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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4년3월2일
제목: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생명나무의 비밀(2)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창2:15-16,3:1-24 -
성경 본문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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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의 비밀
창2:15,16,3:1~24.계2:7.
5. 먹은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와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하는 나무임을 보고 과일을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다는 것이다. 사단은 “네가 이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먹었는데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으며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내가 벗었음으로 두려워 숨었다”고 했다는 것이다.
가. 하나님의 목적에서 이탈 되고 불행으로 들어감
1). 사단의 말을 들음으로 불행이 시작 됨
아담은 하나님의 말은 듣지 않고 사단의 말을 들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들어야 하고, 학생은 선생의 말을 들어야 하며, 군인은 상관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세계를 이탈한 반역자의 말을 들은 것이다. 이것은 군인이 역적의 말을 들은 것과 같은 것이다.
말은 듣고 해석하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 하는 자가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나를 위하는 자인가 해하는 자인가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자기를 지으신 이의 말을 듣지 않고 이탈자의 말을 들은 것이다.
이것은 인생과 우주가 좌우 되는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입에는 써도 배에는 단것이 있고, 입에는 달아도 배에는 쓴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지혜는 말을 잘 해석하는 것 보다 그 말이 누구의 말인가를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사단의 말을 들은 것은 인생 불행의 시작이다.
2). 사단의 말은 인생의 영광을 앗아감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영광을 표현할 자로 위임했다. 그런데 사단의 말을 들은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위임을 버린 것임으로 그 영광도 버린 것이며 연합하여 영화롭게 될 하나님을 버린 것임으로 영광의 길을 스스로 이탈한 것이다. 영광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서 그의 위임을 받고 그와 연합한자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군인에게 있어서 계급장과 훈장은 대통령에게 속한 것임으로 그의 명령 안에서 그와 연합한자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위임과 연합을 이탈했음으로 인생에게 약속 된 영광을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잃어버린 영광을 자기를 위하여 스스로 만들어보려고 헛되이 몸부림 치고 있는 것이다. 위임과 연합을 이탈한 자는 스스로 영광의 길에서 이탈한 것이다. 영광이 없는 인생은 스스로 영광을 만들려고 하지만 무엇을 해도 허무로 끝이 나는 것이다. 영광은 받아야 하는 것이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3). 인간의 가치를 상실하게 함
눈이 밝아짐으로서 자신의 벗었음을 알고 무화과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자신을 가렸다고 한다. 스스로 자신을 판단하게 됨으로서 하나님이 보시고 심히 좋다고 하신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 세계와 그 사랑을 잃은 것이다. 축복 속에서 그 행복을 알지 못하면 더욱 불행한 것이다.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이 정하신 가치를 알 수 없다. 하나님이 보시고 좋다고 하신 가치를 선악을 아는 지식의 잣대를 가진 인간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해주신 온전한 가치를 바로 앞에 두고도 스스로 가치를 추구한다고 일생을 허비하는 것이다.
인생의 가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상품의 가치는 사용자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 만든 제품이라 해도 그 가치는 사용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인생도 어떤 경우 사람들에게 유용한 사람이 되면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상품의 가치에는 사용자가 있는 것이 첫째 조건이지만 사용자의 수준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이다. 바가지는 다 가치가 있다. 그러나 똥바가지로 사용 될 수도 있고 물바가지로 사용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서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이 또한 인생을 안타깝게 하고 헛되게 하는 것이다.
4). 인간의 자존감을 무너지게 함
나무 잎으로 몸을 가린 것은 스스로 자기 약점을 가리고 자존감을 세우려 한 것이다. 하나님이 세워주셔야 할 인간의 자존감을 만물 중에 그 무엇이 세워 줄 수 있겠는가? 햇볕이 떠오르면 즉시 말라버릴 나무 잎으로 벗은 몸을 가린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며 어리석은 일인가?
그런데 인간은 이 일을 위해서 일생을 허비하는 것이다. 종교적으로는 이것을 자기 의로 하나님 앞에 서려는 것이라고 한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은 연합의 자리(창2:25참)를 이탈한 인간은 그 무엇으로도 그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는 것이다. 흙은 씨와 연합하지 않고 홀로 있으면 부끄러운 것이다. 부끄럽지 않는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5). 위치를 이탈케 함으로 부끄럽고 두렵게 함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고 한다. 아담은 인간의 위치를 잃었다. 그러므로 두려운 것이다. 만유는 그 지으신 이 앞에서 각각의 위치가 있다. 식물은 식물의 위치가 있고 동물은 동물의 위치가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사람의 위치가 있는 것이다. 경기장의 선수들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각자의 위치가 정해진다.
