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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1년 8월 7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Ⅲ.생명의 변화
(1)혼인집의 기쁨을 회복시키신 예수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2:1-12 -
성경 본문
2: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2: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2: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2: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2: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2: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2: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2: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2: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Ⅲ. 생명의 변화
(1) 혼인집의 기쁨을 회복시키신 예수(요2:1~12)
태초에 계신 말씀은 그 안에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이 말씀은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이 되심으로써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증거를 받으셨다.
이 하나님은 인생의 일상 안으로 들어오시어 생명의 변화를 일으키신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가나의 어느 혼인집에 초대를 받으셨다.
제 삼일은 부활의 날을 상징하고, 갈릴리는 유대 땅에서 아주 먼 변방이고, 가나는 그 중 한 동네 같은데,‘가나’라는 말은‘갈대’라는 뜻이라고 한다.
갈대는 약하여 깨어지기 쉬운 인생들을 상징한다(사42:3마12:20,17:7).
예수께서 거기 손님으로 초대 받으셨고 그의 어머니도 거기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친밀한 관계였음을 나타낸다.
결혼은 창조 섭리 안에 생명과 연합에 관계 된 중요한 항목이다.
그것은“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하신 축복을 성취하기 위해서 절대 필수적인 일로서 아담과 하와에게 최종적으로 축복하고 제정하신 것이다.
창세기 1장은“하나님이 보시기 심히 좋았더라”로 맺었고, 2장은“둘이 연합하여 한 육체가 될지니라.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아니하더라”로 끝맺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는 두 사이의 연합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성경은 아담과 하와의 결혼으로 시작해서 어린양 예수와 그의 신부인 교회의 결혼으로 완성되었다. 이것은 우주적인 연합으로서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다.
연합은 변화를 일으킨다.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은 신성의 충만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은 하나님 나라를 가져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지배함은 연합으로 이루어진다.
분열은 죽음을 가져오고, 연합은 생명을 가져온다. 또한 지식은 분열을 가져오고 생명은 연합을 가져온다.
이로써 사단의 일과 하나님의 일이 구별된다.
사도 요한은 예수의 행적을 기록함에 있어서 혼인집 이야기를 첫번쩨로 들었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또한 단순히 역사적인 기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성경의 최종 열매를 결혼으로 정리한 요한은 그의 복음서 첫머리를 결혼으로 시작하였다.
이는 그가 받은 계시가 결혼에서 시작해서 결혼으로 완성되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래서 가나의 혼인 잔치가 사도 요한의 결혼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다.
창세기 2장에 따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하시고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에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아담에게 이끌어 한 몸이 되게 하셨다고 했다.
하와는 아담의 생명으로 지어졌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끌어 주신 하와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완전한 연합을 의미한다.
이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이루어졌다.
주님은 모든 인류를 자기 안에 포함시켜 연합된 한 단체적인 새 사람으로 실체화시키셨다.
이로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와 목표는 자신과 인간, 그리스도와 교회로 이루어지는 우주적 연합이었던 것이다(엡5:31,32).
하나님의 의도와 소원은 사람과 연합하여 만유에게 자신의 풍성을 공급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교회로써 이를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예표하는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귀중하고 즐거운 일이다.
가나의 혼인집에는 포도주가 다해서 기쁨이 끊기게 되었다.
포도주는 풍요의 상징이며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집은 가난해서 벌써 술이 다한 것이다. 술이 없으면 잔칫집의 즐거움은 끝난다.
가장 즐거워야 할 날에 기쁨이 끊어진 것이다.
혼인은 큰 축복이기 때문에 즐거운 중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 집에는 축복을 즐겁게 해줄 술이 동이 난 것이다.
인생은 창조 안에서 가장 큰 축복을 받았으므로 가장 즐거워해야 할 존재인데, 자신을 기쁘게 할 술이 없는 것이다.
아담은 이 술을 마시지 않고 선악을 아는 지식을 마심으로써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축복의 동산에서 쫓겨난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비극이다.
예수께서는 포도주를 만들어 연회를 부흥시키셨다.
맹물이 어떻게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동산의 기쁨을 상실한 인생에게 예수는 기쁨을 회복시키신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과정은 알 수 없지만 기쁨이 회복된 인생을 이 혼인 집에서 일어난 포도주 사건으로 조명할 수가 있다.
예수는 우리 인생의 혼인 잔치에 포도주를 공급하는 분이시다.
동산에서 추방 된 아담에게는 기쁨이 없었다.
그에게는 가시와 형극의 땅이 있었을 뿐이고, 기쁨 대신에 이마에 땀이 흘러야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고통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생명나무 열매로 누리지 못하면 기쁨 대신에 저주가 된다.
생명의 축복은 생명으로만 맛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다.
사랑은 관계로 느낀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로서 느끼고, 남편의 사랑은 아내로서 느낀다.
관계가 끊어지면 사랑은 사라진다. 선악과는 하나님과의 생명관계를 단절시킴으로써 그의 사랑도 끊어지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구속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잃었던 위치를 되찾아주고 생명을 회복시켜 그의 동산 안에서 사랑 안에 거하게 한다.
물밖에 없는 혼인집에 포도주를 공급하여 기쁨을 일으키신 것처럼 동산의 기쁨을 상실한 인생에게 즐거움을 일으키신다.
구속 안에 있는 인생은 그 포도주가 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늘 과분하고, 늘 감사하며, 늘 만족하고, 기쁘다.
인생은 축복이다. 구속과 부활로 이 축복은 회복되었다. 주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요 신랑이 되시는 한, 인생의 기쁨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