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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4년 1월 26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빛의 표적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8:1-20, 9:5 -
성경 본문
8: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8: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8: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8: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8: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8:13 바리새인들이 가로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하니 네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도다
8: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8: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8: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8: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8: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8:19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8: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빛의 표적 8:1~20. 9:5.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하여 간음 중에 붙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모세는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라는 것이었다.
죽여야 한다고 하면 “사랑과 긍휼이 없는 자다. 죄인의 친구라는 말은 거짓말이다.”라고 하여 백성의 불신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죽이지 말라 하면 로마의 법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자라고 당국에 고발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몸을 굽혀 땅에 글을 쓰셨다고 한다. 무슨 글을 쓰셨는지는 아무도 알 바 없다. 다만 여기 “쓰다”는 어휘는 카타그라패인 (katagraphein)이라는 말로서 누구에 대하여 반대의 글을 쓴다는 뜻이라 한다(욥13:26참).
예수께서는 글을 쓰면서 시간을 지연시키심으로 그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려고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예수가 대답 못 한다고 생각하고 조롱이라도 하는 듯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셨다고 한다. 그들은 점점 소리를 높여가며 당당하게 답을 재촉했을 것이다.
그 때 땅에 글을 쓰시던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시오.”라고 하셨다. 여기 죄 "없다"는 말은 아나말테토스(anamartetos)로서 단순히 표면적으로 없다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속에라도 그런 생각마저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각각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떠나가고 여자만 남았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여인에게“당신을 정죄하던 사람들이 없습니까?” 물으시고 “나도 당신을 정죄하지 않으니 다시는 가서 죄를 범하지 마시오” 라고 하여 그 여자를 정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던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전문가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비판적이고 검열적이며 단죄적이었기에 예수의 송사를 공식화하기 위해서 이 여자를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여자를 살리고 정죄로부터 해방시키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하셨고, 9장 5절에서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를 보고 누구의 죄 때문에 이 사람이 소경이 되었느냐고 묻는 제자들에게“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는 것이라” 하시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한 다음에“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죄를 지은 사람이나 그를 정죄한 사람, 그리고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이나 누구에게나 죄를 덮어씌우는 사람이 다 어둠에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보실 때는 어둠이 곧 인간의 문제라는 것이다.
율법은 어두운 밤에 길을 찾으라고 준 지도와 같다. 그러나 밤이 어두우면 그 지도를 제대로 볼 수가 없고 본다 해도 길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밤이 어두울수록 하늘의 별빛은 보기에 찬란하고 아름답지만 길을 찾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빛인 것이다. 율법은 신성하고 거룩하여 어두울수록 빛나는 별빛과 같지만 그것으로는 이 여자를 살릴 수가 없었고 하나님이 아무리 자비로우시다 해도 그 율법 아래서는 이 여자에게 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자인 아들에게는 어두움 안에 있는 인간에게 비춰줄 수 있는 빛이 있다는 것이다. 이 빛은 생명의 원천에서 비취는 빛과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빛을 내포한다. 화초는 태양의 빛을 받아서 자람으로 자신의 생명이 자라면 밖으로 고운 빛을 발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로부터 빛을 받고 우리에게 비취는 빛이시다.
세상에는 빛이 필요하다. 양심, 도덕, 율법, 수양, 교육 이전에 빛이 있어야 한다. 전능자는 창조의 시작에 무엇보다 먼저 빛이 있으라 하셨고(창1:3). 구속을 위해 오신 말씀 안에는 빛이 있다고 하였다.(요1:4참). 빛은 모든 것보다 먼저 있어야 하고, 그 빛은 밖으로부터 와서 안으로 들어가 생명의 빛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기다릴 때 그 메시야는 빛으로 오신다고 믿었던 것이다(시27:1,사60:19욥29:3미7:8 등). 그리고 절기의 첫날에는“성전의 빛이라 불리는 의식이 먼저 행해지는데 네 개의 큰 등이 성전 뜰 중앙에 켜짐으로써 온 성내를 다 비출 때" 절기의 축제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빛이 있어야 창조도 있고, 구속도 있으며, 절기의 축제도 가능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는 선과 악이 따로 없고, 율법 안에서는 죄와 정죄만 난무하고, 도무지 살리는 영은 없는 것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이다. 하나님이나 메시야 외에는 그 누구도 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유대인이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말을 하셨으니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여자는 빛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율법의 저주와 심판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었고, 소경은 눈을 떠서 만물을 보게 되었다. 빛이 왔기 때문이다. 어둠 안에서는 자비라도 도달할 길이 없고,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보게 하려고 율법을 주셨으나 그 신성한 율법마저도 어둠 안에서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고, 오히려 인간의 완악함만 확인한 것이다. 마귀가 준 선악과는 인간의 위치를 이탈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세계와 그의 일이 바로 보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오직 빛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빛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디에서 빛이 오는가? 태초에 전능자가 오심으로 빛이 왔듯이(창1:3) 이제도 메시야가 오면 빛이 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소망이며 믿음이었다.
그러면 메시야는 누구인가? 하나님이 보낸 자로서 인격의 위치가 바른 자다. 빛이 있으나 그 빛을 등지면 어둠이다. 아담은 위치가 이탈되었으므로 빛을 등진 자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가 와야 한다. 빛은 위치가 바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놓고 예수를 모함하려던 어둠에 있는 자들은 예수께서 거기 계심으로 잠잠해졌고 심판관들이 다 사라졌으므로 법정은 자연히 무산되었으며 죄인은 사함을 받고 해방을 받았다.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를 놓고 그 원인을 죄에서 찾으려던 제자들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고 그의 눈을 뜨게 하시는 것을 보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어둠 속에서는 인간의 상식은 물론 하나님이 주신 그 율법마저도 바르게 적용될 수가 없는 것이다. 간음 중에 붙잡힌 여인을 누가 살릴 수 있으며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에게 누가 길을 보여 줄 수 있는가? 아담 안에 있는 인간은 누구나 범죄 중에 있으며, 나면서부터 소경인 것이다.
빛이 없는 곳에 태어난 사람은 선악간에 일반이며, 눈이 있으나 없으나 소경인 것이다. 빛이신 분이 와야 한다. 예수님은 인격으로 인정받아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았으므로 우리에게 빛으로 오신 분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다(1요1:5). 그러므로 그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 또한 빛이시다. 이 빛은 거짓말쟁이인 사단에게 속은 인류를 원위치로 구속하신 인격이다. 우리는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엡1:7참). 이 인격은 어둠을 밝히시는 빛이시고 참 빛의 표적이시다.
인격이 있으면 빛이 있다. 빛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둠에 빠진 것은 인격을 이탈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격을 회복하면 죄로부터 해방되고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