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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1년 12월 25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건축을 위한 생명공급(13)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6:1-21 -
성경 본문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말씀 요약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건축을 위한 생명공급 (13)
배고픈 자들을 먹이심(6:1-71)
a. 보리떡으로 먹이심(6:1-21)
요한복음 5장에는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일이, 6장에는 배고픈 자들을 먹이신 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들을 주님이 생명의 양식으로 먹이심을 계시하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온 후 새로운 양식을 먹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은 영생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사람은 먹는 대로 산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동산을 떠났고, 육신의 양식을 얻으려던 야곱 족속은 바로의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동산에 살려면 생명나무 열매를 먹어야 하고, 애굽에서 나오려면 양의 고기를 먹어야 하며, 광야를 통과하려면 만나를 먹어야 하고, 약속의 땅에 살려면 그 땅의 소산을 먹어야 한다. 육신과 그 생활은 영원한 생명과 삶의 모형이고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병이 낫고 새 생명을 받았으면 새 양식을 먹어야 한다. 병들게 했던 양식을 다시 먹어도 안 되고, 환자일 때 먹었던 양식을 다시 먹어서도 안 된다. 새로운 양식을 먹어야 한다. 새 생명에 알맞은 양식을 먹어야 한다.
베데스다에서 물이 동할 때를 기다려도 안 되고 안식일에 매여도 안된다. 자기를 살려주신 분을 따라야 한다.
병자들을 고치신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 왔는데, 예수께서 계신 곳은 빈 들 즉 먹을 것이 없는 곳이었다. 사도 요한은 주님이 새로운 양식으로 먹이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절묘하게 이 사건을 배열한 것이다.
병을 고쳐놓고 양식을 주지 못하면 그 사람은 도로 죽을 것이다.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이 새로운 양식이 없었다면 광야에서 다 죽었을 것이고, 애굽의 양식을 계속 먹었다면 광야에서 다시 애굽을 건설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심각한 문제다.
백성은 그 백성의 양식을 먹을 때에 그 나라를 세우게 된다. 양식은 자라게 하고 자라남은 나라를 세운다. 벌은 양식에 따라서 여왕벌, 숫벌, 일벌로 결정된다고 한다.
인간도 벌과 같이 양식에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도 하고, 사탄의 백성이 되기도 한다. 선인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한다. 물질적 몸은 물질적 양식에 따라서, 영적인 몸은 영적인 양식에 따라서 그 삶이 결정된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은 감추어진 만나를 먹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어야 교회가 된다.
주님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셨고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에 넘쳤다고 한다. 보리떡은 가난한 자들이나 짐승이 먹는 양식인데(삿19:19, 왕상4:28참), 겨울을 이기고 맨 처음 수확하는 곡물(삼하21:9)로서 부활을 상징하고, 5는 10, 즉 온전함을 위해서 아직 반이 더 필요한 숫자이며, 2는 증거의 숫자이고, 12는 증거의 확산을 위한 상징적 숫자다.
환자는 살아났으면 좋은 양식을 먹고 건강해져야 한다. 보리는 맛이 없어 값이 싸지만 겨울을 이기고 나온 강인한 성질 때문에 건강식이라 할 수 있다. 병이 나으면 다시는 또 병에 걸리지 않도록 강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온전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영원한 생명도 다시 찾았으면 그 생명에 합당한 새 양식을 먹어야 한다. 동산에서는 생명나무 열매를 먹어야 하고 광야에서는 만나를 먹어야 하는 것처럼 교회에서는 죽고 다시 산 부활 생명을 먹어야 한다.
보리는 죽음의 겨울을 거쳤으므로 부활의 양식을 상징한다. 보리는 죽음을 거친 부활의 양식이다. 떡은 단지 배부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리떡은 다시 산 생명을 위한 부활의 양식을 상징한다. 그래서 요한은 다른 복음서에서와는 달리 보리떡을 들어 사용한 것이다.(마14:13~, 막6:30~, 눅9:10~)
다시 산 생명은 부활생명이다. 그러므로 그 생명에 맞게 부활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초식동물인 소가 육식을 한 결과, 광우병이라는 전대미문의 괴질에 걸려 떼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은혜로 구원받은 자가 율법을 먹으면 다시 저주로 돌아가고, 어린양의 피로 구속을 받은 사람이 사자의 양식을 먹으면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쓴 이리가 된다. 양식은 생명을 기를 뿐 아니라 바꾸기도 한다. 그러므로 다시 난 생명은 부활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2’는 증거를 위해 필요하다. 물고기는 작은 것들이지만 ‘2’이므로 증거에 충분하다. 보리는 식물성으로서 ‘자라나는 생명’을, 물고기는 활동성으로서 ‘삶’을 상징한다.(창1장 강해 참조)
성장의 증거는 삶이다. 그러므로 보리떡에 물고기를 첨가한 것이다. 보리떡을 먹은 사람은 보리떡의 삶을 산다. 그는 강건하여 그 생명을 12배 이상 넘치게 살아낼 것이며 그 나라는 12배로 증가되고 확산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처럼 예수를 잡아다가 왕을 삼으려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러다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그 보리떡을 먹고 그 삶을 살아내야 한다.
우리 주님은 겨울을 이기고 나온 보리와 같다. 그는 죽음을 거쳐 다시 사신 첫 열매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죽었다. 그 중에서 예수는 살아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산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로 구속받은 사람들은 보리떡과 같은 이 생명, 이 인격을 먹고 보리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다시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