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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1월 8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건축을 위한 생명공급(15)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6:60-71 -
성경 본문
6: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근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62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6: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6: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말씀 요약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건축을 위한 생명공급 (13)
배고픈 자들을 먹이심(6:1-71)
c. 살과 피로 먹이심(요6;60-71)
디베랴에서 가버나움으로 옮기신 주님은 살과 피로 구성된 인자를 영생의 양식으로 계시하셨다. 디베랴의 떡은 기적의 양식으로서 인간 세계의 최고봉적 양식이었지만 영원성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버나움에서는 보리떡 대신에 영생하는 양식으로서 인자의 살과 피를 제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인자라 칭하시고 “인자는 하늘로서 내려 온 산 떡이다”, “이 떡을 먹으면 영생을 가졌고 먹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 하셨다. 또한 “내 살은 참된 양식”이라 하시고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산다” 하셨다.
그런데 이로 인하여 사람들이 수군거리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누구기에 자기의 피와 살이 영생의 양식이란 말인가‘ 라고 했고 또 다른 이들은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저가 누구이기에”라 함은 예수의 가치를 부정한 것이고, “감당키 어렵다”는 것은 종교 도덕적 결단을 주저한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신에게 드린 제물은 일반적으로 드리는 자들이 나누어 먹는데 제물에는 그 신이 들어 있으므로 먹는 자는 그 신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먹으면 하나 된다는 뜻은 충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라는 한 인간이 누구기에 어떻게 영생의 양식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인간의 양식에 대한 계시는 신기하지만 실제적이다
에덴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생명나무 열매가 필요했고, 애굽에서 구속받아 나오기 위해서는 어린양의 피와 살이 있어야 했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자들은 제물을 먹어야 했는데, 새 예루살렘에서는 다시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 된다고 했다. 결국 인간의 영원한 양식은 생명나무 열매라는 것이다.
이 양식 이후와 이전의 상징적 양식은 어린양의 살과 피다. 생명나무 열매와 어린양의 살과 피는 함수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최종적 계시인 요한계시록은 어린양이 인봉한 책을 여심으로 시작해서 하나님과 어린양이 함께하는 통치의 보좌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내용은 보좌로부터 공급되는 생명나무 열매다.
세례요한은 예수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없애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했고, 사도요한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어린양”이라 했는데,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 칭하셨다. “어린양”이란 구속을 위한 제물을 의미하고, “인자”란 종말적 통치자로서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제물이신 어린양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최종적 통치자가 된다.
어린양은 살과 피로 바쳐졌고, 예수는 살과 피로 오시고, 살과 피로 드려져서 우리의 구속이 되셨다. 그에게 살과 피가 없다면 그가 우리를 구속하실 수 없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인류 구속을 위한 합당한 제물이며, 우리 모두가 먹고 마셔야 할 영생의 양식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으로 시작해서 그의 살과 피가 영생의 양식이라는 것을 계시하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물과 피를 흘리신 것을 증거한 것이다.
육체는 살과 피로 구성된다. 인자가 살과 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십자가를 통해 확실하게 전시되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단정하였다.(1요4;2,3)
사도시대에 하나님의 복음을 방해하는 이단은 유대주의와 영지주의였다. 바울은 유대주의를 막아야 했고, 요한은 영지주의를 경계해야 했다. 유대주의는 복음에 율법을 더하여 은혜를 희석시키고, 영지주의는 복음이신 예수를 신이라 함으로써 구속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 대신에 십자가를 제시했고, 요한은 신 대신에 성육신을 제시했던 것이다. 십자가는 율법을 폐하고 복음을 가져오며, 성육신은 구속과 영생을 가져온다.
말씀이 육체가 되신 예수는 자신을 언제나 인자라고 칭하셨다. 인자는 살과 피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살과 피가 있어야 하나님을 위한 제물이 될 수 있고, 우리를 위한 구속이 될 수 있다. 살과 피는 인자의 사역의 가치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를 먹으려면 살과 피가 있는 인자를 먹어야 한다. 살과 피가 없는 예수라면 숭배의 대상은 될 수 있겠지만 구속과 영생을 위한 우리의 양식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의 살과 피를 먹을 것인가?
예수를 만났던 사람들 중에 처음부터 그가 성령으로 잉태해서 낳은 사람이라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그를 신으로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가 신이었다면 어떻게 그를 따라다니고 비난하고 재판하고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산에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했고, 부활하신 후에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했으며,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그는 “참 하나님이요 영생이라” 했던 것이다. 그는 피와 살이 있는 인자로서 우리의 구속자-하나님(시 19;14)이 되셨고, 영생하는 양식이 되심으로써 위와 같은 고백을 받으신 것이다.
나는 오랜 동안 예수를 믿으려고 했지만 믿으려고 할수록 거리가 멀어졌고 하나 되고 싶었지만 그 소원이 강할수록 더욱 분리됨을 알게 되었을 때, 절망하고 자포자기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예수가 살과 피가 있는 사람으로 십자가에 달린 사실을 알고 나서 거리감은 없어졌고 연합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도 거리감이 없어지고 연합의 세계를 공유하게 되었다. 살과 피가 있는 인자는 우리 모두를 포함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6)
그러므로 우리 옛사람은 그와 함께 여기서 끝나고 그와 함께 여기서 다시 산 것이다. 그가 나를 포함하셨으므로 나는 그 안에 있고 그는 내 안에 있는 것이다.(롬6;8)
그러나 이 사실을 믿지 아니하고 떠난 자들이 있었고, 예수를 판 유다도 있었다. 그들은 육신만을 보고 영생의 양식이신 예수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하고 계속 따른 자들이 있었다.
이제 나는 그가 신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인자로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