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11년 10월 30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건축을 위한 생명공급(5)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4:32,34 -
성경 본문
4: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말씀 요약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건축을 위한 생명공급 (5)
먹을 것을 준비해 온 제자들에게 그들이 “알지 못했던 양식” 을 제시하심 (요 4:32, 34)
예수께서 여자와 대화하고 계신 사이에 제자들은 먹을 것을 준비해 왔다. 그런데 잡수시기를 청하자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했던 먹을 양식이 있다” 고 하셨다.
그의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목마르고 배고프신 분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구원의 빛을 본 것을 보시고 배가 부른 것처럼 만족하셨던 것이다.
이 여자는 남편 문제로 목이 말랐고, 종교문제로 혼란스러웠으며, 그리스도가 없어서 만족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서 이 모든 문제에 답을 얻고 만족하였다.
두 사람은 육신의 목마름에서 만났으나 이제 영적으로 만족을 얻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음식은 구해왔지만 아직 이 음식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인간에게는 육신의 음식뿐 아니라 영의 양식이 필요하다. 위임을 떠난 인간은 진실(소득)이 없어 목마르고, 에덴을 잃은 인간은 안식이 없어서 불안하며, 배필과 분리된 인간은 하나됨이 없어 고독하다.
이 목마름과 불안과 고독을 무엇으로 해결할 것인가? 예수께서는 목마른 여자에게 “나의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 고 하셨고, 음식을 준비해온 제자들에게는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고 말씀하셨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예수께서는 “나의 음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라고 하셨다. 인생을 만족케 하는 참 양식은 자기를 지으신 이의 뜻을 행하고 , 맡겨진 위임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만족을 얻을 수 없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분주하나 소득이 없고, 갈망하나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짐승들이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듯이 늘 무엇인가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육신의 배고픔은 음식의 결핍이지만 영적인 배고픔은 인격의 결핍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위치와 본분인 인격을 버리고 하나님같이 되기 위해 선악을 아는 지식을 행사하는 것이다.
세상은 모두 하나님같이 되자는 판이다. 이 판에서는 인격은 무용지물이다. 어느 곳이나 같은 판이다. 이 판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은 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 판을 바꾸어야 한다.
인격이 살 판은 인격을 주신 하나님이 만들어 주셔야 한다. 비록 사람이 버리고 떠났지만 하나님밖에는 만들어주실 분이 없다. 물을 떠난 고기는 자기 힘으로는 물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약속하시기를 이 판이 다시 만들어질 것이며 그 날에는 어린아이들까지라도 다 하나님을 알 것이라고(렘31:31) 하셨다. 예수는 이 약속을 이루려고 세상에 오신 그의 아들이시다.
신약성경에는 “예수 안”, “그리스도 안”, 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이 말은 “아담 안” 과 대비되는 말인데, “안”은 판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 어떤 판에서 사는 것이다.
아담판에서는 아담을, 예수판에서는 예수를 따르며 산다. 아담판은 목마름으로 가는 판이며, 예수판은 축복으로 가는 새 사람을 위한 새 판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판)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5:17) 또한 이 판은 그 안에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들로 인하여 확대된다. 먼저는 예수가 새로운 판이 되시고 나중에는 그 안에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 확대된 그 판이 된다. 이것이 교회다.
예수는 이 새 판을 만들기 위해 이것을 약속하신 분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분이다. 아버지로 약속하셨고 아들로 이루셨다.(렘31:31참)
사막에서는 누구나 목마르고 배고프다. 이와 같이 아담판(세상)에서는 누구나 목마르고 배고프다. 사막에는 물이 없어서 목마르고, 아담판에서는 하나님의 공급이 없어서 목마르다.
예수님은 이 여자에게 아무 것도 해 주신 것이 없었다. 단지 그 판을 열어주셨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는 자유를 얻고 담력을 얻었다. 판의 문제였다.
그렇다! 예수 안에는 “너는 누구의 아내냐, 몇 번이나 결혼을 했느냐, 너는 어디서 예배하는 사람이냐,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따위의 문제가 없다. 오직 사람이냐, 아니냐 만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이 여자는 인격만 있는 판에서 비로소 자유를 얻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었다. 여자냐, 사마리아인이냐의 문제를 떠나, 한 인간으로 회복된 것이다.
아담에게 배당된 최선의 옛판은 이스라엘-율법이었다. 이 안에서 이 여자가 시달렸고 모든 인간이 고달프다. 하나님은 새 판을 만드셨다.
예수는 이 여자에게 이 판을 보여주셨고 여자는 이 판에서 자유와 해방을 주는 그리스도를 만났다. 서로 만족하였다. 이 만족(음식)은 사람들이 아직 알지 못했던 다른 양식(만족)이었다. 예수는 이 양식을 잡수신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아직 알지 못했던 양식이었다.
이 양식으로 배부르신 주님은 희어져 추수하게 된 들판을 보라고 하셨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된다 하였으나 눈을 들어 들판을 보라는 것이다. 새 눈으로 새 판을 보라는 것이다. 새로 만들어진 판으로는 들어오기가 쉽다.
우리도 이 판을 보자! 육신의 양식은 추수할 기한이 있지만 영의 양식(인격)은, 인격은, 언제, 어디서나, 그 누구에게서나, 항상 바로 거둘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인격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이 그렇게 버리고 무시해도 없어지지 않았다. 소가 소이기를 싫어한다고 해서, 소의 격이 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다.(구속)
이스라엘에게 정해 준 기업의 땅은 영원히 변개할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이 어찌 땅을 위한 것이었겠는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격은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넉 달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때는 항상 지금인 것이다. 눈을 들어 보면 희어져 추수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추수하는 판에서는 목마름과 배고픔이 없다. 이 판은 들어오기가 쉽고, 이 판에서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한다.
그리스도와 교회, 이것은 새 판이다.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할 새 판이다. 더 이상 목마름과 배고픔이 없는 곳이다.(계22:1~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