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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4년 2월 2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부활의 표적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1:1-51 -
성경 본문
11:1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11: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11: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11: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1:12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1: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11: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11:16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1: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1: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11:20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11: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11: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11: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11:27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11: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11: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11: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의 맞던 곳에 그저 계시더라
11: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의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11: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11:34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11: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11: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11: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1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11: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11: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11: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11:48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11:49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11: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11: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11: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11:53 이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11:54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여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리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유하시니라
11: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11:56 저희가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저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11:5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부활의 표적(요11:1~51)
물이 포도주로 변한, 생명의 변화의 표적으로부터 시작된 주님에 대한 표적은 이제 마지막으로 나사로를 살림으로써 부활의 표적으로 완성된다. 가나에서 시작된 변화의 잔치가 베다니에 와서 부활의 잔치로 완성되고 있다. 변화의 목표는 부활이다.
나사로는 죽었고 이미 나흘이 되었다고 했다. 마리아가 주님께 대하여 안타까웠던 것은 병들었다는 소식을 주님에게 전했으나 죽은 지 나흘이 될 때에야 왔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했을 때 바로 오셨으면 죽지도 않았을 것이고, 죽은 후에라도 바로 오셨더라면 살리기가 쉬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시체가 썩어 냄새날 때에야 오시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마르다는 이런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소식을 들으시고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 하시고 이틀을 더 머무신 다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던 것이다. 일부러 늦게 가셨다는 것이다.
요한은 예수께서 늦게 올라가신 것은 나사로와 그 가족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곤란한 문제다. 그러나 결과를 볼 때는 이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이 다 알 수가 없다. 다만 결과 앞에 굴복하는 것이다. 창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일마다 그렇다. 제자들은 삼년 동안이나 열심히 그를 따랐지만 언제나 결과는 동일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일은 보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었고 전파하게 되었던 것이다. 주님이 하신 일은 언제나 자신들의 생각과 달랐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하나님 아들로 전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인간의 생각을 토로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 압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네 오라비가 살리라” 하셨는데 마르다는 다시 “마지막 부활 때에는 다시 살줄을 내가 압니다.“ 라고 하였다. 마르다는 참으로 바리새적인 유대 정통 신앙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의 신앙과도 일치하는 정통신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는 것이었다.
인생이 어떤 이유와 조건에 따라서는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그 사람의 죽음에 관하여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셨고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산 혼이 되게 하시고 “동산을 지키라” 하셨다.
다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다. 그런데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동산을 떠난 후에 가인은 아벨을 죽였고, 라멕은 자기의 아내들에게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으며, 아담계보를 보면 에녹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살다가 죽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홍수가 지난 후에 노아에게 사람의 수한이 120년이 되리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 하신 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말씀은 어떤 생명을 말씀하신 것일까? 그리고 마르다가 말한바 “그러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압니다.”란 어떻게 알아듣고 한 말일까?
마르다는 주님이 하신 말씀을 알아들어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이 하신 말씀이라면 무엇이라도 가능한 줄 안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마르다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그렇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부활은 비밀이었다. 누구도 본 일이 없었다. 다만 그런 표적들을 본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서 살구꽃이 피었다는 것(민17:8), 에스겔이 본 바 뼈다귀들이 살아난 환상(겔37:1~11).......그러나 “나는 부활이다” 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죽었다가 소생한 사람은 있었지만 부활한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재이고 사실이다. "네가 정녕 죽으리라" 하셨던 대로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이다. 하나님은 이 사람을 다시 살리기 원하신다. 하나님의 모든 경륜의 목표는 죽은 자를 살려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다시 살리려고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보실 때 애굽에서 바로의 국고성을 쌓고 있는 이스라엘은 죽은 자들이었다. 그래서 모세를 보내시고 죽은 자들을 살려내서 여호와의 성막을 건축하게 하셨다. 이와 같이 예수를 아들로서 세상에 보내신 것은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죽은 자들을 살리기 위해 오신 부활이요 생명이시다.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되었으나 부활이요 생명이신 이로 인하여 다시 살아났다. 죽은 지 얼마나 되었는가, 시체가 얼마나 부패되었는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하니까 죽었던 자가 살아 나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죽음과 부활의 표적이었다. 아담 이후에 이래저래 죽은 사람들은 죽음의 표적이고, 살구나무 지팡이에 꽃이 핀 것(민17:2`~8)이나, 에스겔이 본 바 마른 뼈다귀들이 살아나서 군대가 된 것(겔37장)이나,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다 부활의 표적이다. 또한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일)의 표적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우리는 수많은 죽음과 부활의 표적들을 보았으나 그 실제를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비로소 그 실제를 알고 그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고, 그의 다시 살아나심을 통하여 부활의 비밀이 열려졌으나 우리는 아직은 부활을 다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완전하게 대면할 (고전13:12참) 보다 전진 된 표적들을 본다. 역사적인 사례들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변화에서, 다시 남에서, 생수를 마심에서, 치유 받음에서, 생명의 양식을 먹음에서, 빛을 얻음에서, 죄로부터의 사유에서,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에서......(요2:~11:참)우리는 부활의 표적을 보고 누리며 살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인생의 부활로 말미암아 절정에 이를 것이다. 인생은 흙으로 지어졌고 유한하며 연약하다. 그래서 사단이 비웃고 조롱해 오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표는 여기에 멈추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부활생명을 위한 과정이며 필요다.
부활생명은 창조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하와가 창조 되지 않고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지으신 것처럼 부활 생명은 인생의 과정 안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며 인생의 수확에서 얻어질 열매다. 부활은 성숙한 아들로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며, 동산지킴이로써 전보다 완전하게, 다시는 사단에게 속지 않을 자로서 그 임무를 회복하는 것이다. 다시는 어둠이 없고 죽음이 없을 것이다(계21:4,22:5참). 하나님은 죽음을 창조하지 아니하셨다.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았고,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함을 보았으며, 그 안에서 모든 눈물을 씻기심을 보았는데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다시없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또한 만물이 새로워진 것을 보았고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주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계21:1~참)
사망을 가져왔던 선악과는 간 곳이 없고 생명나무가 있어서 열 두 가지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케 하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계22:1,2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