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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7월 7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맺는말(4)생명의 건축을 위한 위임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21:15-24 -
성경 본문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21: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1: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21: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21: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1: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1:24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을 위한 부활
요20:1~21:25
맺는 말(4) 요21:15~24
4. 생명의 건축을 위한 위임
베드로는 세 번 주님을 부인했으나 세 번 주님을 다시 시인하고 사랑을 다짐했고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위임하심으로써 과거를 밑거름으로 삼아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베드로는 주님의 양을 먹이고 인도하여 교회를 건축 할 신성한 위임을 받았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했을 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8) 하셨던 예언대로 이제 베드로에게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위임이 주어진 것이다.
그는 신성한 간증을 하고 예언적으로 위임을 받았던 사람이지만 실패의 과정을 겪고 허물어진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자기를 찾아오신 주님 앞에 사랑을 고백하고 목양을 위임을 받았다. 갈아진 밭에 다시 씨가 뿌려진 것이다.
주님이 물으신 세 번의 물음은 그의 세 번의 부인으로 인한 아픔과 함께 그 영에 깊이깊이 새겨졌을 것이며, 이런 사람의 세 번의 사랑의 고백은 주님의 마음에도 깊이 간직 되었을 것이다. 이로써 두 사람 사이에는 완전한 관계가 이루어졌고 신성한 위임이 이루어졌다.
주님은 위임자가 되심
주님은 옛사람을 정리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만민을 위한 맏아들이 되어 교회를 건축하시려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생명주는 영이 되었다. 새 인류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을 먹이고 기를 목자장이 되셨다(히13:20). 아담에 비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작이 되신 것이다(고후5:17참).
이뿐 아니라 그 동산 보다 더 온전하고 예루살렘보다 더 영화로운 하나님의 보좌가 어린양과 함께 있는 새 예루살렘의 주인으로서 알파와 오매가가 되셨다(계22:13).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하늘에 속한 많은 언약들을 주셨으나 아직 성취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양의 큰 목자로서 이 언약들을 성취하기 위한 궁극적인 위임을 베드로에게 주신 것이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위임인가 !
베드로는 위임을 받을 자가 됨
하나님의 백성은 목자의 먹이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 교회로 세워진다. 이것은 교리가 아니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건축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과정을 거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주님의 목자가 되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이 어떠한 위임인가 ! 베드로는 주님의 사람이 되어 목자장이 되신 그의 양들을 먹이고 기를 목자가 된 것이다.
주님의 위임은 절대적임
그는 젊어서는 스스로 허리를 동이고 힘을 내면서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이었고 자기 자유였다. 시골 어부였으나 그것을 버릴 자유도 있었고 삼년 후에 다시 취할 자유도 있었다. 주님을 따를 수도 있었고 버릴 수도 있었다. 혼자 있을 수도 있고 여럿을 몰고 다닐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자유였다. 사실 그는 제왕이 부럽지 않게 자유로웠던 것이다.
그러나 늙어서는 두 팔을 벌리리니 남에게 묶여서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갈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베드로는 궁금한 것이 있었다. “이 사람(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요한은 각별하게 주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면” 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내가 다시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셨다.
부르심이 각각이듯이 위임 또한 각각이다. 하나님의 위임은 절대적이다.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창조에 대해서 물을 수 없는 것같이 위임에 대해서도 물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자기에게 정해주신 위임을 수행할 뿐이다. 베드로는 주님의 양을 먹이고 기를 양의 목자로서, 요한은 주님의 증인으로서, 진실의 증인으로서. (19:34, 35, 21;24 참) 각각의 임무를 수행했다. 엄지는 점지와 자기를 비교하지 않는다. 코는 눈과 비교 할 수 없다. 각각의 용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님 안에 묶임으로 자유 함
팔을 벌린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힘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게는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주님의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데로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끌려 다니는 사람이고, 묶여 다니는 사람인 것이다.
아담은 자기 마음대로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위임을 떠난 사람이다. 그런데 자유는 그냥 주어지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자유를 얻으려 하기 때문에 투쟁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담의 역사는 자유를 위한 투쟁이다. 자유를 위해 하나님을 떠났으나 자유를 위해 싸워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선악을 알아서 하나님을 떠난다고 자유자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자유는 강자들의 전리품일 뿐이다. 약자는 언제나 강자들의 자유를 위한 희생양이다. 그래서 자유를 얻으려고 피를 흘렸으나 언제나 강자와 약자의 구도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악순환은 반복 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자기 자유를 얻으려고 싸우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이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기가 원하는 데로 살고 있는 줄 알지만 사실은 자유를 얻기 위해 싸워야 하는 아담의 삶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도 이들 중의 한사람이었고 우리 역시 그러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제 자원하여 주님의 사람이 되었고 주님을 위해 묶여갈 사람이 된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유를 찾지 않는다. 주님의 위임을 따르는 것이다.
동산을 지키라는 여호와의 위임을 중히 여기지 안했던 아담은 자기 자유를 얻으려고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을 떠났으나 아직도 참 된 자유를 얻지 못하고 투쟁을 반복하고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에게 묶인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유자였다. 참 된 자유를 얻은 것이다. 기꺼이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히2:15참).
자기자유를 얻기 위해 남과 싸우는 아담과 얼마나 다른가? 그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처형당할 때 자기를 거꾸로 십자가에 달아달라고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내가 어찌 주님과 같은 십자가를 지겠느냐는 것이었다. 인간은 참된 위임 안에서만 참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