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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6월 9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을 위한 부활(5)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20:24-29 -
성경 본문
20: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0: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을 위한 부활
요20:1~21:25
생명의 건축을 위한 부활 요20:1~21:25
3.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고 믿음을 주심 요20:24~29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맨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는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나타나셨다. 그러나 도마는 어디를 갔었던지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가 두 번째 모임에 와서야 주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a. 교회 중에 나타나신 주님
주님은 갈망하는 자에게 나타나시지만 주로는 교회 중에 즉, 집회 중에 나타나시고(계시) 교회의 찬송 중에서 찬송하신다(히2:12). 부활하신 주님은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 나타나서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시고 형제임을 계시하셨으며, 성령을 주시고 죄들을 사하는 권세를 주셨다. 그러나 도마는 거기 있지 않았으므로 이 모든 축복을 놓치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형제들과 함께 있지 않고 홀로 있었다는 것이다, 교회 집회 중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고 믿는 사람이라도 집회 중에 있지 않으면 많은 것을 놓치고 결국에는 빈약하고 가련한 신앙자(?)가 되기 쉬운 것이다.
또한 자기 심령 중에서 기도나 환상이나 음성이나 기타의 증거들을 통해 주님을 만난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엉뚱한 길로 빠지는 것이다. 주님은 교회 중에서 계시하시고 증거 되시며 찬송 받으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교회 밖에 사는 사람들이 주님을 모르고 부인하는 것은 당연하다. 교회 중에 계신 분을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산에 가야 범을 본다는 말이 있다.
도마는 주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제자였지만 집회 중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계시를 놓쳤으므로 다른 제자들의 말을 믿지 못하고 “나는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그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다.” 하였다. 이 사건 때문에 도마는 기독교사에서 의심 많은 사람, 비판적인 인간, 합리주의자,....등등의 좋지 못한 별명이 붙어있는 사람이 되었다.
도마는 교회집회를 떠나서 홀로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주님은 교회를 찾아 나타나셨는데 자기는 홀로 있었으니 무슨 수로 이 놀라운 일을 알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가 믿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주님은 교회의 건축을 위해 새 생명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교회 밖에서 알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b. 교회로 부르시고 믿음을 주심
그러나 도마가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시고 주님은 그를 교회로 올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도마가 와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을 때 나타나셔서 도마가 원하는대로 보여 주시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이다. 않고서는 믿을 수 없그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신 주님은 그가 교올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도마가 와서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고 했 나 도마가 원하는 대로 보여주시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이.
주님은 그를 개인적으로 찾아가지 않으시고 교회로 부르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교회 안에서 사시고 나타나셔서 교회 안으로 사람들을 부르신다. 구약에서 여호와는 성소에 계시면서 그 백성에게 계시하셨으므로 장막의 하나님이라 일컬어지신 것같이 주님은 교회 중에 계시는 교회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드디어 도마는 형제들에게로 돌아와서 주님을 만져보고 즉시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함으로써 누구보다 먼저 인자가 주님이시며 (행2:36,10:36,롬14:9,10,12,13,고전12:3,고후4:5,빌2:11참) 인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요1:1,2,5:17,18,10:30~33,롬9:5,빌2:6,1요5:20참) 고백하고 선포한 사람이 되었다.
도마는 교회 집회 중에 와서야 주님을 만진 것이다.
c. 믿음은 선물임
믿음은 선물이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다. 믿음은 우리의 어떠함에 달린 것이 아니라 주님의 어떠하심으로 말미암은 신뢰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그분이 주신 선물이다. 때문에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자기도 믿음 없는 자들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러 가는 것이다.
그 후에 도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그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고 있다. 다만 도마복음이라는 외경에 그가 인도에 가서 교회를 세웠다고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동인도에 성도마교회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겠다고 했던 도마가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을 믿는 인도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했다면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도마는 보고 믿었다. 그런데 보이지도 않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가서 부활의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보고서야 믿었던 사람이 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가서 어떻게 부활을 전했을까?
부활은 본 사람들에 의해서 전파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도마처럼 보고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너는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다”하셨다.
d. 부활하신 주님은 여이요 생명이심
살아계실 때는 영원한 말씀이 육신 안에 있었으므로 보고 듣고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영 안에 있으므로 육신의 안목으로는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제자들은 모두 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자는 바울이다. 그는 부활의 현장에 없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주를 보았다고 했다. 다른 제자들의 말만을 들으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모든 사람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 자리에 있지 못했으면서도 내가 주를 보았다고 했다. 이것이 해답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영이요, 생명이며, 실제이시다. 부활하신 주님은 육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안에서 실제로 본다. 성육신하신 주님도 눈으로 볼 수 있었으나 그의 실제는 영으로밖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았으나 그를 알지는 못했던 것이다.
영원하신 말씀도 육체 안에 있었으나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다. 이와 같이 부활하신 주님도 눈으로 본다고 아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활의 현장을 보지 못한 바울이 자기가 주를 본 증인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안다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고도 알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본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을 보지 않았지만 보았다고 했다. 그렇다. 부활하신 주님은 바울처럼 보는 것이며 다른 사도들 역시 그렇게 본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영이요, 생명이며, 실제이시다. 그러므로 육안으로 보이는 임재보다 더 유용하고 풍성하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40일을 함께 하시면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여 그 실제를 보이심으로써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이 되게 하셨던 것이다.
e. 영이요 생명이신 주님은 실제로써 교회 안에 나타나심
이 실제는 오늘 교회 안에 있다. 부활하신 주님은 교회 안에 현존하신다. 그러므로 영이요 생명이신 주님은 교회 안에서 증거되어 믿음으로 확산된다. 우리는 지금 부활하신 주님을 교회 안에서 보고 믿는다. 이것이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복되다”는 것이다. 벧전1:8은 보지 못하고도 사랑한다 하였고1요1:1에는 들은 바요 눈으로 본바요 우리 손으로 만진바라 하였다. 이 둘은 다른 것 같지만 한 실제를 놓고 한 말씀인 것이다. 아는 것은 보는 것이다. 주님을 안다는 것은 곧 그를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