 아담이 바라던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인류의 깊은 소원은 다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들은 인류의 소원을 품고 그를 따랐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십자가에서 무도한 사람들에 의해 어느 누구와도 다름없이 한 인생으로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인간이지 그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만천하에 증거된 것이다. 선악을 알면 하나님같이 된 줄 알고 하나님 위치에서 판단하던 모든 인간에게 백일하에 내려진 심판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 진실을 보고 “진실로, 진실로 그렇습니다.” 하고 그를 하나님 아들로 믿으라는 것이다. 자기 위치를 알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러면 의롭다 함을 얻고 죄 사함을 받으며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의이고 구속이다.
사도들은 이 사실을 구속사적인 입장에서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롬3:25 “그의 피로 인하여 ~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히9:28.10:12 “~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이와 같이 그는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이다.
라. 예수는 구속으로 인류를 하나 되게 하고 부활로 새 인류(한 새사람-교회)를 창조하셨음
1) 예수는 구속으로 분열을 끝내심
에베소서 2장 14~16절에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분열은 주로 율법 때문이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구속 안에는 율법의 차별이 없고 모든 사람이 원위치에 있으므로 분열이 없다.
여기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차별이 없다. 십자가는 분열된 모든 것을 원인 무효화 하고 인류를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우리를 부르셨다. 인류를 새롭게 하신 것이다.
2) 부활로 새 인류를 창조하셨음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참 사람, 참 아들로 인정하심으로 그를 다시 살게 하시고 그 안에서 새 인류를 창조하셨다. 죽으심을 통해 옛 인류를 처리하시고 다시 사심을 통해 새 인류를 창조하셨다.
새 인류는 그리스도의 확장인 그의 몸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옛 사람이 없는 것이다. 옛 사람의 잔재는 있어도, 옛 사람은 없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다. 예수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한 새사람은 새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분열하는 옛 사람이고 새사람은 연합하는 사람이다.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하나는 바벨로 가는 사람이고 하나는 새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람이다.
새사람인 교회가 창조되었고 또 자라고 있다. 콩을 심어 놓았으면 콩밭인 것이다. 잡초가 있어도 농부가 콩을 심었으니 콩밭인 것이다. 잡초는 제거하면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얼마나 권세 있는 선언인가! 새것이 되었다. 장차 새것이 될 것이 아니라 이미 새것이 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 분위기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었음
해방이 되었어도 나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나라 전체가 바뀐 것이었다. 해방이 되었다고 갑자기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통치권이 바뀌고 권리가 달라지고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던 것이다. 이것이 나 개인이 바뀐 것보다 중요한 것이다.
교회 안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나” 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나는 이런데’, ‘나는 저런데’ 하는 것이다. 그것을 끝까지 잡고 있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가 아니고 ‘우리’다. 하나님이 세상(우리)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 우리는 한 몸이다. 그가 만드신 새로운 피조물이다.
[ 기 도 ]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원위치로 회복하시려고 아들을 보내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주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새로 지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교회로 지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교회 인간이 되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교회가 땅 위에서 전파되고 또 전파되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기를 원하고 새 예루살렘이 완성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