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12년 7월 31일
제목: Ⅶ. 만물을 새롭게 하심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
성경 본문
Ⅶ. 만물을 새롭게 하심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21:5).” 하셨다.
1. 새사람은 만물의 이름을 새롭게 해야 함
예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셨다. ‘만물’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하지만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늘에서는 천사고 땅위에서는 물질이며 인간세계에서는 이웃과의 관계다. 이제 우리는 예수 안에서 그가 새롭게 한신대로 만물의 이름을 새로 지어야 한다.
하나님은 지으신 만물을 놓고 아담에게 이름을 지으라고 하셨다.(창2:19참) 인간은 만물에게 이름을 지을 자로 지어진 것이다. 이름은 성질과 용도를 표시한다. 만물의 성질과 용도는 사람이 정한다. 꽃이 되려면 꽃이라고 이름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만물은 사람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인류가 달라졌으니 이름도 달라지는 것이다.
만물은 하나님이 지으셨지만 그 이름은 사람에게 지으라 하셨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우리 집에 성막의 모형이 있는데 손자 아이가 오면 그것을 장난감으로 여긴다. 손자 아이에게서 그 이름은 ‘장난감’으로 바뀐 것이다. 만물은 사용하는 자에 따라서 이름이 바뀐다는 것이다.
만물은 아담이 이름 한 대로 이름이 되었다. 그러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는 만물은 그리스도가 이름 한 대로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새사람 안에서 만물은 새 이름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은 중요하다. 우리에게 만물의 이름을 지으라고 맡겼으니 하나님의 뜻에도 맞게 지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지어 놓으시고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으니 우리도 보기에 좋아야 합당한 이름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도 좋게 보이면 합당한 이름을 짓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을 지을 것이다. 이것이 현실적인 것은 이 문제에서 인생의 행, 불행이 결정되기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나쁘게 여겨지면 불행이고 좋게 여겨지면 행복인 것이다. 나쁜 이름을 지어 버리면 하나님의 일은 헛일이 되고 하나님은 모독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잘 지어 놓으셨고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아주 나쁘다’는 이름을 지어 버리면 지으신 이는 모독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심히 좋다’고 하신 것을 ‘왜 이렇게 밖에 못 만들었는가?’로 바꾸어 버리면 축복은 저주로, 감사는 불만으로 바뀌게 된다. 하나님은 불행이나 저주를 창조하지 않으셨다.
좋은 기계라도 그 기계를 다룰 기술이 없는 사람에게 맡기면 고장을 내고 마는 것이다. 기계는 기술자에 의해서 좋은 기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기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잘못하면 기계만 욕을 먹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만물이 탄식한다는 의미다.(롬8:22참)
그러므로 이제 새사람은 만물의 이름을 합당하게 지어 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셨다. ‘만물’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하지만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늘에서는 천사고 땅위에서는 물질이며 인간세계에서는 이웃과의 관계다. 이제 우리는 예수 안에서 그가 새롭게 한신대로 만물의 이름을 새로 지어야 한다.
가. 천사에 대하여
사람들은 천사를 부러워한다. 천사를 능력 있고 아름답고 깨끗한 존재로 생각하고 자기가 그렇게 되고 싶은 표준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은연중에 천사를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 성경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일했다. 심판할 때, 축복을 할 때, 하나님을 대신하므로 천사와 하나님의 구별이 잘 안 될 정도로 일했다. 욥기 1장 6절에는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서 1장 5~7절에는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하심과 같이 천사의 이름을 정확하게 지어 주어야 한다. “너는 하나님의 부리는 영이다.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보내심을 입은 자다”라고 이름을 지어야 한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기 전에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하셨다. 누가 참 하나님의 아들인가? 천사인가, 사람인가? 이 문제다. 마귀는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라.”라며 시험하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하심으로써 당신이 사람임을 분명히 하셨는데 마귀는 떠나고 천사들이 수종했던 것이다. 인간의 위치는 천사의 수종을 받아야 할 위치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인간의 위치로 확실하게 돌아와서 천사의 이름을 합당하게 지어 주어야 한다. 그 때 우주 질서가 올바르게 될 것이다.
나. 물질에 대하여
인간과 물질과의 관계는 생존과 축복에 관계 된다. 그러므로 물질의 이름을 잘 지어야 생존과 축복이 무난하게 된다. 물질을 대표한 것은 돈이다.
로마서 8:18~21장에는 만물이 탄식하여 이르기를 하나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하였다. 저들도 허무한 데 굴복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데 쓰이기를 원하는데 사람이 이름을 잘못 짓기 때문에 엉뚱한 데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축복을 받으려면 돈의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 이름을 잘못 지어서 돈이 화가 나면 사람을 잡는다. 그러므로 물질에게 이름을 제대로 지어 줘야 한다.
귀한 이름을 지어 줘야 물질이 귀하게 쓰인다. 합당한 이름을 지어 줘야 내 모든 소유가 합당하게 사용된다. 이름을 잘못 지어 줘서 잘못 사용되면 오히려 욕만 얻어먹게 된다. 내 돈을 쓰고 내가 욕을 먹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귀한 이름을 붙여 잘 사용하면 이보다 빛이 나는 것도 없다. 마귀가 떠나고 천사들이 수종하는 것이 백지 한 장 차이듯이 돈이 저주가 되다가 축복이 되는 것도 백지 한 장 차이다.
