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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5월 26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을 위한 부활(3)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20:19-23 -
성경 본문
20:19 이날 곧 안식 후 첫 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0: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을 위한 부활
요20:1~21:25
C. 부활의 권세를 형제들에게 위임하심 (요 20:19~23)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고 있는 곳에 나타나셔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면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셨으며 숨을 불어내시고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지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을 것이라 하셨다.
1. 닫힌 문들을 폐하러 보내심
a. 문을 닫았으나 나타나심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문을 닫았다고 했다. 세상에는 문이 많다. 종교, 사상, 계급, 빈부, 성격, 취미 등, 수많은 문이 있다. 들어가려면 그 문을 열어야 한다. 어려운 문들도 많고 불가능한 문들도 많다. 육적인 세계에는 원래도 많았고 만들어서 또 많아졌다. 하늘에는 열린 문이 있으나 세상은 어디를 가나 다 닫힌 문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과 그 제자들 사이에도 문이 있어 닫혀 있었다. 서로가 들어갈 수 없는 문이 있었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아담과 하와 사이가 막혔고, 가인과 아벨 사이가 막혔으며 주님과 제자들 사이도 아직은 막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막혀 있는 상태로 지겹도록 오래 살고 있는 것이 인간 역사다(창5:참).
그러나 주님은 문이 막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져볼 수 있는 몸으로 나타나서 그들 가운데 서셨다고 했다. 닫힌 문을 폐하신 것이다. 처음에 제자들은 자기들 가운데 서신 분이 무슨 유령인가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만져보고 알 수 있는 주님이었다.
주님은 무덤을 폐하시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닫혀있는 문을 폐하시고 나타나셨다. 무덤을 폐하셨기 때문에 닫힌 문을 폐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부활이 없이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제자들이 무엇을 보고 이렇게 전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부활 안에서만 있을 수 있는 사실을 전하는 소식을 우리는 들은 것이다.
문이 닫혀 있는데 나타나셨으나 몸이 있었다는 것이다. 무슨 영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영이나 천사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이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으로서 몸을 가지고 오셨다는 것이다.
천사가 그랬다면 당연하게 생각할 일이다. 귀신이 그랬다 해도 당연히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이다(눅24:37참). 그런데 문을 열지 않고도 오신 분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았다고 한 것은 상식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세계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사도들은 몸이 없이 오는 자를 전하지 않았다(1요4:2참). 몸이 있어서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을 전하였으며 몸이 있어도 닫혀 있는 문을 폐하시고 나타나신 주님을 전하여 준 것이다.
세상은 모든 문으로 꽉 막혀 있어서 어떤 부류들끼리만 어느 정도 출입이 가능하다. 유대인들의 문으로는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가 없고, 이방인들의 문으로는 유대인들이 들어가지 않는다. 선악을 아는 지식은 모든 사람들을 각자의 지식대로 갈라놓고 문을 만들어 굳게 닫게 한 것이다.
b. 닫혀 있는 문을 폐하라고 형제들을 보내심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든 문을 폐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신의 형제들을 그러한 목적으로 세상에 보내시려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하시면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고“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다.
c.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형제들을 보내심
닫힌 문은 사단의 말을 듣고 인간들이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폐해야 한다. 주님은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아담 이후 최초로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어 굳게 잠근 문을 폐하시고 형제들을 찾아오신 분이다. 그리고 다시 형제들에게 그 문들을 폐할 권세를 위임하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얼마나 멀며, 하나님과 사람은 얼마나 다른가? 그리고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닫힌 문들이 있는가? 그러니 하나님의 명령을 받으면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출19:18).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주님은 평안 중에 오셨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 생명 안에서 명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주신 그 생명이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이다.
아버지 새는 자기가 자기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것같이 아들 새에게 날기를 명령해서 보낸다. 그러므로 아들 새는 기쁨과 평강 중에 신나게 공중을 나는 것이다. 나는(비행)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는 평안하다.
인간의 방법은 훈련을 시키고 명령을 하는 것이기에 힘이 들고 불안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생명을 주고 임무를 맡기신다. 요한복음의 요점이 여기에 있다. 요한은 아버지의 생명으로 오신 아들을 본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이 보기에는 주님이 하신 모든 일이 다 생명의 일로 보였던 것이다.
d.아담은 문을 만들고 지식으로 그것을 지킴
생명은 스스로 안에서 문을 열고 닫는다. 그러나 아담은 지식으로 문을 열고 닫는다. 그 지식은 닫아야 할 때는 열게 하고 열어야 할 때는 닫게 한다. 사단에게는 문을 열게 하고 하나님께는 문을 닫게 한다. 그러므로 그의 문은 하나님에게 항상 닫혀 있는 것이다.
e. 그러나 충성된 교회는 열린 문의 약속을 받음
이 문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주시는 것인데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다.(계3:8참) 부활하신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무덤 문을 여시고 닫힌 문을 폐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 안에는 닫힌 문이 없는 것이다.
f. 주님 안에는 닫힌 문이 없음
새 예루살렘에는 열두 문이 있었으나 밤이 없으므로 항상 열려 있었다(계21:25참). 밤에는 문을 닫는다. 세상이 문으로 닫고 있는 것은 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 안에는 밤이 없다. 제자들은 아직은 밤이었으므로 두려워서 닫힌 문 안에 있었으나 주님은 부활하셨으므로 열린 문으로 오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어디든지 나타나실 수 있는 몸을 보여주셨다. 무덤을 열고 나오신 몸, 닫힌 문에 상관없이 나타나신 몸, 그렇지만 만져 볼 수 있는 몸을 보여 주시고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하셨다, 이것을 사람들은 신비한 몸이라고 상상한다. 이런 경우 인간의 상상은 허구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대로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도 그의 보냄을 받으면 무덤을 폐하고 닫힌 문들을 폐하러 가는 것이다.
마태는 성전의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고 했으며(마7:51,52),
바울은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둘을 하나로 만드셨다고 했고,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주님의 육체로 폐하셨다고 했으며(엡2:14,15),
요한은 충성된 교회에게 열린 문을 약속하신 것을 들었고(계3:7~),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으며 (계4:1), 밤이 없는 성에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계21:25).
#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몸으로서 열린 문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