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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4년7월28일
제목: 3.구원 받은 사람-노아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창6:1~9,6:13~14 -
성경 본문
1.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3.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12.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13.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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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사람들
3. 구원 받은 사람-노아
창세기6:1~9, 6:13~14
아담이 멸망의 길을 가고 있을 때 한 집안이 구원을 받았다. 이 집은 노아와 그 식구들이었고 방법은 방주였다.
1) 의인이 자기 식구들과 함께 구원 받음
(1) 노아의 때
노아의 때는 네피림의 시대로서 모두들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았다. 타락한 천사들은 인간들과 연합하여 거인들이 되어 강포를 자유로이 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거인들은 인간의 소원대로 된 사람들이다. 이것은 선악과를 먹은 결과다. 선악을 아는 지식은 자기 옳은 대로 살기 위해 먹은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하나님 같이 되어 완전한 인간이 되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때가 노아의 때요 거인들의 때였다(창6:1~참).
오늘날도 사람들은 강함과 위대함을 얻으려고 경주를 하듯 달려가고 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자기들 중에서도 누가 더 하나님 같으냐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평화에 관한 일을 알 리가 없고 하나님의 말씀하심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노아의 때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2) 노아의 인격
노아는 왜 모든 사람이 멸망하는 이때에 구원을 받았는가? 노아는 당세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하였다(창6:9). 의인이라 함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른 사람이라는 뜻이며 완전하다는 것은 연합하기 위해서 온전 하다는 것이다. 모두들 신이 되려고 하는 판에서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로서 완전한 자였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 완전해지려고 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하나님과 연합하여 그를 나타내야 한다. 인간이 스스로 완전하다는 것은 거짓이며 거역이다.
네피림이 판을 치는 시대에 노아는 그 판에서 놀 수가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햇빛이 쨍쨍한 날에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예비하라는 명을 받은 것을 보면 스스로 무엇을 하는 위대한(?) 네피림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종속 되어 명령을 기다리는 종-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가올 홍수를 앞두고 하나님은 왜 노아에게만 말씀 하셨 겠는가? 하나님은 들을 만한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네피림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다. 스스로 하나님 같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기도 싫어하거니와 들을 수 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는다. 또한 말씀했어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하나님이 택하여 말씀한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미 의로운 사람인 것이다. 성경은 그의 행위를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그 말씀을 청종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단지 그의 말씀을 청종하면 된다. 의는 스스로 무엇을 행하는 문제가 아니다. 위치의 문제이며 태도의 문제다. 아담은 위치를 이탈하고서 양심으로, 율법으로, 혹은 지식으로 의로워지려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는 없다 고 한다(롬3:20참). 물론 지식으로도 의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노아는 위치와 태도에서 의로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2) 방주로 구원 받음
네피림의 때는 홍수로 멸망당했다. 홍수는 네피림의 모양대로였을 것이다. 홍수는 큰물이다. 홍수가 땅에 창일하듯이 네피림이 땅에 창일 했다는 것이다. 그 때에 그들의 강포가 심하여 여호와께서는 지면에 사람 지은 것을 후회하셨다고 했다 (창6:6). 강포가 심해졌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가 권세를 만들어 행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멸망의 말기적 증상이다.
그들은 홍수와 같다. 홍수는 모든 것을 쓸어 가버리는 것이다. 네피림은 땅의 모든 축복을 홍수처럼 쓰러버린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다(창3:17). 그런데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는 명을 받는다. 방주는 창일하는 바다 위에 떠서 사망의 물을 이기는 것이다.
누가 네피림을 이기며 사망의 바다를 극복할 것인가? 그런데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는 명을 받는다. 방주는 여러 개의 작은 판자들을 연합하여 만든다. 네피림이 위대한 통나무 같고 그 시대가 통나무 시대라면 노아는 작은 판자 같은 사람이고 그는 작은 판자들로 방주를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결국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서 그의 여덟 식구들과 각종 생명을 보존 할 씨를 포함하여 구원을 얻는다. 판자 하나하나는 보잘 것이 없고 작다. 그러나 연합하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구원의 방주가 된다. 이것은 교회가 만유를 포함하는 구원이 될 것을 예시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작은 분이다. 유대인들에게 정죄 되고 로마인들에게 살해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버린바 된 한조각의 작은 판자 같은 사람이다(사53:1~참). 그러나 그에게는 자기 피로 값 주고 산 많은 판자 조각들이 있어서 방주를 짓는다.
그들은 바벨을 건설하기 위하여 가는 위대한 통나무- 사람들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작은 판자-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방주를 건축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 방주는 만유를 포함하는 구원의 배가 되었고 이는 교회의 예표가 되었다. 통나무는 아무리 커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방주는 얼마든지 커질 수 있음으로 만유를 포함할 수 있다.
그런데 교회는 어느 시기를 지나면서 갑자기 통나무배로 변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위대한 자가 개입했고 그의 힘을 의지하여 위대해졌다. 위대한 네피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놀라운 교인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들을 숭배하고 따르기 시작했다. 작은 판자 쪽들은 밀려나고 버려지게 되었다. 방주를 건축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교회는 다시 고난을 겪게 되었다. 최초의 교회의 예표인 하와는 네피림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생산기능에 상처를 입어 해산의 고통을 교회에 물려주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작은 판자 조각들만을 겨우 구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은 여기서 다시 회복 된다. 교회는 작은 판자 조각들의 연합체로서 만유를 포함하는 구원의 방주가 되기 때문이다. 노아는 작은 판자로서 의롭고 완전하다는 말을 들었으며 자기와 같은 판자들로 방주를 지어 만유를 구원한 사람이다.
노아, 방주의 계시를 받고 방주를 건축한 노아, 우리는 이 사람을 주목한다. 예수와 그의 사도들, 벌건 대낮, 햇빛이 쨍쨍한 맑은 날씨에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짓는 사람, 보잘 것마저 없는 작은 판자들을 모아 만유를 포함하는 구원의 방주를 짓는 사람들, 예수와 그의 사도들, 세상은 이 사람들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