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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1월 15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건축을 위한 생명공급(16)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6:60-71 -
성경 본문
6: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근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62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6: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6: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말씀 요약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건축을 위한 생명공급 (13)
배고픈 자들을 먹이심(6:1-71)
d. 영이요 생명으로 먹이심(요6:60-71)
인생의 굶주림은 물질적 양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격의 이탈로 인한 생명 공급의 단절에 있다. 디베랴에서는 물질적 양식의 극치인 기적의 양식으로 먹였으나 가버나움에서는 영생의 양식으로써 인자의 살과 피를 제시 하셨다. 그러나 실족하였음으로 다시 살과 피는 영이요 생명임을 말씀하셨다. 살과 피는 주님의 영이요 생명 안으로 이끄는 유도체라고 할 수 있다.
살과 피를 무시한 영과 생명은 근거가 없다. 종교의 허다한 문제들이 여기서 일어났고 그 결과는 언제나 황당한 것이었다. 근거 없는 영은 영생 안으로 이끌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우리 구속의 보증이 되고, 영생의 기반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먼저 자신의 살과 피를 제시하고 이어서 자신의 말하심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그의 말씀하심은 살과 피로 보증 된(제물) 인격의 영이요 생명이다. 그러므로 그의 영과 생명은 하나님과 인생을 위한 영원한 양식인 것이다.
보리떡은 배고프면 누구나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자의 살과 피는 먹기가 어려웠다.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린 인간은 인자가 자기의 원형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러니까 자기 땅에 왔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던 것이다.(요1;11)
하나님의 아들은 이질적이고, 사람의 아들 인자는 절망적이었다. 그래서 인자를 신이 되게 하느라고 얼마나 오랜 세월 무도한 일을 저질러 가면서까지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인간이 왜 인자로 만족하지 못하고 인자를 신으로 만들어야만 하는가? 인자를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마10;333) 그러나 요한은 당연하게 인자를 두고 “참 하나님이요 영생”이라 했던 것이다.(1요5;20)
인자를 보고“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하지 못하는 한, 인생은 영원히 배부를 수 없고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인자를 보고 하나님이라 부르지 못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볼 수 없는 신을 볼 때까지 영원히 배고프고 공허할 것이다.
인자는 인생이지만 나를 구속한 하나님이며 나의 영원한 양식으로서 영이요 생명이다.
인자의 살과 피의 효능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하겠느냐?”고 하셨다. 이것은 인자가 창세전으로 돌아가서 피와 살이 없다면 어찌하겠느냐는 말이다.
인자의 살과 피를 먹지 못하면 구속이 불가능 할 것이며, 영생의 양식을 먹지 못할 것인데 그러면 어찌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인류 구속의 사역을 위해 인자로서 세상에 오신 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당신이 신이 아니라면 우리가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인자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아담의 말이다. 아담은 인자를 버리고 천사를 따라간 타락한 인간의 조상이다. 그러므로 그 후손들은 조상을 따라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고 하셨다. 디베랴에서 방황하는 육은 무익하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디베랴의 육을 위한 양식이 아니다. 인격을 살리기 위한 영이요 생명이다.
디베랴의 육은 하나님 나라에 무익하고, 예수님의 살과 피는 디베랴의 육을 위해 무익하다. 그러므로 육을 유익하게 하려고 하는 자는 결코 그 살과 피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자는 육을 위한 양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던 것이다. 주님은 이럴 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를 팔자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은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구속 받은 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의 양식을 찾는 사람은 인자를 따르지 못한다.
그래서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는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다. 육을 위한 양식을 따라 가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때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인줄을 믿고 알았습니다.” 고 대답하고 끝까지 남았던 것이다.
인자는 아담 안에서 자리를 이탈한 인류의 구속을 위한 유일한 제물이며, 하나님이 정해주신 영생의 양식이다. 영생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축복의 자리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동산에서 그와 함께 살기 위해서, 만유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분배하기 위해서, 주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해서, 새 예루살렘이 되기 위해서, ..... 인자를 천사보다 존중하고, 생명나무로 받아들이고, 주님으로 따라야 한다.
디베랴에서는 보리떡이신 주님은 가버나움에서는 인자로써 영생하는 양식이시다. 인자는 영원한 양식으로 아버지 하나님이 인 치신 자다.