하나님께서도 만유의 창조자요 감독자로서 만유에게 합당한 위치를 부여하였다. 그런데 사단이 먼저 위치를 이탈했고 인간을 유혹하여 이탈하게 하였다. 이로써 우주질서가 파괴 되었고 위치가 없는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그의 심판이 두려운 것이다.
6). 헛되고 썩어질 것을 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시킴
사도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부정)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썩어질 것과 허무한 것을 숭배함으로서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사람 위에 머물러 있다고 하였다(롬3:23참). 영광을 나타낼 자가 썩어질 것을 따르면 영광을 주실 자가 진노하는 것이다.
가인과 아벨은 자기들이 스스로 선택한 제물로 제사를 드리다가 살인극을 연출했으며 하나님의 경륜에서 제외 되었다(창세기5장은 셋의 계보로 이어짐). 이것은 오늘날도 동일하다 스스로 만든 제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드린 제물을 보면 그를 핍박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공급이 없는 인간은 영광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헛된 영광을 구하느라고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고 허무한 것을 숭배하다가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진노하신다는 것이다.
7). 하나님의 동산을 떠나서 바벨로 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지어진 산 혼으로서의 인간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기 위하여 그의 동산에 두셨다. 그런데 사단의 말을 들은 그는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 되어 바벨로 향하게 되었다.
바벨은 혼잡과 분열의 세계로서 허물어질 성질의 도성이다. 이 길은 선악과를 먹은 인간에게 정해진 당연한 길이다. 지식으로는 바벨 밖에는 세울 수가 없는데 그 성은 본질적으로 무너질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이 성은 하나님의 성이 나타날 때까지 버티다가 그 영화롭고 아름다운 생명의 도성이 나타날 때 큰 소리를 내면서 무너지고 말 것이다(계18:2참). 선악과의 최후는 무너질 바벨이다.
6. 사단은 왜 먹으라고 유혹했는가?
사단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연결을 거부하고 연합에서 이탈한 천사다. 그는 생명의 연합을 통하여 이루려는 하나님 나라를 파괴하려고 인간을 유혹한 것이다. 그에게는 생명이 없고 지식 밖에 없는 자다. 그래서 인간에게도 지식을 먹여 자신의 나라를 이룬 것이다. 이것이 바벨로 묘사 된 그의 세계다(계18:2참).
사단의 계략은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켜 자신의 종이 되게 하고 그 인간으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선악을 아는 지식을 주입한 것이다. 이 지식을 받은 인간은 사단의 조종아래 놓이게 되어 자동기계처럼 사단의 일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은 어찌하던지 하나님 없이 신성한 삶을 살고 그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헛된 수고를 하며, 어느 면으로든지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하기 때문에 분리주의자가 된다.
그러므로 이 지식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관계를 이간하고 분열 시켜 연합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고 자신의 나라를 세우려는 것으로서 교회를 회복하는데서 극명하게 이 계교가 드러난다(계2:1~7참).
7. 아담의 범죄가 왜 모든 사람에게 전가 된다는 것인가?
아담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인간이며 인류다. 그러므로 아담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이며 아담의 행위는 인간의 행위인 것이다. 개는 짓는다. 어떤 개든지 다 짓는다. 어떤 특정한 개만 짓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다 같은 인간이다. 이 인간을 아담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아담이 먹은 것은 우리가 먹은 것이며 내가 먹은 것이다. 모든 개 안에는 동일한 성향이 있듯이 모든 인간 안에도 서로 동일한 성향, 즉 아담의 성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 하였고 이에 따라서 기독교는 인간은 나면서부터 죄인이라는 원죄 교리를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신화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거나 아니면 맹목적으로 원죄를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동일하기 때문에 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며 그가 받도록 정해진 저주를 모두가 받고 있는 것이다.
8.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책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사람으로 만유를 다스리고 그 사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자신을 나타내게 하시려고 사람을 하나님 자신의 형상을 따라 그의 모양대로 지으시고, 자신의 생명을 공급하기 위하여 산 혼이 되게 하였으며, 그를 자신의 동산에 두시고 그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는데 그 동산 안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하려면 인간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과 연결되어 생명공급을 받음으로서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이 되고 인간은 그의 표현체가 되어 그의 생명과 성품을 만유에게 분배하는 신성한 생명의 흐름과 순환이 이루어져서 만유는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완전하고 복된 하나님 나라다.
