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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4년7월26일
제목: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신약의 사람들
(1)교회의 기초석 베드로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창1:26-27,2:24 -
성경 본문
고린도전서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에베소서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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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신약의 사람들
2.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한 바울
고전12:12-13,27. 엡1:23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 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베드로와 열 두 사도들이 보고 듣고 만진바 된 예수를 전했다면, 바울은 계시 안에서 만난 예수를 전한 사람이다. 바울이 아니었다면 그리스도교가 세계 종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고, 바울 때문에 기독교가 객관화되고 교리화되는 근거가 마련되어 기독교는 바울의 현란한 표현 속에 갇혀버리게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누구보다 예수를 깊이 본 사람이고 예수를 보지 못했지만 사랑한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형태가 되고 보편화되자면 역사적 예수를 경험한 제자들도 있어야 하지만, 바울 같이 계시 안 에서 예수를 경험하고 누린 사람도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역사적이고 객관적 예수와 지금 교회가 누리는 주관적 그리스도에 대해 치우침이 없게 된다.
1) 바울의 회심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예수를 경험하고 회심하였다(행1:1-9). 그러나 이 사건을 펼쳐 보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건이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심문하고 죽이는데 동의한 사람이었고, 스데반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사람이었다(행7:58).
바울에게는 예수가 분명 나사렛 이단의 괴수였지만,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까지 확신에 찬 증거와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같이 빛난 것과,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는 것을 보고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자기 인생에 풀리지 않는 문제 속으로 스며들어가 강퍅한 사울을 무너지게 한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증거한 후 3천명이 회개했지만, 스데반은 더 해박하고 권세있게 예수를 증거하고 돌 맞아 죽었다. 그러나 스데반의 증거는 훗날 바울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눈 앞에 보이는 결과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우리 삶은 먼 훗날 내가 모르는 귀중한 일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그릇이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바울을 철저히 자고할 수 없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눈에 가시를 두신 것이다(고후21:7). 베드로가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지고 예수를 전했다면,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 예수를 전했다.
2) 바울이 본 그리스도
바울은 계시 안에서 예수를 보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교회를 통해서 예수를 만난 사람이다. 교회를 통해 예수의 몸을 보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가 열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12:12)."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고전12:27)" 라고 말씀한다.
머리와 몸의 생명의 유기적 관계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심비에 새겨진 사람(고후3:3), 그리스도의 편지이고(고후3:2) 그리스도의 향기인 사람(고후2:15)을 증거하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전2:16).
3) 구속과 그리스도를 주관적으로 경험함
예수의 죽음을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으로 해석하는 것은 모든 사도들의 공통된 고백이다. 바울도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예수께서 나를 대신해 죽었다면 내가 죽은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5:14)."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람이 나를 대신한 사람이며, 바로 그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제물 드리는 자는 제물의 머리 위에 안수함으로 제사를 드 린다. 제물과 제물 드리는 자가 동일시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단에 드려지는 제물과 완전하게 동일시되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 흘림은 해마다 반복할 필요가 없는 단번에 드린 제사가 되었다(히9:25~27).
그래서 바울은 '예수 안에서 발견되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 안에서 한 생명으로 동일한 경험을 가지길 갈망했다(빌3:9-11). "예수와 합하여 침례 받은 것은 그와 함께 장사된 것이고,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4-5) 그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생명의 완전한 연합을 푯대로 달려간 사람이었다.
4) 그리스도 생명의 보편화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3)."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생명의 충만이 나타나듯이 교회는 그리스도 생명의 충만한 확산이다.
또한 "우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2)." 예수만 성전인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 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지고 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엡4:13)." 교회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