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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1년 10월 23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건축을 위한 생명공급(4)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4:16-26 -
성경 본문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4: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4: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4: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4: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4: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4: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4: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4: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말씀 요약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건축을 위한 생명공급 (4)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내가 그라” 하심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요4:26)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를 선지자로 알고 예배할 곳을 물었는데, 그의 대답을 듣고 그녀는 “그리스도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라고 했다. 그녀는 사마리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모세 오경만을 인정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개념도 모세 오경의 계시에 제한되어 있었을 것이다.
모세의 오경 안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는 중재자로부터 시작 되었다.(신5:22~참) 여호와와 백성 사이에는 중재자가 필요했다. 여호와의 위엄을 본 백성들은 감히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모세에게 중재자가 되어주기를 간청했던 것이다.(출20:19, 신5:22~참)
모세는 중재자였다. 그는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고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고함으로써 서로의 뜻을 중재하였다. 소멸하는 불이신 여호와 앞에 육체로서의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룩 개념의 근원으로서, 동산에 계신 여호와와 이탈한 인간의 사이가 얼마나 멀며, 또한 둘 사이는 얼마나 두려운 관계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창3;24, 출19;21, 신5;24~참)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 이후를 말씀하실 때, 신명기 18장 15절에서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하셨다. 모세 이후에도 모세와 같은 중재자를 계속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모세 시대에는 모세만한 중재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약속하심과 같이 이후 많은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모세와 같은 중재자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런 중재 역할이 그 후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되어 최종적으로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까지 이른 것이다.
남편을 통해, 예배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맛본 그녀는 이어서 “그리스도가 오시면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그런데 나에게 모든 것을 말씀하시는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혹시 그분이 아니십니까? 라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서슴없이 “네게 말하는 내가 그니라” 고 대답하셨다. 이 말은 이사야 52장 6절의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 알리라, 곧 내니라” 와 같은 말씀이다.
모세는 여호와의 뜻을 말로 전하는 자였다. 그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재자였다. 하나님에게는 이런 사람이 필요하고, 인간에게도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호와의 불길 속을 왕래하면서 그의 뜻을 말해낼 사람이 누구인가?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더 완전한 대언자가 필요한 것이다.
예수는 성육신하신 대언자로서(요1:18) 하나님과 인간 사이, 하나님의 동산과 세상, 거룩한 땅과 속된 땅, 의인과 죄인, 그 사이에 가로놓인 불길을 그의 십자가로 소멸하고 자유롭게 왕래하여 둘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롬5:1~ 참) 완전한 중재자로서 그리스도시다.
그는 사람에게 죽었고 하나님에게 죽었다. 두 세계에서 다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불길을 왕래해야 했지만 예수 앞에서는 더 이상 그 불길(하나님의 진노)이 사라졌다. 옛 세계를 끝내시고 새로운 세계를 위해 새 생명의 주로 부활하셨다.
예수는 새 생명의 주로서 이 여자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으셨다. 다른 세계를 열어 주신 것이다. “네 남편은 과연 누구냐? 이 산이냐 저 산이냐?” 하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보여 주신 것이다.
그래서 이 여인은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고 한 것이다. 그녀는 새 생명의 주를 만난 것이다. 새 생명은 새 세계를 수반한다.
이 여인은 자기를 알고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만큼 불행했던 여자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자기를 모르니까 이러니저러니 하겠지만 하나님만은 자기를 아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말할 수 없는 것, 이것이 인간의 내면에 있는 깊은 고독이다. 이 사람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사정을 말할 수 없는 고독한 사람을 대표한다.
다섯 남편을 거치고도 지금도 그대로인 자신을 누가 알겠느냐는 것이다. 인간의 사정이란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처럼 뻔 한 것 같지만, 각자의 입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이지 않다. 그런데 이를 인간이 알고 있는 몇 가지 공식(도덕, 율법, 종교, 관습)으로 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인간을 더욱 고독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하나님만 아실 자신을 아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자신에게 필요한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중보자로서 이 여자를 알았다. 그러니까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고 한 것이다. 새 사람은 하나님과 옛 사람 사이의 중재자가 된다.
세상에는 민족주의자도 있고 종교주의자도 있으며 율법주의자도 있다. 그러니까 갖가지 문제로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여자는 자신을 고독하게 했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물동이를 놓아두고 동네에 내려가서 이 사실을 전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세계 안에 들어오게 되며 옛 세계 안에서의 고독은 사라지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접하게 되면, 그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 된다.
우리가 만나야 할 그리스도는 오늘 어디에 있는가? 그는 지금 죽고 다시 사심으로 얻어놓은 그의 몸 된 교회에 계신다. 모세-선지자-예수는 지금은 한 몸으로서 교회다.(단체적인 제사장-중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