그런데 사단은 이것을 알고 이 신성한 연합을 방해하려고 선악을 아는 지식을 인간에게 주입함으로서 우주의 중심이 될 인간은 사단의 종이 되고 우주질서는 혼란스럽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셨고 그는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화염검으로 막혀있는 생명나무의 길을(창3:24,마27:51참) 회복하고 새로운 연결로서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연합을 이루는 새롭고도 산길을 열어 놓았다.
가. 새 생명(생명나무)의 공급이 필요함
아담은 사단의 말대로 선악을 아는 지식을 받아들였음으로 하나님의 생명공급에서 단절 되었다(창3:24참). 이것을 옛 생명이라 한다. 많은 성현들은 이 생명을 가진 인간을 개선시켜 보려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미 지식이 생명이 되어버린 인간은 개선되지 않았다. 훌륭하고 놀라운 일들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생명공급을 받을 인간들이 없었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사람을 통한 그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이 지은 세계를 맡기기 위하여 인간을 지으셨다. 그러기 위하여 자신의 형상을 따라 자신의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셨으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라 하셨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산 혼이 되게 하였다. 산 혼이란 지. 정. 의라는 기능을 가진 인간으로서 무엇을 담기 위한 빈 그릇과 같고 씨를 뿌리기 위한 밭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공급을 받아 인격적으로 표현함으로서 그 나라를 이루도록 지음 받은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은 자신을 표현함으로서 만유에게 자신을 분배하고 그 분배를 통하여 다스리고 지배하려고 하신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공급을 받음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에게는 영이신 하나님의 생명공급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생물에게는 영양공급이 필요하고, 자동차에게는 운전자의 공급이 필요한 것 같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생명공급, 즉 그의 본성과 성품을 받아 그것을 인격을 통해 만유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복과 지배와 다스림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받아서 공급할 자는 산 혼으로 지어져야 하고 그는 하나님과 연결 되어 생명을 공급 받아야 한다. 음식을 먹지 않고 애기에게 젖을 먹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엄마는 자신이 먹은 것을 자신의 생명을 통하여 젖으로 만들어서 애기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생명은 먹은 것으로 살고 먹는 데로 공급한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공급 대신에 사탄이 먹으라고 한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을 받음으로서 그 먹은 것으로 살고 그것을 먹은 대로 분배한다. 이것이 세상의 공급이다. 그러므로 이 일을 해결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려면 새 생명의 공급, 즉 생명나무 열매의 공급이 필요하다.
나. 새 생명의 공급
1). 생명을 받을 한 밭이 필요 함
씨가 뿌려지려면 밭이 필요하다. 아담은 밭으로 지음 받았으나 아무 씨나 받을 수 있는 밭이었기에 사단도 자기의 씨를 뿌린 것이다. 밀을 뿌려놓은 밭에 원수가 몰래 가라지를 뿌렸다는 것과 같다(마13:25참).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생명공급만을 받는 밭이 필요하다.
광야에서 굶주리고 있던 예수님에게 마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씨를 뿌리려고 왔다. 아담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내용과 동일한 수법으로 다가 왔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들을 일축하고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온갖 방법으로 유혹했을 것이나 예수께서는 오로지 하나님만 부르짖고 운명하셨다. 이런 밭, 즉 하나님의 씨만을 받을 인간이 필요한 것이다.
2). 이런 밭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서 많은 성도들이 길을 잃은 것 같다. 어떻게 예수님처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육체 안에 있는 인간으로서, 연약한 인간으로써, 이 험한 세상에서...... 등등의 장벽 앞에서 길을 모르고 돌아서 다른 길로 가고 만 것이다.
그러나 길은 가까이 있고 답은 쉬운데 있다. 그렇게 어려운 길이라면 또 어떻게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고 계신다 했으며(딛2:11참), 예수님도 내 짐은 가볍고 내 멍에는 쉽다 하셨다(마11:30).
하나님은 인간이 감당치 못할 문제를 주지 않으신다. 초등학생 시험에 대학생 문제를 낸다면 그 시험문제를 낸 선생이 엉터리인 것이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인간에게 풀 수 없는 문제를 또 다시 주신 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모르는 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또 모든 사람이 참예할 수 없는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면 그분 역시 어리석은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완전하게 구속하시고 구원하신다. 주 예수님의 구속은 완전하다.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보면 된다.
