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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8월 26일
제목: Ⅸ. 영광의 보좌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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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Ⅸ. 영광의 보좌
1. 하나님과 어린양의 통치
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흐름
요한은 이 나라를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흐른다고 묘사하였다. 이 강은 에덴동산에 있던 그 강이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라고 했다. 그런데 이 강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고 그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에덴은 지역이 아니라 하나님과 어린양의 통치인 것이다.
에스겔서 47장에는 이 물이 성전 문지방 밑에서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린다고 하였다. 이 물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통치는 생명의 분배다. 하나님의 생명이 어린양을 통해 흘러나와 분배되는 것이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통치로부터 흘러 생명나무가 자라는 세계, 이것이 하나님의 왕국이다. 세상은 사막과 같다. 흐르는 물이 없는 것이다. 서로 하나님같이 되려 하는데 어디서 생명의 물이 흐르겠는가.
그러나 어린양 예수가 통치하는 왕국에는 생명의 물이 흐른다.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만유에게 분배하시려고 사람을 지으시고 아들을 보내서 구속하셨다.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이 얼마나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기다리던 세계인가!
나.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케 함
요한계시록 22장 2절에는 그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하였다.
만국은 만민이고 만민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로 병들어 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같이 되려고 길이 없는 곳에서 서로 앞만 다투고 있는 것이다. 빨리는 달리지만 열매는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생명나무의 무성한 잎사귀가 약인 것이다. 교회의 풍성은 방향도 모르고 날뛰고 있는 세상을 치료하는 약이 될 것이다.
다. 저주가 없음
서로 앞만 다투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저주다. 저주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축복이 복으로 받아지지 않으면 저주인 것이다.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져서 그분을 대신하도록 최고의 축복으로 지음 받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지 못해서 저주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새사람으로 구속함을 받아 어린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선 십사만 사천 인에게는 그 저주가 없어진 것이다. 위치가 회복되어 본래의 사명에 복귀하게 되었다. 영원한 통치자와 함께 왕국을 세우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시는 저주가 없는 것이다.(계22:3참)
라.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봄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계22:3~4).”라고 하였다. 종은 얼굴을 들고 주인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그 자리는 언제 어느 때나 살벌하다. 이것이 전에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종들이 주인을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본다는 것이다. 그 살벌 했던 분위기가 섬기며 얼굴을 보는 분위기로 바뀐 것이다.
그분을 섬기는 자는 그분을 본다. 미용사들은 사람의 얼굴을 다듬기 때문에 그 사람의 얼굴을 본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그분의 얼굴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다. 그분의 얼굴을 대신하고 심지어는 그분의 얼굴이 된다. 그러므로 그분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지고의 축복인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모두 그분을 대신하고 그분을 나타내는 일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노사 간의 문제와 다르다. 그를 섬기는 그 자체가 그분과 하나로 드러나는 일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세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출33:23참).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얼굴을 친히 보는 것이다.
마. 그의 이름이 종들의 이마에 있음
그의 이름이 종들의 이마에 있다고 하였다(계22:4참). 전에는 종의 이마에 주인의 화인이 찍혀 있었다. 종은 그 표시를 내놓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종의 화인 대신에 하나님의 이름이 박혀 있다는 것이다. 보내신 자와 보내심을 받은 자가 하나이듯이 섬기는 자와 섬김을 받는 자가 하나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섬기는 자와 섬김을 받는 자가 다르다. 주인과 종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섬기는 자와 섬김을 받는 자가 하나다. 주님을 섬기면서 우리는 주님을 누리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주님만 섬긴다. 오직 주밖에 없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산다. 그런데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주님을 누리는 것이다.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섬기는 자에게 그분의 얼굴이 있고 그분의 이름이 있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다. 그래서 그 이름이 그 이마에 있어서 모세의 얼굴이 해같이 빛났던 것이다.
주님을 섬겨야 내게서 주님이 나타나신다. 주님이 나타나심은 인격적인 것이므로 주님을 섬겨야 나타난다. 나타나면 하나다. 존재적인 문제가 아니라 나타남의 문제다. 그분이 나타나실 때 내가 있고 내가 있을 때 그분이 나타나신다. 나타나는 면에서 그분과 나를 가를 수 없다. 빛이 비칠 때는 전등과 전기는 가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를 통해서 나타나신 주님은 나와 갈라 낼 수 없고 그분을 통해서 나타난 나도 주님으로부터 갈라낼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섬기는 자와 섬김을 받는 자가 하나인 것, 이것은 에덴동산보다 더 전진한 것이며 더 영광스러운 것이다.
바. 주 하나님이 빛이 되심
성소 안에는 일곱 등대에서 감람유가 타는 불이 비친다. 성소 안에 다른 빛이 비치듯이 왕국도 다른 빛 안에 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계22:5).” 한 것은 주 하나님이 빛이 되신다는 것이다.
사물은 물질적인 빛으로 보지만 주님은 다른 빛으로 본다. 시편 36편 9절에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라고 하였다. 그분의 빛으로만 그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분에게서 나타나는 빛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을 본다. 그분은 스스로 나타내지 않으시면 볼 수 없는 분이다.
주 예수께서는 “ 나는 세상의 빛이니” 라고 하셨고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라(요1 1:5).”라고 하였다. 그 빛이 곧 그분이다. 그 빛은 스스로 비치지 않는다. 그분을 섬기는 자들에 의해서 비치는 것이다. 성소에 그 빛이 있었듯이 그분을 섬기는 종들에게서 그 빛이 비친 것이다.