다. 이웃에 대하여
짐승들은 처음 만나면 본능적으로 으르렁거리면서 대결로 관계를 시작하고 힘으로 관계를 설정한다. 인간도 그런 경우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이웃에게는 어떻게 이름을 지어 줄 것인가?
아담 안에서는 그 지식 안에서 상대를 대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짐승들이 힘으로 대하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거기에는 천차만별의 차별이 있고 그 차별 안에서 관계를 설정한다. 결국 대결 구도 안에서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 있는 사람은 차별이 없기 때문에 대결이 없고, 부활 안에 있으므로 한 생명으로 만나게 된다. 여기서 온전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속 안에서 사람을 보면 평등하고 부활 안에서 사람을 보면 소망이 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가장 좋은 이름을 지어 주고 온전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을 많이 경험했다. 나에게 아주 나쁜 마음을 갖고 왔어도 내가 그를 좋은 마음으로 대하면 잠시 후에는 얼굴이 밝아지고 편안해 하는 것이다. 들어 올 때는 대결자의 얼굴이었으나 나갈 때는 이웃이 된다.
우리가 이름을 짓기에 따라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새사람이 이름을 지으면 만물이 새로워진다.
2. 예수는 만물을 새롭게 하신 새 창조의 주가 되셨음
예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신 분이다. 사람을 새롭게 하심으로써 만물을 새롭게 하셨다. 사람이 새로워지니까 모든 것이 새로워 진 것이다. 요한계시록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기록이다. 거기는 모든 것이 새롭다.
가. 새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이미 그 영광이 사라졌다. 그것은 영원한 성(사회)이 아니므로 다시 회복할 수도 없거니와 회복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하는 영원한 사회는 땅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이다.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이다. 이것은 동산의 완성이고 참 이스라엘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친히 새로 만드신 것이다.
나.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와 같음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는 백성은 사랑을 입은 신부와 같이 아름답다. 우리 주 예수님은 말씀이 육체가 되셨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므로 은혜와 진실이 충만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교회가 그 장막이 되어 아름다운 신부가 된 것이다. 교회는 땅에 있으나 그 본성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숙하면 하나님의 보좌(통치)를 가져온다.
다. 하나님의 보좌는 만물을 새롭게 함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므로 만물이 새로워진다. 하나님의 통치는 전과 같지 않다.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은 죽음을 가져왔고, 율법은 공포를 가져왔으며, 종교는 번민과 갈등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고 다시 사신 생명으로 교회가 이루어졌다. 교회 안에는 지식이나 율법이나 종교 같은 것들 대신에 새 생명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사람이 새로워 졌으니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새사람으로 만물을 보니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당연하고 합당하다. “보시기에 좋았다.” 하신 대로 아멘이다. 디모데전서 4장 4절에는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하였다. 지음 받은 자리에서 보면 모든 것이 감사가 된다. 하나님의 보좌(하나님과 어린양의 통치)는 만물을 새롭게 한다.
3. 만물의 이름을 새로 짓자
우리는 만물의 이름을 새롭게 지어야 한다. 다 알지 못해도 ‘이것은 나를 복 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구나.’라고 믿고 이름을 지어야 한다. 나도 새 이름을 받은 사람이니까 만물에도 새 이름을 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로서 만물을 새롭게 하셨고 피조물로서도 만물을 새롭게 하셨다. 그분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새롭게 하신 것이 아니다. 모를지라도 그분은 아버지 안에서, 창조자 안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셨다. 십자가를 지실 때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럴지라도 아버지 앞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복종하셨다. 이것이 인류를 새롭게 하고 우주를 새롭게 하고 우리 모두를 새롭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안에서 그분을 믿고 만물의 이름을 새로 지어야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 하였다.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았으므로 새롭게 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제 만물의 이름을 새롭게 짓자. 옆에 있는 사람의 이름도 새롭게 짓자.
교회 안에서는 서로가 형제라고 이름을 지었다. 새 이름을 준 것이다. 지금은 우리끼리 새 이름을 주었지만 이것이 확대되어 다른 사람에게도 ‘형제여!’라고 이름 지을 수 있으면 얼마나 새로운 관계가 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이름을 새롭게 지어 줘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왜 나와 친구가 안 되느냐?”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사람의 이름을 친구라고 지어 주면 된다.
우리 동네는 열 가구 정도가 사는데 가끔 오는 젊은이 둘 외에는 할머니들뿐이다. 처음 이 동네로 이사했을 때 분위기가 냉랭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친해졌다. 그분들에게 내가 이름을 새로 지어 주었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사람들에게 새 이름을 지어 주자. 예수 안에서 새 이름을 받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새 이름을 지어 줘야 한다. 이름 짓기에 달렸으니까 새 이름을 주면 다 좋아진다. 만물의 이름을 새롭게 하신 주님은 극도의 부정을 극도의 긍정으로 바꿔 놓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옛 이름을 새 이름으로,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자. 지금까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사람이 있다면 당장 이름을 새로 짓자. 여기서 그 사람의 이름을 새로 지어 주자. ‘형제’라고 짓든지 ‘자매’라고 짓든지 ‘친구’라고 짓든지 새로 이름을 지어서 그 이름으로 부르자. 그러면 그 사람과 새로운 관계가 될 것이다.
[ 기 도 ]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구속하여 새 이름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이름을 바꿔 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제 만물의 이름을 새롭게 짓도록 축복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웃에게 새 이름을 주고 내가 소유한 모든 소유에게 새 이름을 지어 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