가). 마귀를 물리치신 예수를 봄
마귀를 물리치심에서 예수님은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으셨다. 그분과 우리는 신분과 능력에 있어서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마귀를 물리치심에 있어서 그는 우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으셨다. 돌로 떡을 만들라 했을 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했을 때,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이며 자기에게 절하라고 했을 때 그가 무슨 능력으로 마귀를 물리치셨던가?
지식이 있는 자는 지식으로, 능력이 있는 자는 능력으로 마귀를 대항해 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라. 그렇게 해서 승리한 자가 있었던가? 없었다. 당연히 없었던 것이다.
잠시 하나님의 힘을 빌려 승리한 자가 있었다 해도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고 있는가! 마귀가 인간보다 약하다면 아담이 속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우리와 다른 능력, 다른 위치에서 마귀, 즉 아담을 유혹했던 그 마귀를 물리친 것이 아니다. 그는 인생의 위치, 즉 하나님이 정해주신 인격으로 마귀를 물리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면 누구나 다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아담은 자기 위치를 이탈해서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하다가 유혹에 걸려든 것뿐이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본을 보여주셨다. 사람의 위치에서 마귀를 물리치고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심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위치에 계신 예수 안에 있으면 마귀를 물리치고 천사들의 수종을 받게 된다.
마귀를 물리치기 위하여 힘을 쓰지 말라. 많은 사람들이 마귀보다 더한 능력으로 그를 이겨보려 하다가 결국은 실패하고야 만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한다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나 그렇게 되지는 안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인생 그대로를 내 놓으셨는데 마귀는 물러갔다. 쉽지 않는가? 이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그분처럼 하면 된다.
물 위로 걸으려고 하지 말라.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려고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예수님 한분만으로 족한 것이다. 마귀를 물리치신 예수를 본받으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새 생명의 씨를 받을 밭이 된다.
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봄
예수께서는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하나님을 높였으나 참람하다고 정죄했으며, 안식일을 잘 지켰으나 안식일을 범한 자라고 했으며, 성전을 자신의 몸 전체로 세웠으나 파괴한다고 저주를 퍼붓고 로마인의 힘을 빌려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 그는 죄 없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것뿐이 아니었다. 하나님에게서도 버림 받으셨다. 그는 홀로 십자가에 달렸던 것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고 스스로 내려갈 힘도 없었다. 결국에는 힘이 다했을 때 하나님을 부르짖고 운명하신 것이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사람이 인류를 구원 할 메시야라면 모든 것은 끝난 것이었다. 인류에게는 아무 희망도 기대도 다 없어졌다. 메시야가 죽었으니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
그는 한때 물위를 걸었으며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였고 죽은 자도 살렸으며 .....이런 일들을 행한 것은 그가 메시야라는 표적이었다. 유대인에게 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이런 사람은 인류의 소망이었던 것이다. 아담은 이런 사람이 되려고 하나님이 경고하신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이다. 그런데 그가 어떤 사람과도 다름없이 죽은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십자가에 달아 놓으면 예외 없이 죽는다는 것만 다시 확인한 것이다. 인간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 같이 되든지, 아니면 하나님 아들로 세상에 왔든지 다 죽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선악과를 먹고라도, 즉 무슨 방법으로라도 하나님 같이 되겠다는 인간에게는 너무도 확실한 경고의 증거가 되었다.
그런데 아담은 왜 하나님 같이 되려고 했는가? 인간이 하나님같이 된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도 어찌하여 그 길을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느냐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마다 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는데 왜 교회는 그대로 세상과 다르지 않는가? 날마다 회개를 하고 있지마는 아담처럼 하나님같이 되려는 마음만은 회개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보았다면 우리도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 인생의 위치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 위치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표범이 얼룩무늬의 반점을 바꿀 수 없듯이 인생으로 정해진 이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위치에 있는 인간을 보시고 심히 좋다고 한 것이다. 위대하고 놀라운 것을 보신 것도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 같이 된 사람을 보시고 좋다 하신 것은 물론 아니다. 인생의 위치를 바꿀 수 없는 사람을 보시고 좋다고 하신 것이다.
돌로 떡을 만들 수 없는 예수를 보시고 하나님은 좋아하셨다. 그러니까 마귀가 물러나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수종 들었던 것이다. 또한 십자가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예수를 보시고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시고 좋다 하셨다. 그러니까 그를 다시 살려 새 생명의 주가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위치에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지고 새 생명의 밭이 되는 것이다.