사. 그의 종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함
요한계시록 22장 5절에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라고 하였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통치는 실제적으로 그를 섬기는 종들로 인하여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 종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며 다스린다는 것이다. 존재로서는 다르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하나다. 우리가 그분에게 참여하고 그분을 섬기면 그분과 우리는 하나다.
인격의 세계에서 보냄을 받은 자와 보내신 자가 하나요, 섬기는 자와 섬김을 받는 자가 하나다.
하나님과 사람의 최종적인 소원은 짐승의 통치가 아니라 어린양이 통치하는 세계다.
에덴동산은 처음 계시된 하나님 나라였으나 약점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과 어린양이 통치하시는 이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과 부활의 과정을 거쳐서 교회로 나타났고 교회는 성숙의 과정을 거쳐서 엄청나게 변화된 새로운 나라다. 사단이 불 못에 던져졌고 바벨론도 무너져 버린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주님은 전에 있던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신 분이다. 동산까지도 새롭게 하셨다. 처음 동산은 뱀이 들어왔지만 새 동산은 다시는 사단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새 예루살렘에는 뱀이 없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이미 머리가 상했고, 교회의 승리로 불 못에 던져졌다. 그러므로 사방의 문이 밤낮으로 열려 있다. 뱀이 없으니까 문을 닫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새 동산은 뱀이 없고 오로지 하나님과 어린양이 통치하시고 그를 섬기는 종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이다.
2. 그 영과 신부가 공급하심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는 “그 영과 그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신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22장 1절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생명수의 강이 흐른다 하였고, 16절에는 예수께서 교회들을 위하여 그의 사자를 보냈다고 했으며, 17절에는 그 영과 그 신부가 누구나 와서 생명수를 받으라고 하였다.
‘그 영과 신부’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와, 예수께서 그 교회를 위해 보내는 사자로 공급 되는 생명수의 최종적인 실제라는 것이며 우리가 받는 생명수의 근원은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와 교회- 그 영과 신부라는 것이다.
가. 듣는 자도 오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통치 영역 안에 있는 자들에게 들린다. 그의 통치 영역은 예수의 피로 구속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 영역 안에 있으면 누구에게나 그의 말씀이 들린다. 구속의 영역, 이 얼마나 쉬운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셨다. 하나님 말씀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에게 들린다. 들을 귀는 그의 구속을 받고 그 영역 안에 있는 사람의 귀다.
나. 목마른 자도 오라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라고 하셨다. 생명에 갈망이 있는 사람들, 하나님 말씀에 목마른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는 사람들, 그 나라를 위해서 섬김에 목마른 사람들은 누구나 와서 생명수를 먹으라는 것이다.
세상은 생명의 물이 없다. 선악을 아는 지식은 갈등을 일으키고 율법과 계율은 마른 땅을 치면서 물을 내라고 한다. 짐은 무겁고 멍에는 고달프다(창3:16~19참).
그러나 하나님과 어린양의 통치가 있는 곳, 예수께서 자기의 사자들을 보내신 곳, 그 영과 신부가 말씀하시는 곳에는 생명의 물이 흘러서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때를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케 한다.
다. 값없이 받으라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셨다. 왜 값없이 생명수를 주시는가? 예수께서 이미 값을 지불하고 얻으신 것이며, 그의 구속 안에 있기 때문에 값을 받지 않는 것이다. 예수의 구속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와 그 은혜를 모두 무상으로 받는다. 구속 안에는 하나님과 이탈한 인간에게 요구되었던 모든 조건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내라고 하시지 않는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에게는 율법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성전 예배도, 제물도 요구하시지 않는다. 십자가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전부 무상이다.
라. 속히 오시리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계22:7) 하셨다. 속히 오신다고 하신 지가 이천 년이 넘었다. 그는 이천 년 동안 날마다 원하는 자들에게 오셨던 것이다. ‘듣는 자, 목마른 자, 또 원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값없이 생명수를 주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필요한 자에게 바로 가까이 계신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벧후3:9)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도 베드로도 예수님이 곧 오신다고 했는데 벌써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아느냐고 했던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이것이 큰 문제였던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쉽고도 어려운 것이다. 곧 오시겠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50년 60년을 기다렸으니 꽤 오래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마지막에서 또 주 예수는 속히 오신다고 했다. 주 예수님은 멀리 계서서 천천히 오시는 분이 아니다. 듣는 자에게는 아주 속히 오시는 분인 것이다.
마.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셨다. 그는 스스로, 홀로 은혜를 베푸시기가 어려우신 분이다. 인간과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에게나 은혜를 주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모세까지라도 만민에게 분배하시는 그의 은혜를 받아 오지 못하고 겨우 율법이라는 조건이 붙은 은혜만을 가져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고 “아멘(계22:21)”이라고 하였다. 주 예수의 은혜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셨다. 누구나 차별 없이 하나님을 알고 그의 공급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새롭게 하셨다. 육체가 되심과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의 모든 과정은 모든 것, 즉 옛것들을 새롭게 해서 만민이 조건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제 하나님 세계는 새로워 졌다.
말씀이 육체가 되었을 때 은혜를 가져왔고, 부활하여 승천하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은혜를 분배하셨으며, 신부의 영(교회의 남편)이 되심으로 만민에게 조건 없는 은혜를 선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다 그 혜택을 받아야 한다.
주 예수의 은혜가 여기 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 기 도 ]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구속 안에 이렇게 새로운 세계가 있고 당신의 구속 안에 이렇게 놀라운 희망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새 소망을 갖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가까이 계신 주님, 아주 가까이 계신 주님, 속히 오시옵소서. 모든 사람에게 속히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