신과 같이 되지 못했다고 불만 하는 자가 아담이다. 천사는 그에게 가장 부러운 존재였다. 하나님 같이 된다는 말은 신, 즉 천사와 같이 된다는 말일수도 있다. 이는 모든 인간의 궁극적 소원이 천사같이 되는 것임을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인생은 천사보다 월등하다고 선언한다. 천사는 단지 부리는 영에 불과하지만 인자는 하나님의 후사로 지정 되었다는 것이다(히1:6참). 인생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에 따라 잠간 동안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심을 받은 존재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히2:9참).
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봄
그러므로 예수는 새 생명에 대한 믿음을 주는 주님(창지자)이시오, 또 잠깐 동안 온전하지 못함으로 멸시 받던 인생을 온전케 하시는 구원자(예수)시다. 아담은 생명공급을 소홀히 여기고 지식을 취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생명공급을 귀히 여기고 끝까지 하나님을 부름으로서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 하셨다.
아담은 새 생명, 즉 하나님의 생명공급으로 사는 삶을 믿지 못함으로 스스로 살려고 지식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생명공급으로 사는 부활 생명을 이끌고 믿는 자들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공급이 영생임을 보고 알고 취하면 된다.
또한 천사보다 못하다고 한탄하던 인생이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면 인생의 위치에 대한 자존감을 얻게 된다. 육체이기 때문에 천사로부터 그의 앞에서 멸시를 받을지라도 인생의 위치가 천사보다 귀중함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지식이나 느낌이나 생각, 그리고 인격을 무시하고 능력을 자랑하는 천사의 송사를 무시하고 새 생명을 위한 믿음의 창시자요 또 인생을 온전케 하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이 새 생명의 길이요 삶이며 새 생명의 씨를 받을 사람으로서의 삶이다.
9. 하나님의 나라는 생명나무의 회복으로
하나님의 동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길이고, 또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을 먹고 마귀와 함께 사는 길이다. 그런데 아담은 지식의 길을 택하고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 되어 자신의 나라를 세웠는데 그 마지막이 바벨이다(창11장참조).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그들 중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삭을 주어 씨를 삼아 이스라엘을 세우셨다. 그런데 그 나라는 얼마 가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고 하나님은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시고 사람들을 구속하여 교회를 세우게 하셨다.
그런데 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나무 열매라는 것이다. 교회 회복의 계시를 열어주는 계시록 2장에는 맨 처음 교회로 에베소 교회를 들고 있는데 그 교회에 주는 경고는 너희가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다고 하면서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를 주어 먹게 하겠다고 하였다.
에베소 교회는 모든 지식과 좋은 행위를 가지고 있는 교회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처음 사랑, 즉 가장 중요한 것, 혹은 제일가는 것(원문 참조)을 버렸다고 하였다. 생명나무는 가장 중요한 것이며 무엇보다도 첫째 가는 것이다.
사단은 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라고 했는가? 생명의 연합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생명의 연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사단은 이 나라를 방해하려고 선악과를 먹인 것이다.
천사에게는 분배할 생명이 없다. 그래서 생명의 연합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고 지식으로 조합된 세상을 만들려고 아담을 유혹한 것이다. 아담이 그의 말을 들음으로 과연 그는 지식으로 조합한 나라를 세웠고 그것이 바로 바벨인 것이다.
그런데 교회들 역시 지식과 교리의 바탕 위에 세워진다면 바벨과 다를 바 없고 필연적으로 이 교리와 지식 때문에 사분오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단의 의도대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치 아니하면 교회의 상징으로서의 금 등대를 옮기겠다고 경고 하셨다. 그리고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나무 열매를 주어서 먹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교회의 절대적 조건은 지식과 교리가 아니라 새 생명이다.
세상은 이 지식으로 구성 된다. 이 지식은 세상을 만드는 생명이며 유지하는 지혜다. 그러므로 이 지식 없이는 세상을 살아 갈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매 순간 선과 악을 알아서 판단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달라야 한다. 교회는 생명으로 연합 되어 생명으로 건축 되어야 한다.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조직 할 수가 없다.
조직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살 때는 생명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교회 안에 들어서면 바로 알 수 있다. 교회 밖에서는 생명나무의 귀중함을 알 수 없다. 거기서는 선악을 아는 지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세기 2장 안에 감추어진 생명나무는 오랜 과정을 거쳐서 계시록 2장에서 나타난다. 동산의 회복을 위하여, 교회회복을 위하여, 생명나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생명나무는 계시록 22장2절에서 최종완성으로 나타난다.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통치)로부터 흐르니까 그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서 열 두가지 과실을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케 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하였다. 생명나무의 길이 완성 된 것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